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SK이노베이션의 IT 신사업 잔혹사
[현장에서] SK이노베이션의 IT 신사업 잔혹사
  • 안석현 기자
  • 승인 2021.03.14 09: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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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TAC·FCCL 사업 좌초
투명 PI도 시장 환경 불리
美 대통령 거부권 행사 시한은 한 달

# 지난 12일 LG에너지솔루션이 내놓은 미국 내 5조원 투자 발표는 사실상 바이든 행정부에 보내는 공개서한이다. LG가 이만큼 투자할테니, 설사 SK이노베이션이 미국서 철수하더라도 일자리 걱정은 접어 두란 메시지를 담았다. 

ITC(국제무역위원회) 결정에 대한 바이든 행정부의 거부권 행사 여부는 SK이노베이션의 유일한 동앗줄이다. SK이노베이션은 LG에너지솔루션의 발표가 마지막 일격처럼 싸늘하게 느껴질 것이다.

지난 2019년 3월 열린 SK이노베이션의 미국 조지아주 배터리공장 기공식. /사진=SK이노베이션
지난 2019년 3월 열린 SK이노베이션의 미국 조지아주 배터리공장 기공식. /사진=SK이노베이션

#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 사업은 말 그대로 사면초가다. 최악의 경우 미국 시장을 뜬다지만, 유럽⋅남미⋅아시아 시장이라고 소송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소송의 천국’ 미국 ITC 결정은 각국 법원 판결에 간접 영향을 준다. 

그간의 사정을 뒤집을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다른 나라 법원 판결 내용도 ITC 결정에 부분적으로 예속될 수 밖에 없다. 통상 영업비밀 침해 소송은 침해 장본인 뿐 아니라, 그 제품을 구매해 완제품을 만든 고객사에도 배상 책임을 묻는다. 손해배상 가능성이 묻은 배터리를 사다 쓸 자동차 메이커는 그 만큼 줄어들 것이다.

그렇다고 LG에너지솔루션 요구처럼 3조~4조원의 배상금을 건네기도 어렵다. 올해 1월 기준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수주잔고는 70조원 정도다. 영업이익률 5%를 잡아줘도(현재는 이마저도 안 된다), 수주해서 남기는 돈 전부를 LG에너지솔루션에 갖다 바쳐야 한다. 이럴바엔 사업 전체를 철수하는 게 낫다.

 

# 정유 사업이 모태인 SK이노베이션은 2010년 이후 ‘탈(脫) 정유’를 위해 무던히도 애썼다. 주로 IT용 소재⋅부품 사업에 초점을 맞췄으나, 현재까지 성적표만 보면 배터리 사업과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 2011년 투자한 LCD용 TAC(트리아세틸셀룰로오스) 필름은 시장 트렌드를 잘못 읽었다. SK이노베이션이 상업생산에 돌입한 2014년에 이미 LCD 시장이 TAC을 쓰지 않은 ‘비(非) TAC’ 계열 편광판을 쓰기 시작했다. 일본 후지필름과 코니카미놀타에 끼어 겨우 양산했는데, 이미 시장 판도는 뒤집어진 상태였다.

FCCL(연성동박적층판) 사업은 이미 공급 과잉 체제로 접어든 시장에 뒤늦게 뛰어들었다. 2011년 사업 진출 이래 연 900㎡ 규모까지 덩치를 키웠으나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다. 앞서 두산전자·LS엠트론·LG화학·이녹스 등이 경쟁적으로 투자하면서 가격이 급락했다. 결국 FCCL 사업도 2018년 한 사모펀드(PEF)에 매각했다.

2018년 사업 진출을 선언한 투명 PI(폴리이미드)는 앞서 실패한 TAC 생산설비를 일부 재활용해 시작했다. 역시 투명 PI 사업에 뛰어든 SKC와의 교통정리는 제쳐두고라도, 시장 상황이 좋지 않게 흐르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가 폴더블용 OLED(유기발광다이오드)에 투명 PI 대신 UTG(초박막유리)를 적용하면서다. 요즘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폴더블 OLED를 구입해 쓰는 중국 스마트폰 브랜드들도 UTG를 적용한 제품을 선호한다.

FCCL의 구조. SK이노베이션은 2018년 FCCL 사업을 한 사모펀드에 매각했다. /자료=SK이노베이션
FCCL의 구조. SK이노베이션은 2018년 FCCL 사업을 한 사모펀드에 매각했다. /자료=SK이노베이션

# SK이노베이션이 웬만한 중견기업 덩치였다면 이미 몇번이고 회사가 휘청거렸을 것이다. 그나마 현금 창출력 좋은 정유 사업 덕에 이만큼 버텼다. 

그러나 이번 LG에너지솔루션과의 법정 공방은 앞서 겪은 시행착오들이 수업료로 느껴질 만큼 훨씬 엄중하다. 정치권이 바라는 ‘오너 간 회동을 통한 통 큰 화해’는 기대할 수 없다. 반시장적이고, 주주들이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시한은 앞으로 한 달. SK이노베이션의 신사업 잔혹사가 해피엔딩으로 귀결될 반전이 나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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