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업계가 보는 4가지 가능성
"테슬라, 이미 루미나의 최대 완성차 고객사"
그동안 자율주행 기술을 구현하는데 라이다(Lidar)는 필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온 테슬라에서 이와 상반되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1분기에만 적지 않은 양의 라이다를 구매한 것으로 파악되면서 그 용처에 업계 이목이 집중됐다.
자율주행 학습용으로 제한적 용도로만 도입했을 거라는 의견과 로보택시 사업을 위한 자구책으로 라이다를 도입할거란 전망도 나온다.
테슬라, 이미 루미나의 대형 고객사
테슬라가 라이다에 전향적인 태도로 바뀐건 라이다 전문업체 루미나(Luminar)의 1분기 실적발표 중에 공개됐다. 루미나 1분기 실적보고(10-Q)에 따르면 이 회사 ‘오토노미솔루션' 매출 중 11%를 테슬라를 통해 벌어들였다. 1분기 오토노미솔루션 매출이 1632만달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테슬라의 구매액은 약 180만달러, 한화로는 24억원 정도되는 금액이다.
루미나에는 분기보고서 상 3개의 대형 고객사가 있는데, 테슬라는 스케일AI에 이은 두 번째 고객사다. 3위는 독일 완성차 브랜드 메르세데스벤츠다. 스케일AI는 데이터 레이블링 전문업체이므로, 완성차 기업으로 보면 테슬라가 루미나의 최대 고객사가 되는 셈이다.
루미나는 테슬라에 공급한 라이다 가격을 따로 밝히지는 않았다. 다만 이 회사 라이다 가격이 1대당 500~1000달러 수준임을 고려했을때 3000대 안팎의 물량을 구매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단지 실험실에서 평가용으로 구매했다고 보기에는 양이 지나치게 많다.
이 때문에 테슬라가 루미나 라이다를 구매한 사실을 놓고 여러 추정이 나온다. 업계가 예상하는 테슬라의 라이다 도입 시나리오는 크게 4가지다.
① 로보택시 사업을 위한 자구책?
우선 로보택시 사업을 위한 자구책으로 라이다를 도입할 가능성이 있다. 로보택시는 4단계 이상의 자율주행 기능을 구현한 무인택시다. 이전 3단계까지는 운행 중 위험시 운전자 개입을 필요로 하지만 4단계부터는 운전자 개입이 불필요하다. 이 때문에 4단계부터를 진정한 의미의 자율주행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테슬라는 이전까지 2D 카메라를 여러개 탑재해 비전 정보를 잘 조합하면 굳이 라이다 없이도 자율주행이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카메라 대비 라이다 가격이 비싸고, 라이다를 씀으로써 전혀 다른 종류의 센서에서 유입되는 데이터를 하나로 병합하는 ‘센서퓨전' 과정도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보택시 사업에서는 이 같은 원가절감 논리가 통하지 않을 수 있다. 로보택시 영업을 위해서는 각국의 안전인증을 통과해야 하는데, 관계 당국이 2D 카메라를 이용한 자율주행 기술로는 안전하지 않다고 볼 여지가 있다.
특히 자율주행 기술 장려에 가장 적극적인 중국에서는 로보택시를 개발하는 대부분의 완성차 회사들이 라이다를 기반으로 기술을 구현하고 있다. 테슬라가 끝내 라이다를 도입하지 않는다면 중국에서 로보택시 사업을 전개하는데 차별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한 자동차 산업 전문가는 “중국 매출 의존도가 높은 테슬라로서는 최대한 중국 내 규제에 맞게 제품 로드맵을 가져갈 수 밖에 없다”며 “중국 기업이 라이다를 대부분 도입하고 있다면 테슬라도 따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② 자율주행 학습 데이터 수집용?
테슬라의 자율주행 시스템인 ‘오토파일럿'과 ‘FSD(Full Self Driving)’ 학습을 위해 다량의 라이다를 구매했을 거라는 추정도 있다. 현재 테슬라의 자율주행 학습 데이터는 2D 카메라에서 수집된 자료들을 기반으로 한다. 이를 통해 자율주행 2~3단계 수준의 성능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나, 실제 주행 환경에서 이해 못할 사고가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지난 2020년 대만에서 테슬라 전기차가 넘어진 흰색 화물트럭을 햇빛으로 착각해 감속 없이 추돌하면서 라이다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전방의 사물과의 거리를 측정하는데는 라이다가 2D 카메라로 학습된 데이터 보다는 훨씬 우수하다.
이 때문에 테슬라가 일부 예외적인 상황을 학습하기 위해 라이다를 테스트용 자동차에 탑재했을 거란 추정이 나온다.
③ 기가팩토리 자동화용?
테슬라가 전기차를 생산하는 ‘기가팩토리'의 자동화를 위해 라이다를 구매했을 거라는 의견도 있다. 전기차 생산 라인 내 자동화를 위해서는 AGV(무인운반차)를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로봇이 필요하다. 이들이 제한된 공간 내에서 원활하게 이동하려면 전방 시야 확보용 라이다가 필수다.
다만 공장 자동화를 위해 사용하는 라이다는 자율주행 구현에 쓰이는 제품보다는 성능 요구수준이 낮다. AGV나 로봇들이 대체로 정해진 경로를 통해서만 움직이고, 승객용 자동차에 비해서는 이동 속도도 느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라이다 시장은 자율주행용 제품을 만드는 업체와 공장 자동화용 라이다를 만드는 회사가 나뉘어져 있다. 루미나는 자율주행용 제품만 만든다. 테슬라가 기가팩토리 자동화 수준을 높이기 위해 루미나에서 라이다를 구매했을 가능성은 낮게 보는 이유다.
④ 테슬라 양산차에 적용?
비록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테슬라가 모델S⋅모델X⋅모델3 등 기존 양산차에 적용하기 위해 라이다를 구매했을 거란 의견도 없지는 않다. 테슬라는 지난 2021년에도 레이더를 자사 전기차에서 뺏다가 2023년 초 다시 슬그머니 탑재한 바 있다. 비전 카메라 만으로는 밤이나 악천후시 상대차와의 거리 측정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레이더는 라이다에 비해 정밀도는 떨어지지만 음파를 통해 센싱하는 특성상 가까운 거리를 잘 측정한다.
다만 최근 출고가 인하 경쟁을 벌이고 있는 테슬라가 최소 1000달러 이상의 원가 상승 요인이 발생하는 라이다를 양산 모델에 적용할 가능성은 낮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로보택시는 B2B(기업간 거래), 혹은 B2G(기업과 정부간 거래) 성격을 띠고 있고 향후 택시 영업을 통해 추가 수익을 벌어들일 수 있다. 다소간의 원가 상승 요인은 용인할 수 있는 사업모델이다.
이와 달리 B2C(기업과 소비자간 거래)로 팔리는 전기차는 최근 100~200달러씩 매달 가격이 내려가는 추세다. 이러한 상황에서 원가 상승 요인을 용인하지는 않을 거란 시각이다.
또 다른 자동차 산업 전문가는 “일론 머스크가 최근에도 공식 석상을 통해 자율주행은 비전 카메라 만으로 충분하다고 밝혔다”며 “로보택시가 아닌 일반 양산차에 라이다를 이제와 도입할 명분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