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및 마이크론은 설비투자 규모 줄이고, 삼성전자는 2018년 수준으로 예정
수요 및 수요 제한 요인이 상존하는 '뉴노멀' 시대 맞아 공급 및 투자 계획도 탄력적으로

올해도 메모리 업계의 허리띠 졸라매기는 계속된다. 

작년 하반기부터 수요 회복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대외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공정 전환에 따른 투자 비용 증가로 확실한 수요 없이 투자를 하기가 어려워진 탓도 있다.

수요와 수요 제한 요인이 상존하는 ‘뉴 노멀’ 시대를 맞아 이같은 기조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3개사 설비 투자, 작년보다 줄어들까

메모리 3개사의 설비투자 추이. 키옥시아(전 도시바메모리)는 공개된 적이 없어 제외했다. 단위는 조원. 삼성전자는 로직 투자 비용이 포함됐다./각 사, KIPOST 취합
메모리 3개사의 설비투자 추이. 키옥시아(전 도시바메모리)는 공개된 적이 없어 제외했다. 단위는 조원. 삼성전자는 로직 투자 비용이 포함됐다./각 사, KIPOST 취합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등 메모리 3개사의 설비투자(Capex) 계획이 모두 발표됐다.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은 지난해보다 설비투자 규모를 줄인다. 삼성전자는 2017년 수준으로 투자를 늘릴 계획이다.

마이크론은 회계연도(FY) 2020년 기준 70억달러(8조3167억원)에서 80억달러(9조5064억원) 사이의 설비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마이크론의 FY2018년 설비투자 금액은 82억달러(약 9조7441억원)였다. 업황이 좋지 않았던 FY2019년에도 90억달러(10조6947억원)를 투자했는데, 수요 회복세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회계연도 2018년보다 더 투자 규모를 줄이기로 했다. 

회사는 앞서 지난해 9월 회계연도 2019년 4분기 컨퍼런스콜을 발표하면서 2020년 회계연도의 전공정 장비 투자를 30% 이상 줄이겠다고 밝혔다. 웨이퍼 용량을 늘리는 대신 기술 전환으로 인한 비트 그로스 증가에 초점을 두고 설비투자의 투자대비 수익률(ROI)를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이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설비투자 규모를 지난해보다 더 줄일 전망이다. 이 회사는 지난 2018년에는 17조원에 달하는 설비투자를 했지만, 작년에는 12조7000억원을 투자하는 데 그쳤다.

그나마 나은 건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올해 메모리 투자 계획을 확실히 밝히지 않는 대신 공정 전환으로 수요에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수요가 전망치를 뛰어넘으면 평택 2기 양산을 시작하고 시안 2기 설비투자 속도를 앞당기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협력업계에 따르면 올해 삼성전자의 메모리 투자 금액은 14조원으로, 지난 2018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회복된다. 지난해에는 9조원까지 축소됐었다. 평택 2기 및 시안 2기의 양산 계획을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결정하면서 올해 투자 규모가 다시 늘었다.

평택 2기는 올해 가동 예정이지만 아직 양산 시점은 정해지지 않았다. 시안 2기는 지난해 연말 월 2만장 물량으로 양산을 시작했다.

업계 관계자는 “작년 딱 이맘때 쯤에도 삼성전자는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며 십수조원의 설비투자를 얘기했었다가 2분기께 말이 바뀌었었다”며 “올해도 내부적으로는 투자를 늘리겠다는 계획이지만, 또 언제 계획이 변할 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디에, 얼마나 투자할까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항공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항공 사진./삼성전자

종합해보자면 올해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의 설비투자 금액은 각각 14조원, 11조원, 9조원 수준이다. 

삼성전자의 올해 설비투자 메인은 시안 2기와 평택 2기다. 평택 2기는 이미 장비 반입이 시작됐고, 시안 2기에도 곧 장비가 들어선다. 

평택 2기는 복층 구조로 동편과 서편으로 나뉘어 총 4개 라인으로 꾸려진다. 규모는 평택 1기와 비슷한데, 각 라인당 300㎟ 웨이퍼 월 10만장 정도를 처리할 수 있는 용량이다. 가시설 및 인프라 조성 공사는 당초 지난해 말 완료될 예정이었지만 오는 4월로 미뤄졌다.

시안 2기는 낸드플래시 생산 라인이다. 1단계 프로젝트에 70억달러가 투자됐고 초기 월 웨이퍼 투입량 20만장 정도의 라인이 구축되고 있다. 준공 및 시생산 시점은 3월이다. 지난해 12월 2단계 투자도 시작돼 현재 인프라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D램보다 작년 말부터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낸드 투자를 먼저 집행할 것으로 보인다”며 “글로벌 서버 업계의 SSD 주문량이 주로 삼성에 치중돼있어 생산량을 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와 중국 우시 가오신구가 투자협력협약을 체결했다. /중관춘온라인 제공
SK하이닉스와 중국 우시 가오신구가 투자협력협약을 체결했다. /중관춘온라인 제공

SK하이닉스는 미세 공정 전환과 이천 M16의 클린룸 공사, 일부 보완 투자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8년 첫 삽을 뜬 M16은 오는 10월 완공 예정으로 연말 시생산을 시작한다. 램프업 시점은 내년이다.

