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카티바의 잉크젯 프린터 도입을 결정한 삼성디스플레이가 컨디셔널(조건부) 방식을 통해 장비를 구매한다. 컨디셔널 계약은 우선 장비를 반입해 가동시켜 보고 양산성이 검증되면 정식 구매 계약을 체결하는 형태다(KIPOST 2021년 5월 24일자 <삼성디스플레이, 카티바와 다시 손잡는다> 참조). 

고객사가 해당 장비 양산성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 주로 활용하는 것으로, 삼성디스플레이가 관련 공정 이원화를 빠르게 추진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카티바의 잉크젯 프린터. /사진=카티바
카티바의 잉크젯 프린터. /사진=카티바

컨디셔널 계약, 장비부터 입고…대금은 나중에

 

통상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는 구매주문(PO)이 나오는 시점에 계약과 함께 선수금 30% 정도를 수령한다. 이후 장비 반입과 함께 60% 안팎을 받고, 나머지 10%는 양산 검증(AT) 이후 입금된다.

이와 달리 컨디셔널 계약은 일단 장비부터 고객사 공장에 반입해 양산 검증을 시작한다. 이후 장비가 원활하게 잘 돌아가면 정식 계약과 함께 대금을 치른다. 만약 기대했던 성능이 나오지 않으면 구매 계획은 없던 일이 되고, 협력사는 장비를 다시 반출해야 한다.

컨디셔널 계약은 장비업체에 가장 불리한 형태라는 점에서 사례가 드물다. 장비 제작과 양산 검증에 대한 리스크를 장비업체가 고스란히 떠안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카티바는 지난 2019년 삼성디스플레이 QD-OLED(퀀텀닷-유기발광다이오드) 협력사에서 탈락했다. 이후 일감이 줄면서 이듬해 감원에 돌입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그동안 아성을 구축했던 중소형 OLED 분야 투자도 뜸한 상황에서 삼성이 신기술로 밀고 있는 QD-OLED 분야 재진입을 위해서라도 컨디셔널 계약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번에 삼성디스플레이와 카티바 사이를 중개하는 엘이티 역시 양산 검증이 끝나고 정식 계약이 체결되는 내년에나 관련 사항을 공시할 전망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삼성디스플레이 역시나 잉크젯 프린팅 기술 분야서 대안 마련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미 반입된 세메스 장비만으로 QD-OLED 라인이 원활하게 돌아간다면 굳이 컨디셔널 계약까지 해가면서 대안 업체를 들일 이유는 없다.

QD디스플레이(QD-OLED)의 수직구조. OLED층 가장 위에 TFE가 올라가고, 셀 전체는 두 장의 유리로 합착한다. /자료=DSCC
QD디스플레이(QD-OLED)의 수직구조. /자료=DSCC

잉크젯 프린터는 디스플레이 화소가 되는 부분에 적색⋅녹색 잉크를 떨어뜨려주는 장비다. 적색⋅녹색 잉크가 떨어지는 부위간 거리가 수십μm(마이크로미터)에 불과해 약간만 위치가 틀어져도 불량이 발생한다. 

한번에 떨어뜨리는 잉크의 양도 피코리터(1조분의 1리터) 단위로 미세하다. 잉크 양이 달라지면 특정 화소의 색상이나 휘도(밝기)에 오차가 발생할 수 있다. 인간의 눈은 인접 화소와의 밝기차가 2% 이상 벌어지면 이를 얼룩처럼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한 디스플레이 장비 업체 대표는 “잉크젯 프린터로 개별 화소를 구현하는 것은 디스플레이 역사상 처음”이라며 “시행착오를 예상하기는 했으나 생각보다 더 어려운 작업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카티바가 삼성디스플레이에 대규모로 공급했던 TFE(박막봉지)용 잉크젯 프린터는 화소 형성이 아닌 얇은 유기물 봉지막을 입혀주는 역할이다. 화소 하나하나를 패터닝하는 RGB 잉크젯 프린터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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