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어1' 거치지 않고 협력사 직접 관리
반도체 수급난 당시 학습효과

혼다가 만든 전기차 '혼다e'. /사진=혼다
혼다가 만든 전기차 '혼다e'. /사진=혼다

일본 혼다가 전기차 사업에서 애플의 서플라이체인 관리 전략을 차용한다. 소위 ‘티어1(Tier1)’으로 분류되는 대형 전장 회사들에 의존해서는 반도체 수급난 같은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2일 닛케이아시아는 혼다가 부품 협력사들로부터 자재를 직접 수급받는 방식으로 구매 전략을 변경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동안 혼다를 포함한 자동차 회사들은 보쉬⋅덴소⋅현대모비스 등 대형 전장 회사를 통해 자재를 모듈 단위로 구매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한 개 모듈 안에도 수많은 소재⋅부품이 뒤엉켜 있는 탓에 완성차 회사가 이들을 일일이 관리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 같은 방식은 개별 부품에 대한 관리 포인트를 줄이고, 재고 부담을 전장회사로 전가할 수 있어 수익성 측면에서도 이득이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은 지난 2년간의 자동차 반도체 수급난 국면에서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반도체 공급사들과 직접 커뮤니케이션 해 본 경험이 적어 손쓸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1달러짜리 MCU(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를 구하지 못해 수천억원 규모 생산라인을 속절없이 세워야 하는 시간이 흘러갔다. 혼다만 해도 지난 2년 연속 차 판매량이 줄었는데, 이는 수요 보다 원활 하지 못했던 공급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에 혼다는 애플처럼 수많은 부품 협력사들과의 직접적인 협력을 통해 공급망을 관리하기로 한 것이다. 애플은 폭스콘 같은 외주 조립업체는 물론, 디스플레이를 생산하는 장비와 소재까지 직접 선정 작업에 관여한다. 

이 회사는 지난달 28일 배터리 제조업체 GS유아사와 공동으로 일본 내 배터리 생산라인을 짓기 위해 4341억엔(약 4조23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최대 1587억엔 규모 정부 보조금도 지급된다. 신공장 전체 가동 시점은 오는 2027년 10월이며, 연간 생산능력은 20GWh 정도다. 

앞서 지난달 26일에는 대만 파운드리 TSMC와도 안정적 반도체 공급을 위한 전략적 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업계는 혼다가 오는 2025년부터 생산될 반도체 물량에 대한 슬롯을 확보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전 같으면 티어1 회사들에 반도체 수급을 일임했겠지만, 이제는 TSMC와 직접 대화하기로 한 것이다. 

TSMC는 현재 내년 말 가동을 목표로 일본 구마모토현에 첨단 반도체 생산공장을 건설 중이다. 이 공장에서 생산되는 반도체 물량 중 상당부분이 도요타⋅혼다 등 일본 완성차 업계로 할당된다. 

혼다는 지난달 초 포스코와도 배터리용 원자재 수급 안정을 위한 협력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한 자동차 산업 전문가는 “내연기관 차와 달리 전기차용 자재는 소수 업체가 과점한 품목이 매우 다양하다”며 “이들 소재⋅부품 수급을 한 다리 걸쳐서 관리하기에는 불안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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