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반도체, 파운드리 입장선 부가가치 낮아
수요 예측 실패로 인한 일시적 상황으로 판단
테슬라만 차 반도체 수급 이슈 비껴선 이유는?

차량용 반도체 품귀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 가격이 오른다지만, 여전히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는 차량용 반도체 생산라인 증설에 소극적이다.

PC⋅모바일에 비해 부가가치가 낮은 데다, 전동화 전환이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차량용 반도체 수급 이슈가 얼마나 지속될지도 불확실하다. 통상 공장 증설에서 수율 확보까지는 최소 2년의 시간이 걸린다. 비용을 들여 생산라인을 건설했는데, 그 사이 수요가 감소하면 투자비조차 건지기 어려울 수 있다. 파운드리 업체들이 차량용 반도체 생산라인 확대를 모험으로 판단하는 이유다.

TSMC 파운드리 내부 전경. /사진=TSMC
TSMC 파운드리 내부 전경. /사진=TSMC

 

반도체, 파운드리에 부가가치 낮아

차량 1대에는 평균 200~300개 반도체가 들어간다. 그중 가장 비중이 높은 제품이 MCU(마이크로컨트롤러)다. MCU는 차량 전장시스템 제어 기능을 한다. 브레이크·변속기 등 주요 부품에 들어가는 MCU는 엔진 컨트롤, 디스플레이 정보 표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할을 한다. 

차량용 반도체는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의 10분의 1 정도를 차지한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차량용 반도체시장 점유율은 일본의 르네사스 일렉트로닉스(10.2%)와 독일 인피니언(10.1%)가 각각 1⋅2위를 차지했다. 네덜란드 NXP (8.3%), 미국 텍사스 인스트루먼트(6.9%), 스위스 ST마이크로(6.9%), 독일 보쉬(4.7%) 등이 뒤를 이었다.

반면 파운드리 업체 입장에서 차량용 반도체 매출 비중은 크지 않다. 전 세계 MCU 물량의 약 70%를 위탁 생산하는 TSMC의 차량용 반도체 매출은 전체의 3%에 불과하다. 안전 관리 등 높은 신뢰성이 요구되는 차량용 반도체는 PC⋅모바일에 비해 부가가치가 낮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자동차 수요가 급감하자 TSMC는 차 반도체를 생산 우선순위에서 가장 먼저 뒤로 밀어냈다. 

차량용 반도체는 요구조건은 까다로운 반면 생산성⋅수익성은 낮은 편이다. 최소 7~8년 이상 유지되는 내구성은 물론 영하 40도에서 영상 155도의 온도조건에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이 같은 제약은 상당수 파운드리 공정에 반영된다. PC⋅모바일용 칩 생산에는 쓰이지 않는 투자가 뒤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200㎜ 웨이퍼와 300㎜ 웨이퍼의 비교./UMC
200㎜ 웨이퍼와 300㎜ 웨이퍼의 비교./사진=UMC

단일 품목에 대한 생산 수량도 적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도 어렵다. MCU 생산용 웨이퍼인 8인치 웨이퍼(200mm)는 12인치 웨이퍼(300mm)에 비해 생산성이 낮은 편이다. 여전히 90~180나노미터(nm)대 제조 공정이 사용돼 부가가치도 낮다. 반면 12인치 웨이퍼는 8인치 웨이퍼보다 직경이 커 생산량이 2.25배 많다. 5~20나노미터(nm) 기술이 적용돼 모바일 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 등 부가가치가 높은 반도체가 생산된다. 업계가 8인치 웨이퍼용 반도체 설비를 점차 폐쇄한 이유다. 

한 디자인하우스 업체 임원은 "8인치 웨이퍼에서 생산되는 MCU의 경우 보쉬, NXP 등에서 단순 생산만 맡기는 형태여서 마진율이 낮다"며 "반면 안전관련 인증이 까다로워, 설계뿐 아니라 공정에도 요구조건이 까다롭다. 관리 비용은 높고, 티어1에서 주는 마진율은 낮기 때문에 파운드리 입장에서 매력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차량용 반도체 설계전문 업체 관계자도 "차 반도체는 모바일 디바이스 대비 품질관리와 관련된 간접비가 많이 든다"며 "가격이 소폭 오른다 하더라도 칩 생산량이 억 단위인 모바일에 비해서는 수량이 적다보니 생산업체 입장에서 부가가치가 낮은 사업"이라고 밝혔다. 

