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 부회장. / 삼성전자 제공

이재용 부회장이 아버지 이건희 회장도 이루지 못했던 ‘삼성 그룹 자동차 사업 진출’이라는 미완의 꿈을 다시 시도한다. 

 

삼성전자는 최근 권오현 부회장 직속으로 전사조직 전장사업팀을 신설하고, 박종환 부사장을 수장으로 선임했다. 박 부사장은 지난 1995년 삼성자동차에 파견됐던 인물로 그룹 내에서 자동차 사업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최근까지 생활가전 핵심 부품인 컴프레서와 모터를 담당해 전기차 부품과 관련성도 높다. 

 

당장 전기차 등 완제품에 진출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전장 관련 소재부품 기술을 축적하면서 수직계열화를 완성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삼성그룹은 배터리(삼성SDI), 카메라/모터(삼성전기), 센서 및 제어 반도체(삼성전자 DS) 등 핵심 부품을 전기차에 당장 적용할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  

 

과거 삼성 그룹은 자동차 시장에 진출했지만, 소재부품 공급망(SCM) 확보에 실패해 사업을 접은 바 있다.

 

3만여개에 달하는 소재부품을 조달하려면 탄탄한 후방 SCM이 필요했다. 그러나 현대차 등 기존 플레이어들의 견제가 상당했다. 현대차의 서슬 퍼런 경고를 무시하고 삼성과 거래를 틀 자동차 부품 업체는 많지 않았다. 삼성은 국내에서 소재부품을 조달하기 어려지자 일본산 제품을 대거 수입했다. 가격 경쟁력이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유통 시장에서도 현대차 등 기존 자동차 업체들의 방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자동차 사업 실패는 이건희 회장 재임 기간 중 가장 치욕적인 사건으로 손꼽힌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폴크스바겐 사태 이후 내연기관 자동차에서 전기차(EV)/하이브리드카(HEV)/플러그인하이브리드카(PHEV)로 무게 축이 빠른 속도로 옮겨가고 있다. 반도체, 배터리, 전장 부품 등 핵심 부문을 보유한 삼성전자가 쉽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우호적인 환경이 펼쳐졌다. 

 

예전에는 자동차 업체들의 견제가 심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삼성전자와 협력하려는 기업들이 줄을 잇고 있다.  

 

▲엘론 머스크 테슬라 CEO. /테슬라모터스 제공

특히 삼성전자 핵심 협력 파트너로는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손꼽힌다. 지난 여름 이재용 부회장이 방미 기간 중 엘론 머스크 테슬라 CEO를 만난 사건이 이번 전장사업팀 신설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두 사람은 전기차 배터리뿐 아니라 차량 반도체 공급 등 밀도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테슬라 신차 모델X에는 일본 업체에 이어 삼성전기가 차량 카메라를 납품할 것으로 예상된다. 

 

테슬라는 전기차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이지만, 애플과 달리 후발 업체들의 시장 진출을 독려하고 있다. 핵심 특허도 공유하면서 전기차 사업 진출을 유도하고 있다. 테슬라 기술 공개의 가장 수혜를 본 곳이 바로 중국 업체다. 

 

전기차 시장을 키우려면 후발 업체의 진출을 막는 것보다 우호 세력을 키워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 업체들의 진입장벽을 뚫는 게 더 중요하다. 삼성전자 같은 거물급 기업이 테슬라와 손잡고 전기차 시장을 푸시한다면 충분히 돌파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판단이다. 

 

삼성전자로서는 테슬라와 협력하면서 전기차 관련 기술과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다. 과거 스마트폰 시장 진출 때도 애플에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핵심 부품을 공급하면서 기술과 노하우를 축적하고 완제품 시장에서도 성공한 사례가 있다. 테슬라는 애플보다 훨씬 덜 까다로운 파트너다. 

 

테슬라는 삼성전자와 손잡고 전기차 후방 공급망을 강화할 수 있다. 현재는 일본 협력사들을 주로 활용하고 있지만, 늘어나는 판매량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후방 공급망을 강화해 규모의 경제 효과를 달성하면 전기차 가격을 낮춰 대중화 시대를 더 빨리 열 수 있다. 

 

오래 전부터 전기차 시장을 준비해온 LG그룹으로서는 섬뜩한 이슈다. 세계 최고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삼성전자를 핵심 파트너로 선정해 기술과 노하우를 공유한다면 스마트폰처럼 기회를 놓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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