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PM 사업 통해 SiC 사업화 추진
사업화 조직 크게 축소...해체 수순

지난 10년 이상 SiC(실리콘카바이드, 탄화규소) 잉곳 및 웨이퍼 사업화를 추진해 온 포스코가 관련 사업을 크게 축소했다. 짧지 않은 기간 연구개발을 진행해왔으나 제품화 성과가 미진했고, 그룹 전반적으로 사업 효율화를 추진하면서 우선순위가 밀린 것으로 풀이된다. 

팹 공정이 끝난 SiC 웨이퍼. /사진=SK
팹 공정이 끝난 SiC 웨이퍼. /사진=SK

 

포스코, WPM 사업으로 SiC 첫 발

 

포스코가 SiC 사업에 발을 들인 건 지난 2010년 지식경제부 WPM(World Premier Materials) 과제를 수주하면서다. 포스코는 당시 ‘초고순도 SiC 소재 사업단의 단결정 웨이퍼 제조 기술’ 분야 세부 주관사로 선정됐다. WPM은 정부가 4대 소재 강국 등극을 위해 10대 핵심 소재 개발을 목표로 추진한 1조원 규모 국책 과제다. 

포스코는 전명철 RIST(포항산업과학연구원) 박사를 주축으로 해당 과제를 수행했으며, 십수명 규모의 전담조직도 구성됐다. 다만 최근 포스코는 해당 조직을 해체하고, R&D에 쓰던 설비들도 상당 부분 처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SiC는 LED⋅2차전지 등 포스코가 철강 산업에서 저변을 넓히기 위해 추진했던 여러 신규사업 중 하나”라며 “오랜 기간 성과가 나지 않으면서 양산화는 포기하는 수순”이라고 말했다.

2010년 초만해도 SiC 웨이퍼가 가장 많이 쓰이는 분야는 고출력 LED에 한정됐다. /사진=크리
2010년 초만해도 SiC 웨이퍼가 가장 많이 쓰이는 분야는 고출력 LED에 한정됐다. /사진=크리

지금도 실리콘 기반 반도체 시장에 비하면 SiC 반도체 시장은 비교할 바가 안 되는데, 당시만 해도 SiC의 존재감은 극히 미미했다. SiC 웨이퍼가 가장 많이 사용되는 분야도 고출력 LED(발광다이오드)에 한정됐다. 

SiC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건 테슬라가 자사 전기차용 전력반도체에 SiC를 전면 도입하면서다. 테슬라 이후 기존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플랫폼에 SiC 반도체를 적극 채택하면서 최근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따라서 SiC 반도체가 지금처럼 시장의 관심을 받게 된 건 길어야 2~3년 남짓이다. 

더욱이 최근 포스코가 R&D 효율화에 나서고 그룹 신사업 포트폴리오가 2차전지 분야로 집중되면서 SiC는 우선순위에서 크게 밀린 것으로 풀이된다. 포스코는 본사 차원에서 리튬 사업을, 포스코케미칼이 2차전지 양극재⋅음극재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세종시에 있는 포스코케미칼 음극재 공장 전경./사진=포스코케미칼
세종시에 있는 포스코케미칼 음극재 공장 전경./사진=포스코케미칼

원래 포스코케미칼의 주력사업은 라임케미칼(제철공정 원료인 생석회와 석탄화학 제품)로, 지난 2019년까지 관련 매출 비중은 50%를 넘었다. 그러나 올해는 3분기까지 관련 매출은 24%로 줄고, 대신 양극재⋅음극재 매출이 60%에 육박한다. 

한 포스코 관계자는 “지난 2018년 포스코 대표로 부임한 최정우 회장은 전형적인 CFO(최고재무책임자) 출신의 CEO”라며 “성과가 나는 곳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스타일이라 SiC가 점차 우선순위에서 밀렸다”고 말했다.

 

WPM 사업화 실패 사례로 기록될 듯

 

포스코가 SiC 사업화를 사실상 포기함에 따라 역대 최대 규모로 진행된 소재개발 국책과제인 WPM에 또 하나의 실패 사례가 남게 될 것으로 보인다. 

WPM은 시도 자체는 진취적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시장 선점에 미진한 사례가 많다. LED용 사파이어 단결정 소재 개발 과제와 플렉서블 디스플레이용 플라스틱 기판 소재 개발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당시만 해도 LED는 2~4인치 사파이어 웨이퍼 기반으로 생산했으나, 정부와 업계는 6인치 잉곳 및 웨이퍼 생산 기술 개발에 초점을 뒀다. 이를 통해 국내 LED 업체들의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여줄 수 있을 것으로 봤다.

WPM 10대 과제.
WPM 10대 과제.

결과적으로 6인치 잉곳⋅웨이퍼 생산 기술 확보에는 성과를 거뒀으나 정작 LED 시장 주도권이 모두 중국으로 넘어갔다. 국내 사파이어 웨이퍼 잉곳⋅웨이퍼 업체들은 대구경 제품 양산이 문제가 아니라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몰렸다. 

투명 PI(폴리이미드)로 대표되는 플라스틱 기판 소재 개발 사업도 시장을 잘못 읽은 사례다. 과제를 통해 투명 PI를 폴더블 스마트폰용 커버유리 소재로 개발했으나, 관련 시장은 UTG(초박막유리)가 주도하고 있다. 

한 디스플레이 소재 산업 전문가는 “소재 개발은 기술 확보도 어렵지만 적기에 시장이 요구하는 소재를 내놓아야 한다는 게 난제”라며 “WPM 실패 사례는 소재 개발에 더욱 많은 자원을 장기 투입해야 한다는 교훈으로 남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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