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및 중국 승인 획득 실패
CPU 시장 진입 디딤돌 놓으려던 시나리오 무산
"Arm 인수 실패에도 CPU 경쟁력 강화 시도할 것"

엔비디아의 반도체 설계자산(IP) 업계 최강자 Arm 인수가 끝내 좌절됐다. Arm 인수를 통해 GPU(그래픽처리장치) 산업을 넘어 CPU(중앙처리장치)로의 진입에 디딤돌을 놓으려던 시도가 무산된 것이다. 

향후 엔비디아가 서버 시장에서 파이를 늘리고, 자율주행⋅로봇 등 신규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CPU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에서 어떻게는 관련 역량 강화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젠슨 황 엔비디아 창업자 겸 CEO. /사진=엔비디아
젠슨 황 엔비디아 창업자 겸 CEO. /사진=엔비디아

엔비디아-Arm, 빅딜 무산

 

7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는 총 660억 달러(약 79조 원) 규모로 예정됐던 엔비디아-ARM 빅딜이 주요국의 반독점 우려 제기로 인해 무산됐다고 보도했다. 지난 2020년 9월 시작된 두 회사간 빅딜이 1년 반만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두 회사간 M&A(인수합병) 논의는 최근 반도체 업계에 국수주의적 성격이 강화된 탓에 각국 허가를 얻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특히 이번 거래의 가장 큰 키를 쥐고 있는 중국과 영국이 허가에 난색을 표했다. 중국은 무역갈등을 겪고 있는 미국 회사(엔비디아)가 인수 주체라는 점에서, 영국은 세계 최대 반도체 IP 업체(Arm)를 해외에 넘겨야 한다는 점에서 못마땅했다. 

M&A 실패가 더 안타까운 쪽은 Arm이나 소프트뱅크보다는 엔비디아다.

Arm 대주주인 일본 소프트뱅크는 엔비디아로의 매각이 무산되자 IPO(기업공개)를 통해 Arm을 상장시키기로 했다. 당초 소프트뱅크는 Arm 매각 후 마련한 현금으로 소프트뱅크 상장폐지를 추진키로 했다. 비록 한번에 큰 현금을 마련하지는 못했지만, IPO 후 지분을 일부씩 매각하면 역시 적지 않은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 그 돈으로 일본 증시에 상장된 소프트뱅크 자사주를 사들이면, 다시 비공개 기업으로 전환 가능하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소프트뱅크는 Arm 매각이 좌절된 이후 IPO로 방향을 선회했다. /사진=소프트뱅크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소프트뱅크는 Arm 매각이 좌절된 이후 IPO로 방향을 선회했다. /사진=소프트뱅크

차선책을 마련한 소프트뱅크와 달리, 엔비디아는 Arm 인수 이후 기대되던 시너지 효과를 당장은 포기해야 한다. 엔비디아가 Arm 인수에 성공했다면 우선적으로 기대되는 효과는 모바일 GPU 시장 진입이다. 

Arm의 IP는 스마트폰 등 모바일용 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 설계에 탁월하지만, 내장 GPU IP인 ‘말리’의 성능은 늘 문제로 지적됐다. 말리의 그래픽 성능이 최근의 고성능 스마트폰 기대치에 미달하는 것이다. 이에 퀄컴은 자체 개발한 GPU IP ‘아드레노’를 스냅드래곤에, 삼성전자는 AMD와 공동개발한 GPU를 ‘엑시노스2200’에 심었다. Arm 기술을 차용하면서도 GPU 만큼은 각자 조달한 것이다.

GPU 업계 절대강자인 엔비디아는 아직 PC와 서버 시장을 중심으로 GPU를 공급하고 있는데, Arm과 한 식구가 된다면 모바일 GPU 시장 진출에 결정적 역할을 해줄 수 있다. 말리 대신 엔비디아의 GPU IP를 패키지로 제공하는 구조다. 물론 이 같은 시나리오는 M&A 무산으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Arm 없이 CPU 경쟁력 확보해야 하는 엔비디아

 

사실 엔비디아에게 이보다 더 뼈아픈 대목은 Arm 인수로 CPU 시장에 진입을 가속화하려던 디딤돌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현재 컴퓨팅 반도체 시장의 가장 큰 파이는 CPU⋅GPU고, 이 시장에서 인텔⋅AMD는 각자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엔비디아는 GPU 시장의 절대강자면서도 CPU 분야에서의 업력은 전무하다. 

2023년에 서버용 CPU를 내놓는 게 골자인 ‘그레이스 프로젝트’의 얼개만 발표한 상태다. 그리고 이 그레이스가 Arm IP를 이용해 설계된다. 

데이터센터의 서버./사진=Pixabay
데이터센터의 서버./사진=Pixabay

PC나 스마트폰과 달리 서버 시장은 워낙 보수적이라 성능차가 크지 않으면 기존에 사용하던 솔루션을 선호한다. PC용 CPU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인텔과 AMD지만, 서버용 CPU 시장에서 만큼은 인텔의 점유율이 여전히 90%에 이르는 이유다. 

따라서 서버용 CPU 시장에서 도전자에 속하는 엔비디아가, x86 기반도 아닌 Arm 기반 CPU로 고객사들을 설득하기란 계란으로 바위깨기에 비견된다. 엔비디아로서는 M1 칩을 통해 압도적인 성능을 보여줬던 애플의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Arm의 전략이 ‘오픈 생태계’인 만큼, 반드시 Arm을 인수하지 않아도 관련 IP를 사용하는데 문제는 없다. 그러나 Arm이 스마트폰 산업 태동기에 구글(안드로이드)과의 협업 덕에 AP 성능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켜 나갔듯, 엔비디아도 Arm과 서버용 CPU 시장에서 동일한 그림을 그려왔다. Arm 인수가 좌절된 현 시점에서, 이제는 Arm과의 시너지 없이 CPU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서버용 CPU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이미 x86 기반으로 짜여진 수천종의 소프트웨어를 Arm 기반에서도 돌아갈 수 있도록 컴파일링 해야 한다”며 “향후 엔비디아가 애플처럼 이 분야에서 경쟁력을 보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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