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업계에서 근 10년래 패키지가 이렇게 주목받은 적이 없었다. 같은 면적에 다양한 기능을 배치해야 하는 설계, 복잡한 패터닝과 화학물 증착⋅에칭 과정을 수백번 반복해야 하는 웨이퍼 전공정에 비해 패키지는 단순하고 수익성은 떨어지는 ‘후’공정이었기 때문이다.

TSMC가 애플 ‘A11'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에 통합 팬아웃 웨이퍼레벨패키지(InFO) 기술을 적용키로 하면서 비로소 이슈로 부각됐다. 하지만 주목받지 못했다 뿐이지 그동안 패키지 기술은 '경박단소(輕薄短小)화'를 위해 진보해왔다.

갑자기 이슈가 된 이유는 새로운 패키지 기술이 종합반도체업체(IDM) 및 전공정 외주생산(파운드리), 외주후공정(OSAT), 테스트, 장비 및 소재 생태계를 허물고 있기 때문이다. 좀 더 많은 기능을 하나의 패키지에 구현하려는 목표가 가속화되면서 업종간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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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진복을 입은 반도체 엔지니어가 마스크를 확인하고 있다. /TSMC 제공

 


WLPㆍTSV 독식한 전공정
 

TSMC와 삼성전자는 왜 패키지를 직접 하겠다고 나섰을까. 파운드리 업체가 직접 패키지에 손을 대면 기술, 효율, 수익 3가지 토끼를 한번에 잡을 수 있다. 

TSMC의 'InFO' 기술에 쓰인 팬아웃 웨이퍼레벨패키지(FoWLP) 기술이 등장한 이유는 기존 패키지 기술이 복잡하고 입출력(I/O) 게이트가 많은 반도체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KINEWS 7월 20일자 '[기술 엿보기] 반도체 패키지 바뀐다는데... FoWLP가 뭐지?'참조)

웨이퍼레벨패키지는 웨이퍼를 자르지 않고, 별도의 보조기판(서브스트레이트) 없이 웨이퍼 다이와 주기판인 인쇄회로기판(PCB)을 연결해주는 기술이다. 몰딩처리 후에 웨이퍼를 자르기 때문에 각각 다이를 하나하나 패키지 할 때보다 시간이나 비용이 적게 든다.

I/O가 많은 미세공정 반도체는 PCB와 다이를 이어주는 솔더볼을 배치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 다이보다 넓게(팬 아웃) 연결통로 역할을 하는 전극(솔더볼)을 형성해 필요한 수의 솔더볼을 모두 붙이고 주기판과 연결한다.

▲플립칩 패키지와 InFO 패키지 비교. /TSMC '2015 오픈이노베이션 포럼' 발표 자료

주기판은 팬 아웃한 연결부와 면적이 동일해야 WLP의 이점을 누릴 수 있다. PCB 회로 역시 얇아져야 한다. PCB와 OSAT는 대기업 일부를 제외하고 5마이크로미터(µm) 미만의 미세 회로를 패터닝할 수 있는 장비가 없어 신규 투자를 해야 한다. 이미 미세 선폭 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전공정 업체들이 직접 처리하는 게 기술적에서나 효율면에서나 유리하다. 후공정 업체가 하던 일을 전공정이 흡수한 셈이다.

실리콘관통전극(TSV)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KIPOST 2015년 10월 15일자 '[3D發 반도체 빅뱅] 삼성전자, TSMC TSV 내재화… 왜?' 참조) 10마이크로미터(µm) 미만의 수직 구멍(홀)을 반도체에 형성시키기 위해 업계는 웨이퍼를 쌓고 뚫은 뒤 전극을 연결하는 '비아 미들(Via Middle)' 방식을 주로 쓴다. 전공정에서 트랜지스터를 형성한 뒤 구멍을 뚫고, 반대편 웨이퍼를 갈아낸 다음 홀 구멍을 맞춰 웨이퍼끼리 쌓는다. 전공정 중간에 TSV를 형성해야 하기 때문에 IDM이나 파운드리 업체가 직접 수행한다. 

▲TSV 방식. △Via First는 트랜지스터 형성 전에 구멍을 뚫고 웨이퍼 위에 화학물질 레이어(층)를 쌓는 방식 △Via Middle은 트랜지스터 형성 후 구멍을 내고 레이어를 쌓는 방식 △Via Last는 전공정이 끝난 후 후공정에서 수직구멍을 형성하는 방식이다. /우리투자증권 제공

패키지 공정이 늘어나 부가가치를 키운만큼 전공정 업계는 수익을 더 가져가고, 후공정 업체는 점점 일거리가 부족해지게 된다.  패키지 방식 때문에 전공정ㆍ후공정으로 나뉘어 있던 업종 경계가 사라졌다.

패키지 전문가인 김구성 강남대 교수는 "전공정 업체들이 후공정 시장을 잠식하고, 후공정 업체는 테스트 등 후방 산업을 잠식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아예 기판 크기까지 키우기로 하면서 디스플레이 공정을 활용한다. 패널레벨패키지(PLP)를 위해 삼성디스플레이의 대면적 기판 핸들링ㆍ그립 기술, 소재 기술을 확보했다. 아예 반도체와 타 업종간 융합이 이뤄지는 것이다.

글로벌 패키지 업체 임원은 "이제 반도체 업체가 반도체만 하고, 패키지 업체가 패키지만 하던 시대는 끝난 것 같다"며 "여러 업종에서 쓰던 기술을 검토해 적용하는 회사가 살아남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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