물론 마진율이 낮다는 것은 8인치 웨이퍼에서 생산되는 반도체를 전제한다. 업계는 전동화 전환 시 파운드리 입장에서도 차량용 반도체에 대한 투자 유인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자동차용 AP 등 고성능 반도체 생산이 증가한다면, 12인치 웨이퍼에서 생산되는 반도체 역시 증가하기 때문이다. 공정의 난이도가 높아지면 파운드리 입장에서도 투자 유인이 높아진다. 한 디자인하우스 업체 관계자는 "수익성이 낮다는 것은 8인치 웨이퍼에서 생산되는 레거시 공정을 전제하는 것이지 12인치 웨이퍼라면 얘기가 달라진다"며 "자율주행차에는 모바일에 들어가는 것과 유사한 성능의 칩들을 필요하며, 12인치 웨이퍼에서 생산되는 칩이 늘어난다면 파운드리 입장에서 차 반도체 부가가치도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파운드리, 생산라인 증설에 소극적

상황이 이렇다 보니 파운드리 업체들은 생산라인 증설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현재 8인치 웨이퍼에서 생산되고 있는 차량용 반도체 생산을 위해서는 기존 생산라인을 교체하거나 새로 깔아야 한다. 당장 생산라인 확대에 나선다 해도 공장 증설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공장 증설의 경우 생산 시스템을 갖추고, 수율을 확보하기 까지 최소 2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공장 구조물을 건설하고, 장비를 설치하고 생산시스템을 갖추기까지 각각 최소 1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시스템을 갖춘 뒤에도 시험 생산을 거쳐야 양산시스템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파운드리 업계는 차량용 반도체 수급 부족 현상을 수요 예측 실패로 인한 일시적인 상황으로 판단한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내구재 수요가 급감하면서 완성차 업체들이 차량용 반도체 수요를 줄였고, TSMC 등 파운드리 업체들은 수요가 급증한 PC⋅모바일 등 IT기기 반도체로 대체했다. 하지만 예측과 달리 자동차 주문이 늘면서 차량용 반도체 수급 부족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비용을 들여 생산라인을 건설했는데, 그 사이 수요가 감소하면 투자비조차 건지기 어려울 수 있다. 

2025년 자동차 아키텍처 전망./자료=한국자동차연구원
2025년 자동차 아키텍처 전망./자료=한국자동차연구원

전동화 전환이 가속화하는 상황도 변수다. 자동차 한 대를 생산하려면 2만개가 넘는 부품이 필요한 내연기관차와 달리 전기차에 들어가는 부품은 1만 3천여개에 불과하다. 구조는 단순해지고, MCU처럼 단순 동작만 제어하는 반도체 수요는 적어진다. 

이번 차량용 반도체 수급 이슈에서 유일하게 비껴간 회사가 테슬라다. 모델3의 차량 주요 기판은 불과 5개다. 기존 엔진 차량의 60-70개보다 훨씬 적은 수다. MCU 1개, 오토파일럿 ECU 1개, 고성능 보디컨트롤러 3개가 전부다. 차량의 모든 기능은 전자제어장치인 ECU가 수행하며, 차량 전체를 통합 제어하는 것은 자체 운영체제(OS)다. 파운드리 업체들이 장시간에 걸쳐 차량용 반도체 생산라인 확대에 나서는 것을 모험으로 판단하는 이유다.

한 차량용 반도체 설계전문 업체 관계자는 "테슬라만 이번 수급 이슈에서 타격을 받지 않았다. 통합 ECU를 쓰는 테슬라는 MCU를 많이 탑재하는 구조가 아니며, 향후에는 현재처럼 칩이 많이 필요하지도 않을 것"이라며 "대다수 업체가 테슬라가 미래 전기차 방향으로 보고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전환하는데 생산업체 입장에서 현 상황만 보고 대규모 투자를 하기가 꺼려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차량용 반도체 수급 차질이 올 6월을 정점으로 3분기까지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 차량용 반도체 업체 전문가는 "차량용 반도체 수급 이슈는 파운드리 측면에서의 투자유인이 적어 장기화 할 수밖에 없다"며 "관건은 PC⋅모바일 수요다. 대만 노트북 출하량이 4월부터 감소하기 시작했는데 언택트 경제가 컨택트 경제로 전환되고 이들 수요가 꺾이기 시작하면 정점에 이른 차 반도체 수급 이슈도 조금씩 해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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