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유치에, 자율주행 검증 플랫폼에… 단일 기술 개발조차 어려워
생태계 구축 시급한데 빗장 풀 생각 없는 국내 완성차(OEM) 업계

▲현대·기아자동차의 자율주행 콘셉트.
▲현대·기아자동차의 자율주행 콘셉트.

<스타트업으로 자율주행 만들기> 시리즈는 자율주행 관련 기술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을 모아놓으면, 자율주행차를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기획했다. 인터뷰를 요청할 때 제목부터 얘기하곤 했는데, 이 말을 들은 한 스타트업 대표가 대뜸 물었다.

“스타트업이 자율주행차까지 만들어야 하나요? 그게 가능하기나 한가요?”

그렇다. 스타트업은 자율주행차를 만들 수 없다. 기술 개발부터 양산에 이르기까지의 자금을 모으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사람들이 걱정 없이 이들의 차를 탈만큼 신뢰를 쌓기도 어렵다. 이 시리즈에 나온 그 어떤 스타트업도 ‘자율주행차’를 만들겠다고 하지 않은 건 이 때문이다.

사실 국내에선 단일 기술을 개발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초기 개발을 끝낸 다음 시제품 제작을 위해 시리즈 A 투자를 받는다. 보통 시리즈 A에서는 수십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는데, 국내 벤처캐피탈(VC)은 목표 회수 기간이 평균 2~3년이다. 투자를 유치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자동차는 기술 검증에만 수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하드웨어(HW) 스타트업은 제품 하나를 만드는 데 투자 자금을 몽땅 쏟아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인건비·임대료 등 고정지출비를 감당하려면 결국 정부 프로젝트를 따내거나 빚을 내야 한다. 제품 개발에 집중해도 모자를 판에 역량이 분산된다. ‘영혼을 판다’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올 정도로 대표들이 투자에 목을 매는 건 이 때문이다. 

시제품을 검증할 자율주행차가 없는 건 더 큰 함정이다. 아무리 성능 좋은 부품과 알고리즘이라도 차량 내 다른 부품·알고리즘과 충돌한다면 무용지물이다. 하지만 국내 그 어떤 기업이나 기관도 자율주행차 검증 플랫폼을 갖추고 있지 않다. 

애초에 단일 기업이 자율주행차에 들어가는 모든 요소 기술을 개발하는 건 불가능하다. 완성차(OEM) 업체들이 8차 협력사까지 이어지는 광범위한 공급망(SCM)을 구축했듯 자율주행차를 만들 때도 생태계를 만들어야한다.

 

▲자율주행 시대, 자동차는 스마트폰처럼 온갖 애플리케이션(앱)이 들어가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IT기기가 된다./현대엠앤소프트
자율주행 시대, 자동차는 스마트폰처럼 온갖 애플리케이션(앱)이 들어가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IT기기가 된다./현대엠앤소프트

결국 자율주행차를 만드는 주체는 차량 양산 경험이 있고, 자금도 문제 없으며, 검증 플랫폼과 생태계를 만들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완성차 업체다.  

하지만 국내 완성차 업체와 스타트업 간의 협력은 요원한 얘기다. 만나기조차 어려운 게 현실이고, 심지어 투자를 받았어도 협력은 별개다. 인터뷰를 했던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국내 업체가 아닌 글로벌 업체들과 손잡고 있던 건 이 때문이다. 

글로벌 업체들이 국내 스타트업과 손을 잡는데도 국내 완성차 업체는 여전히 빗장을 풀지 않고 있다. 굳이 국내에 있을 이유가 없으니 스타트업들은 해외 이전도 검토하고 있다. 우리 땅에서 개발된 요소 기술과 우수 인재들이 해외로 빠져나간다. 이같은 현실 때문에 아예 회사를 실리콘밸리에 세운 스타트업도 있다.

완성차 업체 입장에선 스타트업이 아닌 검증된 글로벌 업체들의 기술을 활용해야한다고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10년 후 국내 완성차 업체는 껍데기만 만드는 회사로 전락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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