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위트필드 부사장, "아키텍처 지속 변화·발전… 계약 모델 다변화"

모바일 시대는 곧 Arm의 시대다. 전체 모바일 기기의 95%에 Arm의 코어가 들어간다. 퀄컴·삼성전자·애플 모두 Arm의 코어로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설계한다.

그런 Arm에 도전장을 내민 게 오픈소스 하드웨어 명령어 세트 아키텍처(ISA)다. 

이들 오픈소스 ISA는 Arm 아키텍처처럼 값비싼 라이선스 비용을 낼 필요도 없고, 판에 박힌 아키텍처를 가져다 써서 괜히 전력소모량을 늘릴 염려도 없다.

팀 위트필드(Tim Whitfield) Arm
전략 부사장./Arm

Arm은 오픈소스 ISA에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지난해 Arm은 자유-오픈소스 소프트웨어(FLOSS)와 RISC-V에 대한 ‘진실’을 알리겠다며 전용 웹사이트를 만들었다가 하루만에 사이트를 폐쇄했다. 사실이 아닌 정보를 사실처럼 올렸기 때문이다.

1년이 흘렀다. 그동안 Arm은 디자인스타트(Design Start) 프로그램의 코어 설계자산(IP) 제품군을 확대했고, 구독형 IP 라이선스 모델인 ‘Arm 플렉시블 액세스(Flexible Access)’를 출시했다. 모두 이전보다 설계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Arm의 전략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팀 위트필드(Tim Whitfield) Arm 전략 부사장에 물었다.

 

“전용 로직은 한계 있다… 개발 생태계와 경력 무시 못해”

Arm이 가장 먼저 지적한 건 오픈소스 ISA 기반 전용 반도체의 경직성이다. 오픈소스 ISA는 원하는 기능만을 넣어 반도체를 만든다. 일일이 각 구성요소를 따져가며 반도체를 설계해야하는 셈이다. 그러다 만약 목표 사양이 바뀌면 처음부터 각 구성요소를 뜯어 고쳐야 한다. 그 위에 올라가는 소프트웨어도 마찬가지다.

팀 위트필드 Arm 전략 부사장은 “Arm의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프로세서를 구축하면 목표 사양이 바뀌더라도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으로 빠르게 이를 수정할 수 있다”며 “전용 로직이 더 효율적일 수는 있다해도, 한 번 실리콘에 적용(생산)한 후에는 소프트웨어를 바꾸거나 재프로그래밍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Arm은 이와 함께 자사의 프로세서를 쓰면 특정 기능을 향상시킬 수 없는 건 아니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Arm은 영상·그래픽 등 특정 기능에 필요한 연산을 빠르게 처리해주는 하드웨어 가속기(Accelerator)에 대한 명령어와 그래픽처리장치(GPU) 및 머신러닝(ML) IP도 추가했다.

이 가속기는 암호화 알고리즘, 벡터 부동 소수점 연산 등을 구현할 때 중앙처리장치(CPU)와 밀접하게 연결돼 동작하기 때문에 둘 사이의 호환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Arm은 이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생태계도 탄탄히 갖췄다고 그는 설명했다.

위트필드 부사장은 “특정 아키텍처를 선택하는 이유는 비용, 생태계, 기능, 유연성 등 여러 가지가 있다”며 “Arm은 그간 수십억개의 시스템에 사용돼 이미 검증된 고품질의 IP를 개발·제공해왔다”고 말했다.

 

판에 박힌 아키텍처? 아키텍처는 지금 이 순간도 진화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Arm은 고객사들이 자사의 코어 아키텍처를 수정해 쓰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만약 코어 아키텍처에 문제점이 발생하면 해당 고객사는 이를 Arm에게 알려서 다른 고객사들이 문제점을 수정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삼성전자·애플 등 Arm 코어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자체 코어를 만든 업체들은 Arm의 ISA 자체를 라이선스한다. 코어 아키텍처가 완성된 음식이라면 ISA는 이를 만드는 레시피로, 재료는 그대로 유지하되 레시피를 바꿔 자체 코어를 만드는 것이다. 

 

Arm의 전통적인 IP 라이선스 유형. 코어를 라이선스할 때 드는 라이선스 비용과 반도체를 판매할 때 내는 로열티 비용이 따로 있다./Arm
Arm의 전통적인 IP 라이선스 유형. 코어를 라이선스할 때 드는 라이선스 비용과 반도체를 판매할 때 내는 로열티 비용이 따로 있다./Arm

문제는 비용이다. 고사양 AP에 쓰이는 코어텍스A7 시리즈 라이선스에만 400만달러(약 47억원)가 들어가는데, ISA 라이선스는 이보다 최소 10배 이상 비싸다고 알려져있다. 이를 제품화해 양산하기 시작하면 매출의 일정비율을 러닝 로열티(Running Royalty)로 내야한다. 

다시 말해 고객사 입장에서는 비싼 값을 주고 Arm 아키텍처를 사다가 그대로 써야만 한다는 얘기다. Arm의 고객사인 국내 팹리스·디자인하우스 업계에서는 이를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한다.

