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반도체 업계, “산업 자체가 위기” 우려 나타낸 것으로 전해져
YMTC, “세계적으로 규정 준수”…회의 관련 보도 부인

▲YMTC가 생산한 3D 낸드플래시. /사진=YMTC
▲YMTC가 생산한 3D 낸드플래시. /사진=YMTC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의 대(對)중국 첨단 기술 규제에 맞서 ‘결연한 승리’를 다짐하고 있지만 정작 중국 반도체 업계에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가운데 중국 당국이 최근 미국의 반도체 기술 수출 규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자국내 반도체 기업들을 긴급 소집해 대책 회의를 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검토중인 내수 시장 수요 진작과 지방 정부 차원의 반도체 업계 지원책 등을 제외하면 뾰족한 대안을 찾을 수 없는 실정이다.

지난 20일(현지 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중국 산업정보기술부(MIIT)는 지난주 자국내 주요 반도체 회사 관계자를 모아 연쇄 긴급 대책 회의를 열었다. 이달 7일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이 중국 반도체 기업에 자국의 반도체 기술과 장비 수출을 금지하는 조치를 실시하자 대응책 마련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미 상무부는 미국 기업의 18nm이하 D램 및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중국 수출과 14nm 이하 로직칩을 생산하는 중국 기업에 대한 반도체 장비 수출을 사실상 금지하는 수출통제 조치를 발표했다.

미 정부 규제에 발맞춰 미국 장비업체 램리서치가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에 파견한 직원들을 철수시키는 등 벌써부터 민간 차원에서도 서방 기업들이 잇따라 중국 반도체 업계와의 협력 관계를 중단하는 상황이다.

이번 회의는 중국내 대표 메모리반도체 기업인 YMTC와 슈퍼컴퓨터 전문 업체인 도닝인포메이션인더스트리 등 반도체 업체 경영진들이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로 진행됐다고 블룸버그는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자리에서 중국 MIIT 당국자들은 미 상무부의 수출 제한 조치로 인한 피해를 평가하고 핵심 분야에 대한 지원을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선 미국의 제재로 피해를 보는 기업들이 운영을 이어갈 수 있도록 내수 시장에서 충분한 수요를 제공할 것이라며 업계의 불안 진화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당국자들의 설득에도 업계 관계자들은 미국의 규제가 산업에 총체적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며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고 블룸버그는 보도했다. YMTC는 자신들의 미래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MIIT 관계자들에게 경고했으며 AI 칩 제조사인 비런과기는 대만 TSMC와의 칩 생산 계약이 미 정부의 규제 여파로 철회될 위기라고 토로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비런과기는 지난 8월 범용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출시할 때만 해도 27억 달러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으나 거품으로 꺼질 위기에 처했다. 블룸버그는 중국 내 어떤 회사도 TSMC를 대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소식통들은 회의에 참석한 정부측 반응과 관련해 “공업정보화부 당국자가 향후 대응에 대해 확신하지 못한 듯 보였으며 때로는 업계의 물음에 답하는 것만큼이나 많이 질문하는 듯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중국 반도체 업계의 분위기는 지난 16일 시 주석이 당대회 업무 보고에서 ‘기술 자립’을 통해 미국과의 기술 패권 전쟁에서 승리하겠다고 밝힌 것과는 사뭇 다른 것으로 풀이된다. 당시 시 주석은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 자립·자강 실현을 가속화하고, 국가 전략상의 요구를 지향점 삼아 원천적·선도적 과학기술의 난관을 돌파하는 데 역량을 결집하며, 핵심 기술 공방전에서 결연히 승리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애초부터 3연임 대관식이라는 이번 당대회에서 나온 이 같은 시 주석의 의중을 반영해 중국 지방정부들은 최근 잇따라 반도체 기업에 대한 지원에 나서고 있다. 최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의 지방 정부들이 자국의 반도체 기업에 대한 현금 인센티브와 정책 지원을 배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광둥성 선전시는 최근 관할 지역 내 반도체 설계 기업에 연간 1000만 위안(약 20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으며 저장성 리수이시도 지역 내 반도체 설계 회사에 대해 연간 매출액에 따라 최대 500만 위안의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시 주석이 집권 3기의 청사진으로 기술 자립을 강조한 만큼 이처럼 중앙 및 지방 당국의 지원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반도체 기술 자립 목표를 이루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번스타인의 마크 리 애널리스트는 “미국의 반도체 대중 수출 규제는 이전 규제가 다루지 못한 많은 허점을 막은 것”이라며 “중국이 반도체 기술을 예전처럼 빠르게 발전시킬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미국의 잠정적 수출 통제 대상으로 지정된 중국 YMTC는 민관 대책회의를 가졌다는 지난 20일 블룸버그 보도를 부인하고 나섰다. YMTC는 이날 밤 성명에서 “YMTC는 글로벌하고 시장에 기반하며 규범 준수 개념을 따르는 상업 법인”이라며 “우리는 항상 설립 이래 세계적으로 법 원칙과 규정 준수 경영을 고수해 왔다”고 밝혔다.

YMTC는 “그러한(블룸버그) 보도는 악의적 의도가 있으며 YMTC의 기업 이미지를 훼손할 뿐만 아니라 국내외 반도체 산업 환경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친다”고 비판했다. 이번 성명은 미국의 최근 규제에 대해 YMTC가 약 2주 만에 내놓은 첫 공식 입장이다.

앞서 미 상무부는 지난 7일 YMTC를 비롯해 중국 기업 31개사를 ‘미검증 명단(unverified list)’에 올리며 사실상 잠정적인 수출통제 대상으로 지정했다. 미검증 명단에 오른 기업들은 자신들이 생산한 제품의 최종 소비자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를 미 정부에 제공할 경우 명단에서 빠질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더 강력한 무역 제재 대상인 ‘수출 통제 명단(entity list)’에 오를 수 있다. 결국 미 상무부가 YMTC를 수출통제 대상 업체로 지정한 것은 중국으로의 반도체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SCMP는 22일 보도에서 “미 정부의 발표 후 침묵을 지켜오던 YMTC가 해당 블룸버그 보도를 부인하며 성명을 낸 것은 이 회사가 미 정부의 추가 제재를 피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또 “미 정부의 최신 규제에 대해 공식 반응을 내놓은 중국 반도체 회사는 거의 없지만, 대부분이 가능한 한 규정을 준수하길 원하는 신호가 나온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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