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ML NXT:1950i 이후 장비 반입 불가능
2019년 10나노대 1세대 기술 확보하고도
올해 상장 위해 고육지책으로 공정 회귀

중국 D램 제조사 CXMT(창신메모리)가 미국 제재를 피해 20nm(나노미터)대 제품으로 회귀한다. 이 회사는 올해 ‘과창판(科創板⋅스타마켓)’ 상장을 추진 중인데, 18nm로 선그어진 미국 BIS(산업안보국) 제재도 피하면서 상장도 강행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D램 업체들 기술 도입 로드맵./자료=욜디벨롭먼트
D램 업체들 기술 도입 로드맵./자료=욜디벨롭먼트

 

ASML NXT:1950i에 묶인 중국 반도체

 

그동안 중국 내에서 D램 산업에 투자하고자 하는 프로젝트가 많았지만 CXMT 만큼의 성과를 보인 회사는 없다. CXMT는 지난 2019년 10나노급 1세대 제품인 D1x 기술을 확보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2017년 D1x 양산을 시작한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과 비교하면 2년 정도의 시차가 존재하지만, 10나노급 기술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D램 3사를 긴장케 했다. 

문제는 D1x 기술 확보를 발표한 그 해 미국의 화웨이에 대한 제재가 시작됐다는 점이다. 화웨이 제재 이후 미국의 시선은 중국 반도체 기업으로 옮겨 붙었고, CXMT를 비롯해 3D 낸드플래시 업체 YMTC(양쯔메모리), 파운드리 SMIC로 확산됐다. 

미국 행정부 최종 최재라 할 수 있는 BIS의 기준은 ▲16/14nm 이하 로직칩 ▲18nm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를 생산하는 모든 장비의 중국 수출을 금지로 요약된다. 

여기서 CXMT가 속하는 부분은 두 번째다. 2019년 CXMT가 개발한 10나노급 1세대 제품이란 19nm로 설계된 것을 뜻하는데, 여기서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 

ASML이 개발한 NXTL1980i. CXMT가 선단 공정 개발 투자를 위해서는 이 장비가 필요하지만, 현재 통관이 막혀 있다. /사진=ASML
ASML이 개발한 NXTL1980i. CXMT가 선단 공정 개발 투자를 위해서는 이 장비가 필요하지만, 현재 통관이 막혀 있다. /사진=ASML

10나노급 2세대 제품인 D1y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네덜란드 ASML의 노광장비 ‘NXT:1980i’가 필요한데, 현재 중국 통관이 허용된 설비는 한 세대 이전인 ‘NXT:1950i’가 최선이다. NXT:1950i는 22nm 제품 생산에 최적화된 설비다. 이미 19nm 제품 생산 기술까지 확보한 CXMT로서는 22nm 제품으로 회귀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는 것이다. 

한 반도체 노광 기술 전문가는 “NXT:1950i로도 D1y 패턴을 만들수는 있지만 오버레이 정밀도가 D1y를 뒷받침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오버레이란 반도체 공정상 회로 패턴들을 적층하는 과정에서 이전 공정에서 제작된 회로 패턴과 현재 공정의 패턴간 수직 정렬도를 제어하는 것을 의미한다. NXT:1950i도 ArFi(불화아르곤 이머전) 기술을 사용하는 만큼 정밀 패턴을 그릴 수는 있으나, 아래층과 위층을 정확하게 정렬하지는 못한다는 뜻이다. 

 

20나노대 회귀는 고육지책

 

D램 산업에서 생산 기술을 의도적으로 후퇴시키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미세 공정 발전을 통해 단위 생산비를 떨어뜨려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공정 후퇴는 같은 제품을 더 비싸게 만들겠다는 의미여서다. 

물론 비즈니스 기회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D램 3사(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는 공정을 앞으로 발전시켜 나가면서 레거시 제품들은 단종시키는데, 이때 단종 제품에 대한 수요가 일부 발생할 수 있다. 

D램 회사들이 보통 4개 세대 공정을 운용하고, 현재 10나노급 4세대급 제품이 최선단이다. 이를 고려하면 20나노급 제품은 3사가 더 이상 제공하지 않는 모델이라는 뜻이다. 올해 안에 10나노급 5세대 양산이 시작되면 곧 10나노급 1세대 제품도 단종될 수 있다. 

반도체 웨이퍼. /사진=SK하이닉스
반도체 웨이퍼. /사진=SK하이닉스

그러나 3사가 단종한 20나노급 제품 수요가 많지는 않다. D램은 소품종 대량생산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키워가야 하는데, 이처럼 단종된 제품들은 특수한 영역에 소규모 수요 밖에 없다.

CXMT가 사업방향을 후퇴시키면서까지 D램 투자를 지속하는 건, 이 회사가 올해 과창판 상장을 준비하고 있어서다. 기존 선단공정 D램 생산을 계속 추구한다면 더 이상 장비 수급이 불가능하고, 이는 상장 작업에 타격을 줄 수 있다. 

지난 10일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은 CXMT가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KLA⋅램리서치 등 미국 업체로부터 반도체 장비를 수입할 수 있다는 회신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10나노대 제품 생산을 포기하고 20나노대 제품을 생산키로 한 CXMT의 전략을 감안한 조치로 풀이된다. 

한 반도체 산업 전문가는 “올해 ASML이 중국으로 수출 예정이던 ArFi 장비가 106대인데 현재는 반입이 캔슬된 상태”라며 “CXMT가 10나노대 제품 생산에 투자할 수 있을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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