업계 관계자는 “돈은 돈대로 나가면서 프로세서 코어 종속성은 높아진다”며 “목표 사양이 올라간다 해도 다른 코어를 라이선스해야해 비용이 그만큼 증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Arm은 자사의 아키텍처가 꾸준히 진화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마이크로제어장치(MCU)에 주로 쓰이는 코어텍스M 시리즈에는 보안을 위한 ‘트러스트존(TrustZone)’과 디지털신호처리장치(DSP) 확장 등의 기술을 추가했고, 지난 2월 발표한 v8.1M 아키텍처에는 벡터 연산 능력 확장 기술인 ‘Arm 헬륨(Helium)’이 포함됐다.

또 ISA로 코어를 만들려면 숙련된 엔지니어링 인력과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Arm은 이 비용이 완성된 코어 아키텍처를 라이선스하는 비용보다 많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같은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Arm은 다양한 CPU 제품군을 지원하고  있고 광범위한 생태계를 통해 IP·소프트웨어·툴·서비스를 제공한다”며 “파트너 업체들이 시장을 포괄하는 솔루션을 빠르게 구축할 수 있게 로드맵을 마련, 혁신을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픈소스는 계약 모델 다변화로 대응

Arm은 오픈소스 아키텍처의 흐름에 대해 확실히 인지하고 있다고 답했다. Arm 스스로도 오픈소스 소프트웨어(SW)와 하드웨어 개방형 표준을 만드는 데 협력하고 있기도 하다. SoC 내부 프로세서와 내외부 주변 소자 간 데이터 교환 통로인 AMBA 인터커넥트 규격과 플랫폼보안아키텍처(PSA)가 대표적이다.

위트필드 부사장은 “우리는 항상 업계의 변화를 인지해왔고, 이와 함께 발전해왔다”며 “파트너사들이 Arm의 검증된 솔루션으로 혁신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디자인스타트 등 여러 새로운 기획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RISC-V가 오픈소스이긴 하지만, 이 아키텍처로 구현된 대부분의 것들은 자사와 매우 유사한 IP 모델을 따르는 상업적 구현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RISC-V는 오픈소스지만, 이 아키텍처로 구현된 대부분의 SoC는 RISC-V 진영의 팹리스 업체가 만든 코어를 활용한다. 샤오미의 반도체 설계 자회사 후아미(Huami)도 사이파이브(SiFive)의 RISC-V 기반 코어로 스마트워치용 AP를 설계했다.

하지만 Arm과 RISC-V 진영 팹리스들의 비즈니스 전략은 다르다. 

사이파이브의 경우 고객사가 라이선스 비용과 로열티를 함께 받을지, 생산 후 로열티만 받을 지 결정할 수 있게 한다. 솔루션을 오픈 소스로 공개하고 생산 시 로열티만 받는 모델을 제공하는 IP 업체나 코어 업체도 상당수다.

Arm의 계약 모델 중에서 이와 가장 비슷한 건 최근 출시한 ‘플렉시블 액세스’다. Arm은 플렉시블 액세스를 오픈소스처럼 설계 비용이 들지 않는다고 홍보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아니다. 설계에 필요한 IP는 유료 구독 형태로 제공되며, 생산 시 라이선스 및 로열티 비용을 별도 지불해야한다. 

플렉시블 액세스는 엔트리 패키지(Entry Package)와 표준 패키지(Standard Package)로 나뉜다. 엔트리 패키지는 연간 7만5000달러(8835만원)의 사용료를 내야하고, 1년에 테이프아웃(tape out·파운드리로 설계도를 넘기는 것)은 1건으로 제한된다. 

표준 패키지는 무제한 테이프아웃이 지원되는데, 연간 20만달러(2억3560만원)를 내야 한다. 

 

Arm의 기존 IP 라이선스 모델과 플렉시블 액세스 모델의 차이. 돈을 내는 시점만 다를 뿐이다./Arm
Arm의 기존 IP 라이선스 모델과 플렉시블 액세스 모델의 차이. 돈을 내는 시점만 다를 뿐이다./Arm

당장 라이선스 비용이 없어 칩 설계조차 하지 못하는 스타트업이나 어떤 IP를 활용할 지 검토하고 있는 기업에는 유용한 모델이다. 하지만 오히려 특정 IP를 라이선스했을 때보다 많은 비용을 낼 수 있고, 지원되는 코어 IP 종류가 많지 않다는 건 한계로 꼽힌다. 특히 고사양 AP를 만들 때 필요한 코어텍스A 시리즈 코어는 완전히 빠졌다.

Arm 측은 IT 매체 더레지스터(The resister)와의 인터뷰에서 “(플렉시블 액세스를 사용해도)비용에 큰 차이는 없다”며 “협력사들이 여러 IP에 접근해서 제품을 설계하고 원하는 IP에 대해서만 라이선스 및 로열티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는 Arm의 플렉시블 액세스가 RISC-V를 겨냥해 나온 것이라 해석한다. RISC-V 진영이 가장 먼저 노리고 있는 시장이 내장형 프로세서인데, 플렉시블 액세스에서 지원하는 코어 또한 이 시장에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중저가형 AP 설계 업체 대표 A씨는 “팹리스 업계에서는 RISC-V 진영이 Arm의 대항마가 될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라며 “그동안 Arm을 써왔는데 자율성이 떨어지다보니 다음 프로젝트에는 RISC-V 코어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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