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 싸움인데 미국에 공장 짓는 마이크론
미 정부 제재에 난처한 SK하이닉스
미 정부-마이크론 간 거래는 억측인가

D램 사업은 거칠게 비교하면 교복 비즈니스와 비슷하다. 대략의 요구성능은 JEDEC(국제반도체표준협의기구)에 모여 정하고, 공급사는 단가만 놓고 싸운다. 교복 업체가 교복 디자인으로 차별화 할 수 없듯, D램 제조사가 외따로 표준을 만들 수는 없다. 같은 제품을 1원이라도 싸게 만드는 회사가 끝내 살아 남는다. 지구상 단 3개 남은 D램 제조사가 이를 증명한다. 

최근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CHIPS(반도체지원법) 가드레일에 ‘최악은 면했다’고 평가하는 건 그래서 부당하다. 가드레일은 CHIPS 보조금을 받은 회사가 중국서 생산능력 확대는 불가능하지만, 설비 업그레이드는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진짜 최악은 면한 것 처럼 들린다. 

그러나 상무부는 분명하게 설명한다. 가드레일이 기존 BIS(산업안보국)의 수출 제한조치를 보강(Reinforce)한다는 점을 말이다. BIS의 수출 제한조치란 지난해 10월 발표한 ▲16/14nm 이하 로직칩 ▲18nm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를 생산하는 모든 장비의 중국 수출을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CHIPS 가드레일은 지난해 10월 발표한 BIS 수출통제에 귀속된다. /자료=KIPOST
CHIPS 가드레일은 지난해 10월 발표한 BIS 수출통제에 귀속된다. /자료=KIPOST

앞서 상무부의 ‘설비 업그레이드는 가능하다’는 말은 BIS의 수출 제한조치를 충족한다는 토대 위에 서 있다. 중국서 D램 팹을 운영하는 SK하이닉스 입장에서 여전히 18nm 보다 진보된 D램 공정 업그레이드를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 D램 업체에게 공정 업그레이드를 못한다는 건 단가 경쟁에서 밀린다는 말과 동일하다. 상무부 가드레일은 최악은 면했다가 아니라 ‘여전히 최악’이라고 해야 온당하다.

이쯤에서 되짚어 볼 건 미국 마이크론의 알 수 없는 자신감이다. 마이크론은 지난해 10월 1000억달러(약 130조원)를 들여 미국 뉴욕주 북부 클레이에 D램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앞서 설명했듯 D램 사업은 단가 싸움이고, 제조사는 최대한 비용이 싼 지역(인프라가 갖춰졌다는 가정 하에)을 찾아 들어간다. 

SK하이닉스는 SK그룹에 인수되기 전인 2008년 미국 오리건주 D램 공장을 매각했다. 운영비가 높은 미국에서는 도무지 D램 사업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서다. 그걸 모를리 없는 마이크론이 모든 비용이 비싼 미국에 공장을 짓겠노라 제발로 걸어갔다. 

물론 마이크론도 CHIPS 보조금을 받게 된다. 그러나 한시적 보조금에 홀려 미국에 천문학적 규모의 공장을 짓는다고 판단하기에는 부족하다. TSMC 창업자 모리스 창은 D램 대비 부가가치가 높은 파운드리조차 “보조금에도 불구, 미국에서는 손익분기점을 맞추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하나다. 마이크론은 SK하이닉스의 중국 우시 공장이 상당 기간, 어쩌면 영원히 업그레이드 투자가 불가능하다고 확신하는 것 같다. 마이크론이 대규모 투자로 정부 ‘리쇼어링’ 정책을 지지해주는 대신, 중국서 SK하이닉스 견제를 이끌어냈다고 보는 건 억측일까.

안석현 콘텐츠 팀장(기자).
안석현 콘텐츠 팀장(기자).

이미 D램 시장은 과점 체제고, 3위 사업자인 마이크론이 자력으로 2위가 되는 건 불가능하다. 3위 업체가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생산능력을 늘리면 원가 경쟁력 높은 1⋅2위도 따라가고, 이는 D램 시장의 공급과잉을 불러온다. 그 피해는 3위 업체에 가장 치명적이다. 

이처럼 스스로 점유율 높이는 게 불가능한 상황에서 D램 생산량의 절반을 중국에 의존하는 SK하이닉스의 난처함은 마이크론에 호재다. 심지어 이 상황의 키는 미국 행정부가 쥐고 있다.

우리나라 대통령실은 최근 미국 상무부 가드레일에 대해 “우리 기업에 차질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마이크론이 자국 정부를 등에 업고 D램 시장 판흔들기 시도하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의 상황 인식이 지나치게 안이한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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