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LCD가 선점효과
W OLEDoS, RGB OLEDoS, LEDoS 등 개발 경쟁

내년에 애플이 VR 기기를 출시하는 시점부터 AR⋅VR용 마이크로 디스플레이 시장이 급격히 개화할 거라는 데 이견은 없다. 소수 게이머의 전유물에 불과했던 AR⋅VR이 애플 특유의 UX(사용자경험)에 맞물리면 수요가 창출될 것으로 보는 것이다.

다만 아직까지는 AR⋅VR용 디스플레이는 과도기며, 여러 방식의 기술이 경쟁하는 시장이다. 이처럼 기술이 파편화할 경우, 규모의 경제가 도래하는 시점이 늦어지면서 단가를 낮추는 데 한계가 있을 거란 의견도 나온다.

LCD 디스플레이를 장착한 '오큘러스 퀘스트 프로'. /사진=메타
LCD 디스플레이를 장착한 '오큘러스 퀘스트 프로'. /사진=메타

 

① 싸고 검증된 LCD

 

현재 게이머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VR 기기의 디스플레이는 LCD다. 디지털 게임유통 플랫폼 스팀이 지난 9월 발표한 집계에 따르면 스팀에 접속하는 VR 게이머 중 41.4%가 메타의 ‘오큘러스 퀘스트2’를 쓴다고 답했다. 그 다음으로는 밸브코퍼레이션의 ‘인덱스 HMD’가 17.2%를 차지했다. 두 모델을 합쳐 60%에 가까운 점유율을 차지한다. 

일반 RGB 서브픽셀 배열(제일 위)과 펜타일 배열(두 번째, 세 번째).
일반 RGB 서브픽셀 배열(제일 위)과 펜타일 배열(두 번째, 세 번째).

둘은 공통적으로 LCD를 디스플레이로 탑재했는데, 오큘러스 퀘스트2가 최고 120Hz(헤르츠)의 주사율을, 인덱스 HMD가 최고 144Hz를 지원한다는 점만 다르다.

LCD의 장점은 오래된 기술인 만큼 싸고 검증됐다는 점이다. 메타는 지난 2019년 오큘러스 퀘스트 1세대 버전을 내놓았을때만 해도 OLED를 디스플레이로 탑재했었지만, 2020년 2세대 버전부터 LCD로 복귀했다. 이달 초 내놓은 ‘오큘러스 퀘스트 프로’ 역시 BLU(백라이트유닛)만 미니 LED를 적용했을 뿐, 어찌됐든 LCD다. 

메타가 OLED에서 LCD로 복귀한 이유에는 원가 절감과 함께 ‘펜타일 OLED’의 격자무늬가 도드라지는 단점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펜타일은 PPI(1인치 당 픽셀수)를 높이기 힘든 OLED에서 픽셀 내부 서브픽셀의 수를 3개(적⋅녹⋅청) 대신 2개(적⋅녹 or 청⋅녹)로 줄인 것을 뜻한다. 이 같은 방식은 스마트폰처럼 거리를 두고 보는 디스플레이에서는 문제될 게 없다. VR처럼 안구 바로 앞에 디스플레이가 놓이는 경우, 전반적으로 울긋불긋하고 가독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나 LCD는 암부(어두운 부분) 표현력이 OLED 대비 떨어지고, 반응속도가 느린 탓에 멀미 현상이 상대적으로 심하다는 게 단점이다.

 

② 암부표현과 PPI 모두 잡은 W OLEDoS

 

이 때문에 나오는 방식이 WOLED 방식의 올레도스(OLEDoS, OLED on Silicon)다. W OLEDoS는 LG디스플레이가 생산하는 TV용 WOLED를 작게 축소시켜 놓은 형태다. 유리기판이 아닌 실리콘 기판 위에다 생산한다는 점만 다르다. 

내년에 내놓을 애플 VR 기기가 소니가 생산한 W OLEDoS를 디스플레이로 탑재한다. 중국 BOE⋅씨야 등 중국 패널 업체들은 이미 W OLEDoS 타입의 투자를 시작했고, 국내 디스플레이 회사들도 이 방식 투자를 고려하고 있다. 

W OLEDoS의 장점은 암부표현이 LCD 대비 우월하면서 반응속도도 빠르고, PPI도 높일 여지가 크다는 것이다. OLED가 PPI를 높이기 힘든 가장 큰 이유가 FMM(파인메탈마스크)를 이용한 증착공정 때문인데, WOLED 증착에는 FMM이 쓰이지 않는다. 

W OLEDoS(왼쪽)와 RGB OLEDoS. /자료=이매진
W OLEDoS(왼쪽)와 RGB OLEDoS. /자료=이매진

적⋅녹⋅청색 유기물질을 수직으로 쌓아 백색을 구현하고, 색상은 최상단의 컬러필터로 변환한다. 컬러필터는 FMM이 아닌 노광-식각의 반도체 공정으로 패터닝하기에 미세화가 용이하다. 

단점은 컬러필터를 쓰는 만큼 소비전력이 높을 수 밖에 없는데, 이는 모바일 기기에서는 큰 단점이다. 

 

③ 궁극의 마이크로 디스플레이, RGB OLEDoS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컬러필터를 떼어 내고 적⋅녹⋅청색 서브픽셀을 직접 패터닝하는 RGB OLEDoS 기술이 확보되어야 한다. 애플 역시 W OLEDoS 다음으로 채택할 마이크로 디스플레이의 형태가 RGB 타입의 OLEDoS로 보고 있다. 

