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SP⋅엔씨켐⋅한미반도체 등 즐비
이기두 크레센도 대표는 인텔 출신

최근 국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과 관련한 굵직한 딜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이름이 크레센도에쿼티파트너스(이하 크레센도)다. 소위 ‘페이팔 마피아’ 피터 틸이 출자한 크레센도는 2012년 설립 이래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소부장 기업 투자에 집중해왔다. 

페이팔 마피아는 피터 틸(팰런티어 창업자), 일론 머스크(테슬라 CEO) 등 미국 페이팔 창업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220여명의 기업가⋅투자가를 일컫는다.

반도체 웨이퍼. /사진=SK하이닉스
반도체 웨이퍼. /사진=SK하이닉스

 

HPSP⋅엔씨켐 등 반도체 분야 독보적 기술력

 

지금까지 크레센도가 공개한 국내 주요 투자기업 20개 중 12개가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 소부장 분야에 속한다. HPSP⋅엔씨켐⋅한미반도체⋅알파플러스 등 각 영역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보유한 회사들이 많다.

가장 최근 크레센도가 M&A(인수합병) 딜에 이름을 올린 건 엔씨켐 매각건이다. 크레센도는 지난 2018년 50.4%를 인수한 뒤, 지난해 삼양사에 3분의 2 가량을 매각했다. 아직 지분 3분의 1 정도는 보유하고 있으며, 향후 삼양사가 엔씨켐을 IPO(기업공개) 하면 나머지 지분도 처분할 것으로 예상된다.

엔씨켐은 반도체 PR(포토레지스트)용 폴리머 및 PAG(photo acid generator) 생산업체다. PR은 지난 2019년 일본이 반도체 소재 수출 제한 조치를 내리면서 국산화 필요성이 크게 부각된 재료다. 이후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PR은 물론 PR 중간재까지 국산화 범위를 넓히면서 엔씨켐은 동진쎄미켐⋅듀폰 등에 PR 폴리머를 공급량을 크게 늘릴 수 있었다. 

엔씨켐이 생산한 폴리머를 이용해 동진쎄미켐⋅듀폰 두 회사는 ArF(불화아르곤)⋅KrF(불화크립톤)용 PR을 제조한다. 

페이팔 공동창업자 피터 틸. 그는 크레센도 출자에도 참여했다.
페이팔 공동창업자 피터 틸. 그는 크레센도 출자에도 참여했다.

최근 IPO에 성공한 HPSP 역시 크레센도가 대주주다. 크레센도는 지난 2017년 풍산의 장비사업부문을 인수, 현재의 HPSP로 이름을 바꿨다. IPO 이후에도 HPSP 지분 40% 정도를 보유하고 있다. 

크레센도가 풍산 장비사업부문을 인수할 당시만 해도 고압 수소 어닐링 장비는 현재와 같은 시장을 형성하지 못했다. 파운드리 분야에서 미세공정이 고도화하면서 고압 수소 어닐링 장비 수요도 동반 성장했다. 어닐링은 반도체 이온임플란트 공정 이후 계면 결함을 치유하기 위한 과정이다. 

16nm(나노미터) 공정 이전까지는 약 4% 수소로 650℃ 온도에서 어닐링이 진행됐다. 그러나 미세공정 발달로 메탈층 두께까지 얇아지고, 구조가 복잡해지면서 더 이상 고온에서 어닐링을 진행하는 게 불가능하다. HPSP 장비는 100% 수소로 450℃ 안팎의 저온에서 어닐링을 수행한다. 덕분에 메탈층에 가해지는 데미지를 최소화 할 수 있다. 전 세계 장비업체 중 100% 수소 농도로 어닐링 할 수 있는 장비는 HPSP만 공급한다. 

한 반도체 분야 전문가는 “16nm 이하 미세공정 투자 시 월 웨이퍼 투입량 1만장 당 1.5대씩의 HPSP 어닐링 장비가 필요하다”며 “지난해 50%에 육박하는 영업이익률은 이 같은 독보적인 포지션 덕분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디스플레이 분야 투자도 

 

크레센도의 포트폴리오 중 알파플러스는 유일한 디스플레이 분야 장비업체다. 알파플러스는 OLED 증착장비용 소스(도가니)를 생산한다. 소스는 단시간에 OLED 유기재료를 가열해 기화시켜주는 모듈이다. 

삼성디스플레이가 사용하는 OLED 증착설비는 100% 일본 캐논도키가 공급하지만, 핵심 모듈인 소스는 삼성전자 종합기술원과 알파플러스를 통해 국산화했다. 경쟁사가 삼성디스플레이와 동일하게 캐논도키 증착설비를 도입하더라도 수율까지 같을 수 없는 건, 이 같은 핵심모듈을 자체 조달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알파플러스는 지난 2017~2019년 삼성디스플레이 A3 투자 국면에서 다량의 소스를 공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OLED 포인트 소스(왼쪽)와 리니어 소스의 차이. 증착 효율은 리니어 소스가 더 높지만, 포인트 소스가 더 높은 온도를 유지하는 데 유리하다. /KIPOST
OLED 포인트 소스(왼쪽)와 리니어 소스의 차이. 증착 효율은 리니어 소스가 더 높지만, 포인트 소스가 더 높은 온도를 유지하는 데 유리하다. /KIPOST

알파플러스의 주주 구성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는데, 창업자 황도원 현 대표의 지분은 5% 정도며 나머지는 대부분 크레센도가 보유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알파플러스는 자회사 알파이브이에스(진공펌프)⋅알파에이디티(신소재)를 통해 각종 신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이 밖에 솔루에타(EMI 솔루션), 동아케미칼(PU⋅TPU 제조), 모벤시스(자동화 솔루션) 등 크레센도의 다른 포트폴리오도 관련 분야에서 기술력을 인정받는 소부장 업체들이다. 

크레센도가 불과 10년 남짓한 기간 동안 국내 수많은 소부장 업체에 투자하고 성공적으로 수익화 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는 이기두 크레센도 대표의 선구안을 꼽는다. 이 대표는 미국 MIT 재료공학박사 출신으로, 인텔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백그라운드가 반도체 및 소재 분야에 집중됐다는 점에서 소부장 기업의 성장성을 평가하는데 강점을 갖고 있다. 

크레센도의 투자 포트폴리오 일부. /자료=크레센도
크레센도의 투자 포트폴리오 일부. /자료=크레센도

기업 인수 후 김용운 현 HPSP 대표나 박춘근 전 엔씨켐 대표처럼 업계 전문가를 전문경영인으로 영입한 전략도 주효했다. 김 대표는 미국 반도체 장비업체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 박춘근 전 대표는 미국 화학업체 다우케미칼 출신이다. 

한 사모펀드 업계 관계자는 “외국계 사모펀드 대부분이 접근성이 높고 검증하기 좋은 B2C나 유통 분야에 투자하는 것과 달리 크레센도는 처음부터 소부장 분야에 투자하면서 주목을 받았다”며 “적어도 지금까지는 매우 성공적인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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