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일본에, 가격은 중국⋅태국⋅UAE에 밀려
PET 고부가 전환보다 동박 투자 시급하다 판단
폴더블용 투명 PI도 '실패한 투자'

SKC가 기업 모태이자 세계 4위 생산능력을 보유한 PET(폴리에스테르) 사업을 매물로 내놨다. PET은 산업용 포장재부터 디스플레이용 광학필름까지, 다양한 소재의 모재(母材)로 쓰이는 만큼 수요가 꾸준하다. 다만 중국·태국을 중심으로 공급과잉 사이클이 도래하는 시기에는 국내 업계도 만성 적자에 시달릴 정도로 수익성은 들쭉날쭉하다. 

SKC는 PET 필름 사업을 고부가가치 전환하기보다 2차전지 동박사업에 집중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PET 필름. /사진=piedmontplastics
PET 필름. /사진=piedmontplastics

SKC, PET 사업 1.6조원에 매각

 

SKC는 2일 조회공시 답변을 통해 “PET 필름 사업(인더스트리 소재사업부문)에 대해 매각을 포함한 다양한 옵션을 한앤컴퍼니와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PET필름 사업 매각이 진행되고 있음을 시인한 것이다. 현재 SKC와 한앤컴퍼니 간 조율하고 있는 매각 금액은 약 1조600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SKC의 PET 필름 사업을 담당하는 ‘인더스트리 소재사업부문’은 매출 볼륨으로 보면 사내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작년 기준 SKC의 매출 3조3960억원 중 1조1318억원이 해당 사업부문에서 나왔다. 매출의 33%를 PET 관련 사업에서 거둬들이는 것이다.

다만 큰 매출 볼륨에도 불구하고 이익 기여도는 크지 않다. 지난해 각 사업부 중 가장 큰 영업이익을 거둔 곳은 화학사업부(3320억원)였다. 그 다음은 2차전지 동박을 생산하는 SK넥실리스(800억원), 인더스트리 소재사업에서는 690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는데 그쳤다. 

이익률로 보면 인더스트리 소재사업은 한 자릿수 중반(6.1%)이다. 화학사업(30.1%), SK넥실리스(12%)와는 격차가 크다. 그나마도 2019년 이전까지 인더스트리 소재사업은 적자와 흑자를 오가며 회사의 ‘아픈 손가락’으로 통했다.

용도에 따른 PET. /자료=KIET
용도에 따른 PET. /자료=KIET

SKC가 최근들어 안정적인 이익을 내기 시작한 인더스트리 소재사업을 매각하려는 건, 향후 전망이 밝지만은 않아서다. SKC가 세계 4위의 PET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다지만, PET 생산업체는 세계적으로 수십개에 달할 정도로 많다. 

그 중에서 기술력에서는 도레이⋅도요보 등 일본 업체들이 강세며, 가격 경쟁력은 중국⋅태국⋅UAE 등 후발주자들이 막강하다. 국내 PET 산업은 기술력에서는 아직 일본에 미치지 못하면서 후발주자들 저가 공세에 시달리는 샌드위치 신세다. 

이 때문에 SKC는 2010년 이후 광학용 PET와 전기전자용 PET 등 고부가가치 제품군으로 전환을 시도해왔다. 광학용 PET의 경우, 국내 디스플레이 산업이 LCD에서 OLED로 전환되면서 근원적인 한계에 봉착한 상태다. LCD는 모듈 내에 프리즘시트⋅반사필름⋅편광판 등 PET가 모재로 사용되는 필름 수요가 많다. 그러나 OLED는 편광판 정도에만 PET가 쓰일 수 있으며, 이마저도 양은 LCD의 절반에 불과하다. LCD는 편광판이 두 장씩, OLED는 한 장씩 들어간다.

최근 삼성디스플레이가 30여년만에 LCD 사업에서 완전 철수하고, LG디스플레이 역시 LCD 생산 비중을 지속적으로 줄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광학용 PET 입지가 좁아질 수 밖에 없다. 

스마트폰용 투명 PI. /사진=SKC
스마트폰용 투명 PI. /사진=SKC

폴더블 OLED 시장을 보고 투자한 투명 PI(폴리이미드)도 인더스트리 소재사업부 소관이다. 투명 PI는 사실상 실패한 투자다. 폴더블 OLED 생산점유율 90% 이상을 차지하는 삼성디스플레이가 투명 PI 대신 UTG(초박막유리)를 커버윈도 소재로 택한 탓이다.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폴더블 OLED를 구매해 폴더블 스마트폰을 생산하는 삼성전자는 1세대 제품 이후로는 100% UTG 타입 OLED만 구매하고 있다. 

한 필름산업 전문가는 “그나마 수익성이 회복된 지금이 인더스트리 소재사업부를 제값을 받고 매각할 수 있는 적기”라고 말했다. 

 

PET 사업 매각 대금, 동박에 집중될 듯

 

PET 사업 매각으로 유입되는 현금은 거의 대부분 2차전지용 동박 투자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업에 SNE리서치에 따르면 SK넥실리스의 동박 시장 점유율은 22%로, 세계 1위다. 다만 중국의 왓슨(19%), 대만의 창춘(18%) 등 경쟁사와의 격차는 크지 않다. 

현재 연 5만톤 수준인 동박 생산능력을 2025년까지 다섯배인 25톤 수준으로 늘리기 위해서는 매년 수천억원 투자가 들어가야 한다. 내부 보유자금에 차입을 통해 조달하는 자금만으로는 투자 규모를 감당하기 어렵다. 따라서 사업 전망이 좋지 않은 PET 사업을 적기 매각하고, 이를 통해 벌어들인 자금을 동박 사업에 투자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2차전지용 동박. /사진=일진머티리얼즈
2차전지용 동박. /사진=일진머티리얼즈

한 배터리 산업 전문가는 “일진머티리얼즈가 동박 사업 매각에 나선 것도 천문학적인 투자 자금에 대한 부담 때문”이라며 “SKC 정도 규모에서도 사업에 대한 선택과 집중을 해야할 정도로 동박사업에 소요되는 자금이 막대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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