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형 벤더 위한 IP 절대적 부족
IP 구축과 IP 신뢰도 확보는 다른 문제
실리콘 검증된 IP 확보에는 시간 더 걸릴 것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사업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 투입되는 금액만 171조원이다. 그러나 정작 삼성전자가 대만 TSMC를 따라잡기 위해 설비투자 이상으로 신경써야 하는 분야가 IP(설계자산)라는 지적이 나온다.

다양한 IP 포트폴리오는 고객이 내 칩을 어느 파운드리 회사에 맡길 것인가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다. IP 다양성 확보도 중요하지만, 실리콘 검증(silicon-proven)된 IP인지 여부도 중요하다.

팹리스들이 삼성전자를 떠나 중국⋅대만 파운드리로 발길을 돌리는 이유다.

삼성전자 서초사옥 사진./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 서초사옥./사진=삼성전자

중소형 벤더 위한 IP 절대적 부족

"삼성 파운드리 기술을 탑재한 IP가 현재 3300개다."

지난해 박재홍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 부사장이 '삼성 파운드리 SAFE 포럼'에서 밝힌 말이다. 자신있게 공개한 숫자지만 1만여개에 달하는 IP를 보유한 TSMC에 비해서 턱없이 적다. 

IP는 반도체 설계를 위한 핵심 자산이다. 시스템 반도체 설계시 반복적으로 재사용 가능한 기능 블록을 의미한다. 파운드리 업체는 공정에 미리 다양한 IP를 포팅(이식)해 놓아야 설계 업체를 매끄럽게 지원할 수 있다. 대형 벤더 위주로 수주를 받아 온 삼성전자는 공정에 포팅된 IP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평가다. 

한 반도체 후공정 업체 임원은 "삼성전자 파운드리의 가장 큰 약점은 IP다. 대형 벤더 위주로 수주를 받아 그 위주로만 IP가 준비돼 있다"며 "TSMC는 대형 벤더뿐 아니라 중소형 벤더로부터 수주 받은 경험도 많아 IP가 다양할 뿐만 아니라 실리콘 검증된 IP가 많다"고 말했다.  

각 파운드리별 고객사 현황 및 의존도. /자료=IBK투자증권
각 파운드리별 고객사 현황 및 의존도. /자료=IBK투자증권

업계가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점은 두 가지다. IP 포트폴리오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것과 실리콘 검증된 IP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 주요 고객사는 퀄컴⋅애플⋅시스템LSI 등 대형 벤더들이었다. 이들이 필요로 하는 디지털 IP는 상대적으로 잘 구축돼 있지만 중소형 벤더들이 요구하는 아날로그 IP는 부족하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디지털 IP는 CPU(중앙처리장치)⋅GPU(그래픽처리장치)⋅NPU(신경망처리장치)IP나 메모리 IP 등을 의미한다. 주로 칩 내부에서 컴퓨팅 가속을 돕는 역할을 한다. 고성능 컴퓨팅을 위한 큰 칩을 만드는 대형 벤더들은 디지털 IP와 칩 내부와 외부 연결을 돕는 인터페이스 IP를 주로 사용한다. 

삼성전자의 경우 대형 벤더들을 위한 IP, '엑시노스' AP(애플리케이션)를 만들면서 구축한 IP, 자사가 강점을 보이는 메모리 IP는 상대적으로 구축이 잘 돼 있는 편이다. 한 디자인하우스 관계자는 "퀄컴⋅애플은 전형적으로 모바일에 들어가는 디지털IP를 많이 쓰는 고객들"이라며 "대형 벤더들이 요청을 해서 한번 IP를 구축해 놓으면 당연히 그 IP는 포팅돼 있다. 중소형 팹리스를 위한 IP는 물론 IP 라이브러리 자체가 매우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IP개발 관련 직무 소개./자료=삼성전자

대형 벤더들을 위한 IP라고 모두 구축돼 있는 것도 아니다. 예컨대 테슬라가 7nm(나노미터) 공정에서 DDR5 D램을 사용해 칩을 만들었다면 이는 수주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를 위한 IP는 준비가 돼 있다. 만약 10nm 공정에서 DDR4 D램을 써서 칩을 만들고 싶은데 삼성전자가 이와 관련해 수주 계약을 체결한 적이 없다면 이를 위한 IP는 준비돼 있지 않은 것이다. 

한 팹리스 업체 CTO는 "삼성전자가 엑시노스 AP를 많이 만들기 때문에 자사 칩과 관련된 7nm, 4nm 공정은 준비가 잘 돼 있다"며 "오히려 자사와 관련되지 않은 10nm, 14nm와 관련된 준비가 부족하다든지, 아직 다각도에서 IP에 대한 준비가 많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IP 신뢰도 확보까지는 시간 더 걸릴 것

물론 중소 팹리스들의 이 같은 불만 사항을 삼성전자도 모를 리 없다. 삼성전자 역시 핵심 IP 개발에 주력하는 등 IP 확보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당장 IP 구축에 나서더라도 신뢰도 높은 IP 포트폴리오 구축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IP 우수성의 전제는 ‘원하는 조건에서 원하는 성능이 나오는가’에 있다. 이 우수성은 이미 그 IP가 다른 칩에서 원하는 성능을 구현해 실리콘 검증된 IP를 의미한다. 

김휘원 한국반도체연구조합 연구지원본부장은 "동일한 기능을 하는 IP와 신뢰성 있는 IP확보는 다른 얘기"라며 "도로를 달려본다면 자갈길도 달려보고, 산길도 달려보고, 모래사장도 달려보고, 그러다 보면 그 차의 성능이 나오게 된다. 도로에서만 열심히 잘 달린다는 것만 가지고는 IP 신뢰도를 확보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TSMC 파운드리 내부 전경. /사진=TSMC
TSMC 파운드리 내부 전경. /사진=TSMC

만약 특정 IP가 5나노 공정에서 대량생산을 해서 실제 그 칩이 실제 사용되고 있다면 고객은 이를 믿고 그 IP를 사용할 수 있다. 이러한 신뢰도는 다른 고객이 그 IP를 사용한 이력이 있을 때에만 확보된다. 예컨대 동일한 IP라고 하더라도 어떤 고객이, 어떤 용도로 사용했느냐에 따라 IP 신뢰도는 달라진다. 

같은 IP여도 모바일에서 구동되는 저전력이 중요한 칩이 있을 수 있고, 반면 칩 크기는 상관없지만 큰 전압을 견뎌야 하는 칩이 있을 수 있다. IP가 구축돼 있다고 해도, 실제 고객이 사용하고자 하는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적합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다.

김종원 GIST(광주과학기술원) AI대학원장은 "파운드리에서 IP가 많이 쓰일수록 신뢰도가 높아지는 것은 여러 방향의 칩에서 검증이 됐다는 의미"라며 "특정 칩에서 잘 구동이 됐다면 또 A와 비슷한 칩에서 사용되고, 이런 식으로 특정 용도에 대한 그 IP의 신뢰도가 쌓여간다"고 말했다. 한 팹리스 업체 관계자는 "실리콘 검증된 IP를 쓰는 게 팹리스들에게는 굉장히 중요하다. 검증되지 않은 IP라면 실제 칩에서 돌렸을 때 버그가 생기는 등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신뢰도 높은 IP가 얼마나 구축 여부가 파운드리 선택에 있어서 중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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