미국 마이크로 디스플레이 전문업체 이매진(eMagin)에 따르면 8V의 전압을 걸었을 때, W OLEDoS가 500칸델라(cd/㎡) 미만의 광도를 기록한데 비해 RGB OLEDoS는 4500cd/㎡의 광도에 도달했다. 1cd/㎡는 양초 한 개의 광도를 의미한다. 같은 전압에서 RGB OLEDoS가 훨씬 더 밝은 빛을 낸다는 게 확인된 셈이다.

RGB OLEDoS는 현재의 스마트폰용 OLED를 작게 축소해 놓은 형태인데, 역시 유리기판이 아닌 실리콘 기판 위에서 생산한다. 

RGB OLEDoS 생산을 위해 최우선적으로 개발되어야 하는 게 증착 기술이다. 앞선 설명처럼 기존 FMM 기술로는 PPI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 현재 양산되는 스마트폰용 OLED의 PPI는 고작 600 안팎인데, AR⋅VR용 디스플레이는 최소 2000 PPI 이상은 되어야 자연스런 화질을 구현할 수 있다.

이매진의 FMM 제조 공정 개략도. /자료=이매진
이매진의 FMM 제조 공정 개략도. /자료=이매진

삼성디스플레이가 검토하고 있는 이매진 기술은 FMM 제조 방식을 완전히 새롭게 정의한 형태다. 이전 FMM은 열팽창계수가 낮은 인바(invar) 시트에 식각으로 구멍을 뚫어 제작하는 게 공식이었다. 이매진은 실리콘 기판 자체를 FMM으로 활용한다. 실리콘 기판에 실리콘질화물 막을 먼저 증착한 후, 이를 노광-식각 공정으로 구멍을 뚫어낸다. 

이매진은 이 같은 기술로 5.9μm 크기의 서브픽셀 패턴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2500 PPI를 확보하는데 필요한 픽셀 크기가 5μm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RGB OLEDoS의 필요 조건을 충족하는 수준이다. 

다만 이매진의 생산 기술은 아직 양산에서 검증된 바가 없다. 따라서 실물로 RGB OLEDoS가 출하돼 나오는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전압에 따른 W OLEDoS과 RGB OLEDoS의 광도 차이. /이매진
전압에 따른 W OLEDoS과 RGB OLEDoS의 광도 차이. /이매진

 

④ LEDoS, VR 보다는 AR에 적합

 

발광소자를 OLED가 아닌 무기물인 LED 기반으로 만들려는 시도도 있다. 역시 실리콘 기판 위에 만들어지기에 LEDoS라고 부르며, OLED 대비 휘도(밝기) 측면에서 유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디스플레이, 사피엔반도체 3사가 공동으로 LEDoS 개발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휘도가 밝다는 특징 덕분에 LEDoS는 VR 보다는 AR용 솔루션으로 부각되고 있다. 눈 앞에 작은 암실을 만들어 화면을 띄우는 VR과 달리, AR은 실제 안경처럼 생긴 렌즈 표면에 디스플레이를 반사시켜 화면을 만든다. 주변광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많고, 야외에서도 써야 하므로 높은 휘도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다만 LEDoS는 사파이어 웨이퍼 위에 성장시킨 LED를 실리콘 웨이퍼 위에 옮겨 심는(전사, Transfer) 공정이 필요한데, 이 때문에 PPI를 높이는데는 한계가 있다. PPI를 높일수록 전사 공정의 난이도가 극도로 높아져서다. 

특정 PPI를 구현하는데 필요한 서브픽셀 크기 기준. /자료=Hackaday
특정 PPI를 구현하는데 필요한 서브픽셀 크기 기준. /자료=Hackaday

한 디스플레이 기술 전문가는 “LED를 수 μm 수준까지 작게 만들면 종횡비가 지나치게 커져 핸들링하는 게 훨씬 어려워진다”며 “LEDoS는 그래픽을 구현하는 AR 보다는 텍스트나 인디케이션 표기를 위한 디스플레이 솔루션으로 적합하다”고 말했다.

PPI가 낮아 동영상을 재생하지는 못하겠지만, 길을 걸어가는 중에 길안내를 하는 등의 간단한 디스플레이로는 적합하다는 설명이다. 

 

파편화 된 AR⋅VR 디스플레이

 

이처럼 AR⋅VR용 디스플레이는 아직 여러 기술이 경쟁 중이다. LCD가 아직까지는 선점효과를 누리고 있지만, OLEDoS 생산 기술이 확립되면 시장 판도가 바뀔 수 있다. AR 시장에서 LEDoS의 역할도 주목된다.

이처럼 파편화된 기술이 상존할 경우 표준화는 그 만큼 더디고, 규모의 경제 달성 시점은 지연될 수 밖에 없다. 스마트폰은 연간 15억대에 달하는 물량에, 디스플레이와 내부 부품에 대한 표준화가 이뤄지면서 부품원가(BOM cost) 상승을 최대한 억제해왔다. 스마트폰 성능이 PC 가까울 만큼 개선되었음에도 세트 가격이 크게 높아지지 않은 이유다. 

오큘러스 퀘스트 프로. /사진=메타
오큘러스 퀘스트 프로. /사진=메타

그러나 AR⋅VR은 없는 시장을 창출해 나가야 하고 다양한 기술이 표준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최근 출시된 오큘러스 퀘스트 프로는 국내 출시가가 219만원, 내년 초 나올 애플 VR 기기 가격은 300만원에 육박할 거라는 게 업계 추정이다. 한 스마트폰 업계 전문가는 “초기 시장에서는 기기는 원가 수준으로 팔고, 이후 AR⋅VR 내 콘텐츠 판매를 통해 수익을 내는 방식의 전략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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