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충전 표준 지배력 견제

 

현대자동차그룹과 독일의 BMW 및 메르세데스-벤츠,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 일본의 혼다 등 글로벌 주요 완성차 업체 7곳이 함께 미국에서 전기차 ‘충전 동맹’을 결성한다. 테슬라가 갈수록 충전소 세력을 넓히며 충전 표준 주도권을 강화하는 것을 견제하는 동시에, 공동 인프라 구축을 통해 북미 전기차 시장을 더욱 확대하려는 목적으로 보인다.

현대차·기아와 제너럴모터스(GM), 스텔란티스, BMW, 메르세데스벤츠, 혼다는 26일(현지시간) 공동 보도자료를 내고 북미 지역의 전기차 충전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소비자가 언제 어디서나 필요할 때 충전할 수 있도록 시내와 고속도로에 최소 3만개의 고출력 충전소를 설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강조했다.

미 에너지부에 따르면 7월 현재 미국에 3만2천대의 공공 DC 고속 충전기가 있으며, 이를 230만대의 전기차가 이용하고 있어 충전기 1대당 차량 비율이 72대 수준이다. 또 미 국립재생에너지연구소(NREL)는 2030년까지 도로에서 운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3천만∼4천200만대의 플러그인(충전) 차량을 지원하려면 18만2천대의 DC 고속 충전기가 필요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번에 7개사가 구축하는 충전소는 모든 전기차 이용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기존의 미국 표준인 CCS와 테슬라의 충전 규격인 NACS 커넥터를 동시에 제공할 계획이다. 우선 내년 여름 미국에서 첫 충전소를 개장하고, 이후에는 캐나다로 확대할 예정이다.

각 충전소에는 여러 대의 고출력 DC 충전기가 설치되며, 조인트벤처는 참여 회사들의 지속 가능성 전략에 따라 재생에너지로만 전력을 공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가능한 곳에는 캐노피(지붕과 같은 덮개)를 설치하고 화장실과 음식 서비스, 소매점 등 편의시설을 충전소 단지 안이나 인근에 배치하기로 했다. 또 일부 플래그십 충전소에는 추가 편의시설을 설치해 충전의 미래를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7개사는 공동 충전 네트워크 구축 계획이 미 정부의 전기차 충전 인프라 확대를 위한 보조금 프로그램(NEVI)의 요건을 충족해 공적 자금도 지원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조인트벤처는 규제 당국의 승인을 거쳐 올해 안에 설립될 것으로 예상했다.

공식적인 투자 금액은 밝히지 않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들 7개사가 전기차 충전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조인트벤처에 최소 10억달러(약 1조2750억원)를 투자한다고 보도했다. 지난 2017년 다수의 자동차 제조사가 유럽에서 공동 설립한 전기차 충전 회사 아이오니티를 모델로, 이번 합작 법인에 7개사가 똑같은 금액을 투자하기로 했다고 WSJ는 전했다.

장재훈 현대차 사장은 “현대차의 이번 프로젝트 투자는 지속 가능한 교통수단의 접근성을 높이려는 현대차의 비전과 일치한다”며 “광범위한 고출력 충전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 다른 주주들과 협력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카를로스 타바레스 스텔란티스 최고경영자(CEO)는 “강력한 충전 네트워크는 모두가 동일한 조건에서 이용할 수 있어야 하고, 상생의 정신으로 함께 구축해야 한다”며 “이번 프로젝트는 우리의 집단 지성을 보여주는 획기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백악관도 이날 합작법인 출범을 환영했다. 카린 장-피에르 대변인은 “우리는 이것을 중요한 진전으로 본다”면서 “충전소 설치와 유지보수에 많은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이번에 7개사가 자체 충전 네트워크를 구축하기로 한 것은 업계 1위인 테슬라의 충전 규격 독식을 저지한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이미 올초부터 포드, GM, 볼보, 리비안 등이 테슬라 충전 규격을 따르거나 검토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테슬라 충전방식인 NACS가 충전 표준을 지배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왔기 때문이다.

한편 미국 정부가 2021년 ‘EV 충전기 인프라 확대 특별법(NEVI)’을 시행하면서, 각사는 전기차 충전소 네트워크 구축에 할당된 75억달러(9조8000억원)의 보조금을 따내기 위해 경쟁적으로 충전 인프라 구축에 나선 상태다.

다만 보조금 지급에는 조건이 있다. 모든 차량이 비독점적이고 공개적으로 충전소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테슬라가 세운 충전소라 해도 다른 완성차 업체 차량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법의 취지다. 테슬라와 미 에너지부에 따르면 테슬라 수퍼차저 충전소는 미국 전역 1800곳에 설치돼 있다. 충전소에 있는 고속충전기 수만 1만9400여개로 미국 전체 전기차 고속충전기의 약 60%에 달한다.

저작권자 © KIPOST(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