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표 반도체 기업 삼성전자가 당초 로드맵보다 극자외선(EUV) 노광 공정 도입을 미루고 있다.

 

193㎚ 파장을 활용한 기존 이머전(액침) 불화아르곤(ArF) 노광 장비로는 10나노 이하 미세 공정을 구현하기 어렵다는게 반도체 산업 내 정설이었다.

 

그러나 D램·낸드 플래시 등 메모리는 미세공정 대신 3D 반도체 쪽으로 기술 트렌드가 바뀌었다. 또 시스템반도체에서도 멀티 패터닝 노광 기술이 개선되면서 10㎚뿐 아니라 7㎚ 미세공정도 처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다.

 

비싼 EUV 장비를 도입할 필요가 점차 없어진 셈이다. EUV 장비를 독점 생산하는 네덜란드 ASML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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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소그래피 장기 로드맵/ ITRS 제공

 

 

반도체 미세공정의 핵심, 노광

 

과거 반도체 미세공정 기술을 주도해온 것은 노광기술이었다. 노광은 현재 시스템반도체 공정 소요 시간 중 60%, 생산원가의 35%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하다. 노광·증착·식각의 3대 반도체 공정 중 노광은 단연 최고 기술로 손꼽힌다. 반도체 업체들은 노광 공정을 단순화하고 원가를 줄이는데 기술력을 집중해왔다.

 

ASML은 20나노 초반까지 노광 분야에서 가장 앞선 기술력을 자랑했다. 반도체 업체는 ASML로부터 가장 먼저 최신 노광기를 공급받아 미세공정을 발 빠르게 진전시켜야 경쟁사를 앞설 수 있었다.

 

당초 전문가들은 10나노 초반 공정에서 멀티 패터닝 기술이 한계에 다다를 것으로 내다봤다. 대안으로 EUV 노광 기술이 손꼽혔다. EUV는 13.5㎚ 파장의 극자외선을 이용하는 기술이다. 짧은 파장으로 해상도 극대화할 수 있다. 적은 횟수의 패터닝으로 미세공정을 구현할 수 있어 반도체 공정을 대폭 줄일 수 있다.

 

 

반도체 빅3 기업으로부터 러브콜 받던 ASML...EUV가 야속해

 

수량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삼성전자같은 주요 고객이 ASML에 장비를 구입할 경우 ArF는 7000만 달러, EUV는 1억5000만 달러 수준으로 추정된다. 비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은 서로 EUV 장비를 먼저 도입하기 위해 ASML에 러브콜을 보냈다.

 

인텔이 가장 먼저 움직였다. 지난 2012년 인텔은 네덜란드 노광장비 업체 ASML에 33억 유로(4조6000억원)를 투자했다. 경쟁사보다 먼저 EUV 공정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25억 유로로 ASML 지분 15%를 받고, 나머지 8억 유로는 공동 연구개발(R&D)에 투입하기로 했다.

 

얼마 후 TSMC도 11억 유로(1조5000억원)를 투자해 지분 5%를 확보하고, 공동 R&D에 2억7000만 유로를 투입했다.

 

삼성전자도 차세대 반도체 기술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면 ASML을 잡아야 했다. 삼성전자는 이내 7억7900만 유로(1조1000억원)를 투자해 ASML 지분 3%를 확보했고, 공동 R&D에 2억7600만 유로를 투입하기로 했다.

 

ASML은 단숨에 반도체 빅3 기업으로부터 총 51억8000만 유로(7조2000억원)의 투자를 이끌어 내는 기염을 토했다.

 

 

 

삼성전자, 멀티 패터닝 노광 기술로 7㎚까지 진행...ASML, 발등의 불

 

최근 콧대 높은 ASML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삼성전자가 낸드 플래시 기술을 미세공정보다는 3D 적층 쪽으로, D램은 커패시터 구조 및 소재 변경 쪽으로 이끌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시스템반도체에는 아직 EUV가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기존 멀티 패터닝 기술을 개량해 EUV을 대체할 수 있는 공정에 성공했다. 

 

이제 ASML이 기댈 수 있는 곳은 인텔·TSMC 정도 밖에 없다. 

 

인텔은 지난 4월 ASML로부터 15대의 EUV 장비를 2조원에 구매했다. 연내 EUV 2대를 생산 라인에 설치하고 나머지 물량을 순차적으로 배치하기로 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EUV 도입을 점점 늦추는 분위기다. 우선 쿼드러플패터닝(QPT) 기술로 10나노 시스템반도체 미세 공정을 확보를 시도하고 있다. 향후 7나노 미세공정 기술도 QPT로 구현한다는 목표다.

 

QPT는 기존 더블패터닝(DPT) 노광 공정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10나노대 미세 회로를 구현한 기술이다. DPT로 첫 번째 회로를 형성하고, 회로 사이에 또 하나의 패턴을 새겨 넣는 원리다. 기존 액침 노광기를 그대로 쓸 수 있고, DPT와 연속성도 커 안정적이다.

 

한 때 QPT는 DPT에서 EUV로 전환되는 사이 징검다리 기술로만 인식됐다. QPT로는 10나노 초반 미세공정이 한계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QPT 개량 기술로 기존 관념을 뒤엎었다.

 

QPT 공정 효율화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초창기 QPT는 DPT 공정 대비 70% 이상 생산비가 비쌌다. 최근 삼성전자 등 선두 업체들은 QPT 공정 비용을 DPT 대비 15~30% 수준까지 줄인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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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ML 장비/ ASML 제공

 

 

 

삼성전자, ASML에 끌려가기보다는 협상력 높이는 전략으로 선회

 

삼성전자도 장기적으로는 EUV 장비를 도입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시스템반도체 7나노 미세공정까지 가능한 QPT를 끌고가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우선 EUV의 안정성에 의문을 품고 있다. EUV는 산소·이산화탄소 등 대부분의 물질에 흡수되는 성질이 있다. 또 진공 상태에서 반사형 박막 거울을 사용해야 한다. 현재 박막거울은 최대 반사 효율이 70%에 불과하다.

 

현재 수준의 EUV 장비로는 광원 출력이 약해 웨이퍼 처리량이 부족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EUV 공정으로 하루 2500장의 웨이퍼는 처리할 수 있어야 도입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삼성전자가 ASML에 대해 만만디 행보를 보일수록 협상력은 높아진다. 또 EUV를 뒤늦게 도입하면 개발비에 대한 감가상각이 이미 진행된 후 가격으로 살 수 있다.

 

차세대 공정 기술 확보차원에서도 QPT 기술이 유용하다고 판단했다. 현재 반도체 전문가들은 7나노 공정까지는 EUV 장비로만 노광공정을 처리할 수 있지만, 5나노에서는 DPT 공정을 같이 써야 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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