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디스플레이, 법인은 놔두고 IP만 인수
사이노라는 청산 수순, UDC와의 협상용일까

삼성디스플레이가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재료 업체 사이노라의 IP(지적재산권)를 인수하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사이노라의 기술은 현재 25%에 불과한 청색 발광체 효율을 100%로 끌어올릴 수 있는 솔루션으로 평가받지만, 아직 양산에 적용하기는 부족한 면이 없지 않다. 

이 때문에 2024년 또 다른 방식으로 효율 100% 청색 발광체 양산을 공언한 미국 UDC(유니버설디스플레이)와의 로열티 협상을 위해 사이노라 IP를 인수했다는 의견도 나온다. 

OLED용 유기재료. /사진=사이노라
OLED용 유기재료. /사진=사이노라

 

삼성디스플레이, 사이노라 IP 인수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삼성디스플레이는 최근 독일 사이노라의 OLED 재료 관련 IP를 전량 인수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블룸버그는 삼성디스플레이가 IP 인수를 위해 지불한 금액이 3억달러(약 3890억원)라고 밝혔지만, 업계는 1억달러 미만으로 추정한다. 시장조사업체 DSCC는 3억달러 수치는 사이노라가 애초에 원했던 협상 시작가거나, 계약이 발설되는 과정에서 와전된 것일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업계가 사이노라의 IP 값어치를 알려진 것보다 낮게 보는 것은, 아직 이 회사의 기술이 양산에 적용되기에는 설익은 점이 많아서다. 

사이노라의 TADF(열활성화지연형광) 기술은 25% 수준인 청색 OLED 재료의 효율을 100%로 높여줄 수 있는 솔루션이다. 이름 그대로 형광재료임에도 인광재료와 같은 고효율 발광이 가능하게 만들어준다는 뜻이다. 실현만 된다면 OLED 패널의 수명 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발광재료 내 분자들은 에너지를 가하면 들뜬 상태가 됐다가 빛을 방출하면서 안정된 상태로 돌아온다. 이 들뜬 상태를 여기(勵起, Excited)됐다고 표현한다. 이 원리를 이용해 디스플레이 화면을 구현한다.

OLED 발광 형태. 가장 왼쪽이 형광, 그 다음이 인광, 오른쪽이 TADF다. TADF는 이론적으로 100% 발광효율을 가진다. /자료=edinst
OLED 발광 형태. 가장 왼쪽이 형광, 그 다음이 인광, 오른쪽이 TADF다. TADF는 이론적으로 100% 발광효율을 가진다. /자료=edinst

그리고 이 여기된 상태에 따라 ‘단일항 여기자(Singlet Exciton)’와 ‘삼중항 여기자(Triplet Exciton)’로 다시 나뉜다. 형광 재료는 이 중에 25%를 차지하는 단일항 여기자만을 이용해 발광하는 원리인데, TADF 기술을 적용하면 삼중항 여기자를 모두 발광에 참여시킬 수 있다. 삼중항 여기자의 비율이 75%로 단일항의 3배라는 점에서, 이들을 모두 발광하게 함으로써 효율을 크게 높여줄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이처럼 이상적인 아이디어에도 불구하고 아직 TADF 기술은 바로 양산에 적용하기에는 풀지 못한 난제가 많다. TADF 재료가 높은 휘도(밝기)에서 발광 효율이 급격하게 떨어지거나, 구동전압이 상대적으로 높은 단점이 해결되지 않았다. 구동전압이 높으면 에너지 소비가 늘어난다. 소자 수명도 이미 양산에 투입되고 있는 재료들에 비해 절반 이하다.

한 디스플레이 재료 업체 관계자는 “이론적으로는 완벽한 TADF 기술이지만, 아직 양산에 적용할 만큼의 기술이 확보되지 못했다”며 “삼성디스플레이의 사이노라 IP 인수는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삼성디스플레이는 사이노라 법인을 인수하는 대신 IP만 인수하는 방안을 택했다. 사이노라 직원들은 회사를 떠나는 중이며, 법인은 곧 청산되는 수순이다. 삼성디스플레이가 당장 TADF 청색 재료를 양산에 적용할 생각이었다면 사이노라 직원의 일부나마 고용을 유지했을 거란 관측이다.

사이노라 실험실 전경. 삼성디스플레이는 사이노라 회사는 인수하지 않고 오직 IP만을 인수했다. /사진=사이노라
사이노라 실험실 전경. 삼성디스플레이는 사이노라 회사는 인수하지 않고 오직 IP만을 인수했다. /사진=사이노라

 

UDC⋅큐럭스 협상용일까

 

근시일 내에 양산에 적용할 게 아니라면 향후 발광재료 업체들과의 협상력 확보를 위해 IP를 인수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예컨대 UDC 경우, TADF가 아닌 인광재료 기술을 이용해 100% 효율의 청색 발광체를 개발하고 있다. 2024년 양산하겠노라고 시점까지 못박았다. 

그 안에 TADF 등 대안 기술이 상용화되지 않으면 삼성디스플레이로서는 적색⋅녹색 도판트 뿐만 아니라 청색 재료까지 UDC에 100%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된다. 매번 고액의 로열티를 요구했던 UDC의 전략을 감안하면 UDC에 끌려가지 않을 무기가 필요한데, TADF가 그 역할을 해줄 수 있다. 

물론 TADF가 양산 단계까지 가주면 가장 좋다. 그렇지 못하더라도 UDC를 대체할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로열티 협상을 유리하게 전개할 수 있다. 

사이노라 IP를 이용해 큐럭스에 대한 견제도 가능하다. 큐럭스는 사이노라와 마찬가지로 TADF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일본 회사다. 큐럭스의 기술이 사이노라 대비 좀 더 양산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된다. 향후 큐럭스의 TADF 기술이 디스플레이 업계 주류로 등극하게 될 경우를 가정하면, 지금 비교적 싼 가격에 사이노라 IP를 확보해 놓는 것도 보험 역할을 할 수 있다. 

UDC 연구원들이 유기재료를 테스트하는 모습. /사진=UDC 홈페이지
UDC 연구원들이 유기재료를 테스트하는 모습. /사진=UDC 홈페이지

또 다른 OLED 재료업체 대표는 “삼성디스플레이가 삼성종합기술원과 TADF 관련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 사이노라 IP를 인수했다는 얘기가 있다”며 “이 경우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장기적으로 TADF 청색 재료를 자체 생산해 사용하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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