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적으로 호재라는 관측도
중국 반도체 투자 위축⋅위축되면 피해

미국이 대(對) 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을 금지하면서 국내 장비사들의 손익계산이 물밑에서 이뤄지고 있다. 미국 장비 대체가 가능한 회사라면 단기적으로 수주가 늘 수 있으나, 중국의 반도체 설비 투자가 지연되거나 축소된다면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악재다. 

이와 별개로 미국의 EAR(수출관리규정)에 따른 따른 수출 규제도 꼼꼼하게 따져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웨이퍼. /사진=UMC
반도체 웨이퍼. /사진=UMC

 

단기적으로는 호재일수도, 장기로는 안갯속

 

중국에 대한 국내 장비사들의 수출은 중국 내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 대한 수출과 그 외 중국 현지 업체로의 공급으로 나뉜다. 우선 삼성전자 시안 공장과 SK하이닉스 우시 및 다롄(솔리다임) 공장에 대한 납품은 최근 미국 행정부의 수출 통제조치 1년 유예 결정에 따라 한 시름 놓았다. 두 회사에 대한 장비 공급은 지금처럼 별도의 허가 절차 없이 이뤄질 수 있다.

안기현 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국내 업체의 중국으로의 장비 수출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로의 공급이 대부분을 차지한다”며 “삼성전자⋅SK하이닉스, 장비사들 모두 우선은 1년간 시간을 벌게 됐다”고 말했다.

관건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아닌 중국 내 로컬 기업에 대한 장비 공급이다. 미국의 봉쇄는 한국 기업들을 직접 규제하지는 않기에 표면적으로는 중국 기업으로의 장비 공급이 가능하다. 특히 CXMT(창신메모리)⋅YMTC(양쯔메모리)⋅SMIC 등은 앞으로 비(非) 미국계 장비를 우선적으로 검토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사태가 국내 장비업체에 호재로 작용할 거란 시각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JHICC가 발주한 D램용 장비 리스트 일부. /자료=KIPOST
JHICC가 발주한 D램용 장비 리스트 일부. /자료=KIPOST

그동안 PSK(베벨에처)⋅원익IPS(PECVD TEOS)⋅주성엔지니어링(High-K 시스템)⋅넥스틴(웨이퍼 표면결함검사) 등이 중국 반도체 업계로부터 장비를 수주했다. 이들이 공급하는 장비는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램리서치⋅KLA 등 소위 미국 메이저 장비 업체들과 경합하는 품목이다. 중국 반도체 업계가 앞으로 미국 장비사들로부터 설비를 들일 수 없다면 국내 장비사들에 호재가 될 수 있다. 

예컨대 넥스틴이 공급하는 웨이퍼표면결함 검사장비는 KLA 설비를 대체하며, 검사 방식에 따라 브라이트필드(반사광 이용)와 다크필드(산란광 이용)로 나뉜다. 넥스틴은 지금까지 다크필드 설비만 중국에 공급했는데, 내년쯤 브라이트필드 장비도 출시한다. KLA가 중국과 거래한다면 브라이트 필드 시장에 진입하기가 쉽지 않았겠지만, KLA 장비 수급이 불가능해진다면 넥스틴 설비를 대체 검토할 수 밖에 없다. 

송인택 넥스틴 이사는 “평상시라면 새로 개발한 장비의 고객사 진입은 시간과 비용이 크게 들어가는 게 통상적일 것”이라며 “최근 미중 반도체 분쟁에 따라 다른 국면이 펼쳐지고 있다”고 말했다.

PSK의 베벨에처는 램리서치 장비를 대체한다. 두 회사는 베벨에처 시장을 놓고 특허분쟁을 벌일 만큼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중국 시장에서 램리서치가 철수하면, PSK의 베벨에처 점유율이 높아질 수 있다. 베벨에처는 웨이퍼 끝단 경사면에 남아있는 금속⋅비금속 막을 제거하는데 쓰인다. 12인치 이상 대면적 웨이퍼에서 미세 공정 제품을 양산하는데 필수다.

PSK가 개발한 베벨에처. /사진=PSK
PSK가 개발한 베벨에처. /사진=PSK

 

투자 위축되면 국내 업체도 피해 불가피

 

그러나 이 같은 기대는 어디까지나 중국 반도체 업계가 비 미국 장비를 이용해 설비 투자를 지속한다는 가정 하에서 실현 가능하다. 미국 바람대로 중국의 반도체 분야 투자가 심대하게 축소되거나 지연될 경우, 국내 장비 업체들의 수출도 그 만큼 차질을 빚게된다. 

예컨대 ArF(불화아르곤) 노광공정용 광원은 미국 사이머와 일본 기가포톤이 양분하고 있다. 만약 두 회사 모두 ArF 광원 공급을 거부한다면 노광장비 투자가 불가능하고, 전체 반도체 라인 투자가 스톱된다. 노광장비를 수급 못한다면 증착⋅식각⋅검사 장비 역시 필요 없다. 

전병서 중국경제연구소장은 “미국 장비를 도입하지 못하게 됨에 따라 사실상 설비 투자가 지연 내지는 위축될 수 밖에 없고, 국내 장비업체도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별개로 EAR 상 최소편입비율(de minimis) 규제 역시 따져봐야 한다. 미국은 미국산 제품이 아니더라도 미국산 품목을 사용하거나 미국산 품목이 포함된 외국산 제품에 대해 관할권을 갖는다고 해석한다. 미국산이 아니라도 미국 기술이 사용됐으면 미국산으로 간주한다는 뜻이다.

상무부 산하 BIS(산업안보국) 로고. /자료=BIS
상무부 산하 BIS(산업안보국) 로고. /자료=BIS

이를 최소편입비율 규제라고 하는데, 품목 및 수출 지역에 따라 최소편입비율은 0%⋅10%⋅25% 등 가변적으로 적용한다. 다만 미국 상무부의 미국산 기술 포함 여부에 대한 판단은 다소 자의적이고, 외부에서 사전 판단하는 게 쉽지 않다. 따라서 반드시 미국 상무부로부터 허가를 받고 수출을 진행해야 한다. 

만약 수출한 이후에 최소편입비율 위반으로 판단되면 해당 회사도 제재대상(Entity List)에 포함되는 등 불이익을 받게 된다. 중국으로부터 장비 수주를 하더라도 실제 수출이 이뤄지는데는 추가의 행정절차가 필요하게 되며, 미국산 부품⋅소프트웨어 비중이 높으면 수출을 못할 수도 있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해당 규정을 위반하면 위반 건당 최대 약 11억 원의 벌금 및 최소 약 3억 원의 과태료 처분 대상이 될 수 있고, 무엇보다 제대대상에 포함될 수 있어 해당 위반에 따른 리스크가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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