지난 2018년 가동을 시작한 M15는 낸드플래시 전용 공장으로, 현재까지 웨이퍼 투입용량은 월 2만장 정도에 그친다. SK하이닉스의 M15 램프업 시점은 올해 2분기로 예측되지만 아직 장비 발주는 나오지 않았다. 우시 2공장은 지난해 가동을 시작했는데, 아직 수량이 월 2만장으로 많지 않다. 우시 2공장 투자 역시 하반기로 예상된다.

또다른 장비 업체 관계자는 “SK하이닉스는 올해도 공정 전환에 쓰는 비용이 가장 많을 것”이라면서도 “공정 전환을 하면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삼성의 경우 생산량을 이에 맞춰 늘리면서 수요에 대응하고 있지만 SK하이닉스는 아직 설비 투자 계획을 정확히 공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마이크론은 올해 신규 투자보다 공정 전환에 집중한다. 올해 여름까지 1y 나노 및 1z 나노 D램의 비트 생산량을 현 비트 생산량보다 늘릴 예정(크로스오버)으로, 특히 1z 나노 D램은 모바일을 중심으로 생산량을 증대시킬 계획이다.

올해 상반기 기업공개(IPO)를 앞둔 키옥시아(전 도시바 메모리)는 공모 자금으로 요카이치 신규 공장(Y6)에 월 4~5만장 수준의 장비 투자를 집행, 낸드 생산량을 램프업할 계획이다. 

 

‘뉴 노멀’ 시대 맞은 메모리 업계

지난 2018년 하반기, 업계에서는 메모리 산업에 새로운 성장 주기가 만들어질 것이라며 ‘뉴 노멀(New normal)’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기존 성장 주기는 수요에 따라 4년을 주기로 업황이 상승과 하강을 반복했다면, 이제는 공급이 주도권을 쥐고 수요에 맞춰 점진적으로 성장하는 모델로 산업이 바뀔 것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최근 메모리 업계에서 ‘뉴 노멀’은 다른 의미로 쓰인다. 수요 요인과 대외불확실성 등 이를 상쇄하는 요인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라는 것이다. 설비투자 비용이 수조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뉴 노멀’은 곧 탄력적 투자 및 공급으로 이어진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일각에서는 메모리 시장의 수요가 회복세를 보인다며 업계가 다시 지난 2018년의 영광을 누릴 것으로 예측한다. 하지만 판단을 내리기엔 시기 상조라고 업계는 입을 모은다. 수요는 회복되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이 기세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일단 수요 요인은 확실하다. 5세대 이동통신(5G)의 확산으로 기기 당 D램 및 낸드 탑재량이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인프라 투자는 예상보다 느리지만, 서버의 D램 탑재량 자체가 늘어나 전체 수요는 증가하는 추세다.

 

인텔의 캐스케이드 중앙처리장치(CPU)는 전작인 제온 스케일러블에 비해 서버당 D램 채용량을 최대 4배 늘릴 수 있다./인텔

재고 정상화로 2018년 메모리 붐을 일으켰던 인터넷데이터센터(IDC) 업계의 구매도 재개됐다. 인텔의 캐스케이드 중앙처리장치(CPU) 채택이 확산되면서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인텔 캐스케이드 CPU는 하나에 12채널 DDR4 메모리를 지원한다. 서버 한 대당 2개의 CPU를 장착할 수 있으니 전작인 제온 스케일러블에 비해 4배 많은 D램을 넣을 수 있다.

다만 재고 조정에 따른 추가 재고 확보 차원에서 구매를 하는 경우도 있어 서버 업계 수요가 2018년만큼 증가할 가능성은 낮다. 

삼성전자는 컨퍼런스콜을 통해 “데이터센터 고객사들로부터 올해 수요를 확대할 조짐을 보인 건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수요 반등 사이클에 진입했다고 단언하기엔 신중한 입장이고, 다시 수요가 둔화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해보다 수요가 늘어나는 것은 확실해보이지만, 대외불확실성을 무시할 수 없다. 가장 큰 걸림돌인 미-중 무역전쟁은 쉽사리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두 강국이 미래 기술 패권을 두고 칼을 겨누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 개발 및 전환에 드는 비용도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한 번 투자에 수조원이 거뜬히 들어가면서 초기 생산량도 점차 감소하는 추세다. 3~4년 전만 해도 신규 공장 가동시 월 3만장의 생산량을 채우고 그 이후 추가로 램프업을 진행했다. 현재는 1~2만장을 채운 다음 시황을 봐 추가 투자를 결정한다.

장비 업계 관계자는 “웨이퍼 업계가 확실한 수요 없이는 투자를 하지 않는 방향으로 선회했듯, 메모리 업계도 마찬가지”라며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그때그때 수요를 감안해 공급량을 조절하고 제품 믹스를 통해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게 모든 업체들의 공통적인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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