북미 전체 ESS 용량의 11.5% ‘6.3GWh’…중국이 독식한 글로벌 ESS 시장에서 신성장 발판 마련
삼성SDI가 미국 최대 전력기업인 넥스트에라에너지에 1조원대 규모의 ESS(에너지저장장치)용 배터리를 공급한다.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라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미국의 대중 견제 정책을 등에 업고, 국내 에너지 업계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급부상중인 글로벌 ESS 시장에서 오랜만에 따낸 성과다. 그동안 세계 ESS 시장은 사실상 중국의 독무대였기 때문이다.
최근 업계에 따르면 삼성SDI는 미국 최대의 전력 기업인 넥스트에라에너지에 1조원대 규모의 ESS용 배터리를 납품키로 하고 현재 본계약 체결을 앞두고 막바지 조율 작업을 진행중이다.
이번에 삼성SDI가 넥스트에라에너지에 공급하는 ESS 배터리는 총용량 6.3GWh(기가와트시) 규모로 알려졌다. 단일 공급 규모만 놓고 보면 지난해 북미 전체 ESS 용량(55GWh)의 11.5%에 달한다. 금액으로는 1조원대에 이르는 대형 계약이다.
이번에 넥스트에라에너지에 공급하는 주력 제품은 ‘삼성 배터리 박스(SBB) 1.5’다. 이 제품은 지난달 말 독일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유럽 2024’에서 공개돼 주목받은 바 있다.
SBB 1.5는 컨테이너 박스에 하이니켈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배터리 셀과 모듈, 랙 등을 설치한 ESS 제품이다. 내부 공간 효율화를 통해 더 많은 양의 배터리를 적재해 총 5.26MWh 용량을 구현했으며, 컨테이너 단위 에너지 밀도가 기존 제품 대비 37% 가량 향상됐다. 또 4개의 컨테이너를 서로 맞닿게 설치 가능해 설치 공간을 줄일 수 있다.
안전성 측면에서도 우수하다. 기존에 적용한 직분사시스템의 열 전파 차단 효과를 EDI(Enhanced Direct Injection, 모듈내장형 직분사) 기술을 통해 대폭 향상시켜 화재 예방 및 확산 방지 기능을 강화했다. EDI 기술은 SBB 내부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 해당 셀을 포함하는 전체 모듈 단에 소화약제가 분사되면서 화재의 확산을 방지하는 기술이다.
전력망에 연결만 하면 곧바로 사용할 수 있어 편의성을 높인 것도 장점이다. 이같은 우수성을 인정받아 올해 3월 개최된 ‘인터배터리 어워즈 2024’에서 ‘ESS 최고 혁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삼성SDI측은 지난 5일 공시를 통해 “미국 넥스트에라에너지사와 ESS 장기 공급에 대해 협의했으며, 이번 공급 건은 다수의 프로젝트로 나누어 계약을 체결할 계획”이라며 “공급 규모는 체결되는 계약에 따라 결정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계약이 최종 성사되면 세계 ESS 시장에서 국내 배터리 업계의 존재감도 한층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 최대 전력회사가 인정한 ESS용 배터리’라는 상징성 덕분이다. 특히 미국이 오는 2026년부터 중국산 ESS용 배터리에 25%의 관세를 부과키로 한 것도 삼성SDI를 비롯한 국내 배터리 업계에는 호재다. 올해 79억달러(약 10조9000억원)에서 2030년 187억달러로 급성장할 미국 ESS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삼성SDI는 지난 2018년까지 ESS용 배터리 시장의 ‘절대 강자’였다. 한때 세계 시장 점유율은 50%에 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이 가격 경쟁력에다 화재 위험도 작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로 ESS 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하면서 국내 업계는 추락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삼성SDI의 점유율은 4.9%로 떨어졌고 CATL(40%), BYD(11.9%), EVE(11.4%) 등 중국 업체들이 독식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세계 ESS 시장의 양상이 달라졌다.
AI 시대가 개화하면서 빅테크들이 몰려 있는 미국 내 전력 수요가 급증한 동시에 재생에너지 확산도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고, 함께 구축해야 하는 ESS 수요도 덩달아 늘어나게 됐다.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대중국 견제가 본격화하자 맞물려 국내 업계에도 유리한 분위기가 열리기 시작했다. ESS 시장의 기회를 포착하고 국내 배터리 업계가 높은 에너지밀도의 NCA 배터리와 함께 LFP 배터리를 개발해 투 트랙 전략으로 ESS 시장 공략에 나서려고 하는 것도 이같은 배경이다.
시장조사 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ESS 시장은 올해 235GWh 규모를 기록한 뒤, 2035년 618GWh 규모까지 163% 성장할 전망이다. 금액 기준으로는 400억달러(약 55조원)에서 800억달러까지 2배 성장이 예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