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이후 전방수요 악화되자 저가 수주경쟁
잦은 오너십 변경에 본업과 상관 없는 신사업
"CCM 검사장비 시장서 하이비젼 영향력 더 커질것"

한때 하이비젼시스템에 이어 CCM(카메라모듈) 검사장비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냈던 이즈미디어가 극심한 경영난에 빠졌다. 잦은 오너십 교체와 더불어 본업과 다소 동떨어진 신사업에 치중하면서 고객사 신뢰도 바닥에 떨어졌다. 

그동안 하이엔드를 제외한 CCM 검사장비 시장에서 하이비젼시스템과 일부 경쟁구도를 만들기도 했으나, 이제는 하이엔드는 물론 중저가 이하까지 하이비젼시스템 독무대로 재편될 전망이다. 

서니옵티컬이 화웨이 P9용으로 공급했던 카메라모듈. /사진=서니옵티컬
서니옵티컬이 화웨이 P9용으로 공급했던 카메라모듈. /사진=서니옵티컬

하이비젼 잡기 위해 출혈 경쟁 나서면서 내리막

 

2002년 설립 이후 안정적으로 성장하던 이즈미디어가 부침을 겪기 시작한 건 지난 2019년부터다. 전방산업인 CCM 설비 투자가 뜸해지자 수주가 줄었고, 이에 이즈미디어는 저가수주를 통해 외연 확대에 나섰다. 이미 하이엔드급 장비는 하이비젼시스템이 절대적인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일부 중저가 경합제품 수주를 위해 출혈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한 검사장비 전문업체 대표는 “이즈미디어가 2019년 이후 중저가 시장에서 원가 이하의 수주를 이어간 탓에 덩달아 하이비젼시스템까지 실적이 나빠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2018년 매출 789억원, 영업이익 35억원이었던 이즈미디어 실적은 2019년 매출 671억원, 영업손실 17억원으로 악화됐다. 이 기간 하이비젼시스템 실적도 매출 1342억원, 영업이익 65억원으로 전년 대비 매출은 26%, 영업이익은 67%씩 급감했다.

회사가 급격한 내리막을 걸은건 지난해 3월 창업주 홍성철씨가 회사를 티피에이리테일에 매각한 직후다. 창업 19년만에 이즈미디어 새주인이 된 티피에이리테일은 화장품⋅생활용품⋅의류 등을 판매하는 소비재 유통회사다. CCM 검사장비를 비롯해 첨단 제조업 관련 업력은 전무하다. 

이즈미디어 본사 사옥. /사진=이즈미디어
이즈미디어 본사 사옥. /사진=이즈미디어

이 때문에 회사 안팎에서 이즈미디어를 잘 경영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일었고, 우려는 현실이 됐다. 이즈미디어는 오너 교체 이후 메타버스⋅블록체인⋅NFT(대체불가능토큰) 등 본업과는 동떨어진 신사업을 공격적으로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마크 저커버그 메타(옛 페이스북) 창업자의 누나인 랜디 저커버그를 사외이사이자 전략고문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때마침 주식시장에서 메타버스⋅블록체인 기술이 투자자들 관심을 받으면서 1주당 8000원 안팎에 거래되던 주가가 3개월만에 2만3000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화려했던 주가 흐름과 달리 이 기간 회사의 기초체력은 더 나빠졌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이즈미디어는 지난해 매출 475억원에 영업손실 179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그나마 이처럼 악화된 재무제표에 대한 외부감사인(한영회계법인) 감사의견도 ‘의견거절’ 통보를 받으면서 회사 주권거래가 정지됐다. 실제 재무상태는 사업보고서 공시보다 더 나쁠 수 있다는 의미다.

랜디 저커버그(사진 왼쪽)가 지난해 6월 이즈미디어 사외이사 자격으로 입국해 박형준 부산시장을 만났을 당시 모습. /사진=이즈미디어
랜디 저커버그(사진 왼쪽)가 지난해 6월 이즈미디어 사외이사 자격으로 입국해 박형준 부산시장을 만났을 당시 모습. /사진=이즈미디어

대주주 티피에이리테일은 지난해 11월 이즈미디어 주식을 담보삼아 케이앤제이인베스트대부로부터 60억원을 대출받았다. 최근 주가가 급락, 담보권이 실행되면서 지난달 21일을 기해 최대주주가 케이앤제이인베스트대부로 다시 한 번 변경됐다. 창업주 이후 소매 유통업체와 대부업체로 두 번의 손바뀜이 생긴 것이다. 

CCM 및 후방업계는 이즈미디어가 다시 검사장비 시장에서 재기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검사장비 수요는 스마트폰에 내장되는 카메라 렌즈 수가 늘거나 화소수가 증가할 때 발생하는데, 이제는 기술 발전이 포화에 이르렀다. 딱히 새로운 수요 창출 요소도 없는데다 잦은 손바뀜과 경영난으로 인해 고객사 신뢰도 완전히 무너진 상태다. 

또 다른 검사장비 업체 대표는 “이미 창업주가 회사를 팔고 나가면서 실력 있는 엔지니어들은 경쟁사 등으로 떠났다”며 “거래 안정성을 중시하는 B2B 사업 특성상 이즈미디어가 CCM 검사장비 시장에서 재기하는 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향후 CCM 검사장비 시장은 애플⋅삼성전자 공급용 하이엔드 장비뿐만 아니라 중저가 이하 시장에서도 하이비젼시스템의 지배력이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하이비젼시스템과 이즈미디어를 제외하면 팸텍 정도가 CCM 검사장비 시장에서 의미 있는 규모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팸텍은 지난해 연간 매출 564억원에 영업이익 109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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