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 원부자재 가격까지 상승하면 세계 경기 회복 지연 우려

▲중국 국가전력망공사가 지난 28일 전력 공급에 관한 긴급 화상 및 전화 회의를 열고 있다./홈페이지 캡처
▲중국 국가전력망공사가 지난 28일 전력 공급에 관한 긴급 화상 및 전화 회의를 열고 있다./홈페이지 

 

중국의 극심한 전력난이 세계 경제에 거센 파장을 미치고 있다. 가뜩이나 전세계적으로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는 가운데 최근 전력 공급 부족으로 중국내 생산 활동에 차질을 빚자 범 정부 차원에서 연료 확보에 나서면서 석탄을 비롯해, 천연가스‧석유 가격도 급격한 상승세다. 이로 인해 필수 원부자재 가격까지 상승하면 전 세계적으로 공급망 대란과 인플레이션 상승 압력을 키울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로 인해 세계 경기 회복이 지연될 위험이 커졌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석탄 공급 부족으로 인해 중국의 전력난이 가중되면서 당장 공장 가동이 줄어드는 현상이 가시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미국 생수병 제조사는 중국 당국으로부터 저장성 취저우에 있는 자사 공장이 가동이 평소보다 이틀 줄어든 주 4회만 가동할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전력도 사용 한도가 있어 공장 가동률이 3분의 1정도로 줄어들게 됐다. 이에 해당 제조사 CEO는 내년 봄 미국 내 소매 상품들의 가격이 15%까지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상하이 미국상공회의소(AMCHAM, 암참)는 최근 전기 배급 제한조치 때문에 중국내 미국 기업들이 주문 취소와 원자재 낭비, 사업 기회 상실 등 막대한 피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상하이 암참의 커 깁스 회장은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중국 정부는 전력을 끊기 불과 1~2시간 전에 통보하고 있다”며 “이처럼 갑작스런 전기공급 중단은 설비 손상을 초래하고 심지어 안전 문제도 야기한다”고 지적했다.

전력 사용 규제는 특히 생산 차질은 물론이고 전 세계적인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을 더욱 심화시키는 한편 자동차 업계에도 타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팅 루 노무라홀딩스 수석 이코니미스트는 “세계 시장은 섬유‧기계 부품 등의 공급 부족을 느낄 것”이라며 “이는 미국 등 선진국의 인플레이션을 부추길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에서는 전기요금도 올라 당장 현지 제조업이 타격을 입고 있다. 제조업 중심지인 광둥성은 전력 사용량 피크 시간대에 전기요금을 25% 인상했다. 광둥성에는 한국기업 180여곳도 생산 공장 등을 운영 중이다.

특히 중국의 전력난은 세계적으로 에너지 가격 인상도 부추기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석탄 가격이 오른 데다, 기후변화와 생산부진 등이 천연가스 가격도 끌어올리고 있다. 세계 다른 지역들의 산업용‧가정용 전기요금이 인상될 수 있다는 뜻이다.

WSJ에 따르면 석탄 가격의 글로벌 벤치마크인 뉴캐슬 화력 석탄은 지난 주 연초보다 141% 급등한 톤당 201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최고치다. 철강 제조에 사용되는 고급 야금용 석탄 가격은 연초보다 158% 상승한 615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2016년 기록한 전 고점의 거의 두 배에 이른다.

유럽 천연가스 거래 가격의 기준이 되는 네덜란드 거래소 천연가스 선물 가격도 지난달 30일 하루만에 14.7% 급등해 ㎿h당 99.31유로까지 치솟았다. 이는 지난 한 달 새 두 배 이상 오른 수치다. 천연가스 가격의 상승으로 이날 독일 전력 선물 가격은 최고 13% 오르며 ㎿h당 133유로로 치솟았다.

유가도 고공행진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북해산 브렌트유는 3년 만에 최고치인 배럴당 80달러를 돌파했다.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원유(WTI)의 선물 가격 역시 2018년 10월 이후 최고치인 75달러대를 기록하고 있다.

최근 중국 당국이 석유‧발전‧석탄 등 국유 에너지 기업을 대상으로 “겨울을 대비한 전력 공급 확보를 위해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라”고 지시하면서 국제 에너지 가격이 일제히 급등한 결과로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더욱이 난방 수요가 증가하는 동절기가 다가오면서 발전 관련 원자재 가격은 더욱 상승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미국을 비롯해 유럽 국가들까지 여파를 우려하며 긴장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최근 에너지 비용 상승으로 폐쇄된 비료 공장을 재가동하기 위해 보조금을 지급했다. 프랑스 정부는 봄까지 가정용 가스 및 전기 요금 인상을 불허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중국 정부는 전력 부족사태에 대응하느라 여념이 없으나 아직은 전기 사용 제한이나 요금 인상 등 당장 현실적인 처방에 급급한 상태다.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는 올해, 지난 1일부터 7일까지 중국의 국경절 연휴 모습이 달라진 게 단적인 예다. 매년 도심 번화가에서 벌어지던 화려한 조명쇼가 올해는 자취를 감췄고 가로수 야경도 대폭 줄어들었다.

이처럼 중국이 갑작스런 전력난을 겪게 된 원인은 우선 석탄 공급 부족이다. 중국의 전체 전력 생산에서 석탄 화력발전 비중이 68%나 되는데, 지난해 10월 중국은 외교관계가 불편한 호주의 석탄 수입을 금지하면서 수급 상황을 악화시켰다. 여기에 풍력발전도 9월 중순부터 풍속이 약해지면서 발전기를 돌릴 수 없게 됐다. 다른 지역보다 화력과 풍력발전 비중이 높은 동북 3성이 전력난의 타격을 가장 크게 받고 있는 이유다.

나아가 시진핑 주석이 내건 과제를 정부가 무리하게 추진해 온 원인도 있다. 시 주석은 지난해 9월 유엔 총회 연설에서 “중국의 탄소 배출량은 2030년에 정점을 찍고 2060년에는 탄소중립을 실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 중국 정부는 저탄소를 주요 정책과제로 삼았다. 문제는 현재까지 31개 성·시 중 16곳이 에너지 소비 감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대다수 성·시는 전력생산에 여력이 있는데도 전력공급을 조절하면서, 초유의 전력난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다만 중국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의 생산 차질은 아직 심각한 수준이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포스코는 지난 17일부터 중국 장쑤성 장자강시에서 운영 중인 장가항포항불수강 가동을 일부 중단했다. 현재 제강과 열연공장 가동은 중단됐으며 하공정인 냉연공장은 정상 가동 중이다. 이번 가동 중단으로 하루 약 3000톤t의 생산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예상되나, 회사 측은 이달부터 정상 가동이 가능해 연간 생산량에 차질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베이징 1·2·3공장, 창저우와 충칭 등 중국 내에 5개의 생산기지를 보유하고 있으나, 이 중 이미 일부만 가동하고 있어 무리 없이 가동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기아는 중국 장쑤성 옌청시에 3개 공장을 두고 있으나, 이 중 공장 2곳만을 가동하고 있어 생산에 무리는 없는 상황이다.

LG화학이 운영하는 장수성 우시의 양극재 공장은 생산라인이 정상적으로 가동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디스플레이도 중국 동관과 톈진에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와 모듈 생산공장을 운영 중이나 기존 생산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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