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가 디스플레이 대비 고정비 비중 2배 이상
D램은 적극적 감산보다 공정 전환효율 억제하는 수준
키옥시아는 연초 오염사고 탓에 어쩔 수 없이 감산

2분기 이후 IT 산업이 전반적 침체에 빠지면서 가동률 조정에 민감한 장치산업들도 감산 채비에 나서고 있다. LCD⋅OLED 등 디스플레이 분야가 적극적으로 가동률 조정에 나서는 반면,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감산 돌입이 더디다. 

매출원가에서 고정비 비중이 절대적인 메모리 반도체 사업 구조상, 감산을 통해 실적을 방어할 수 있는 여지가 크지 않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공격적 감산하는 디스플레이, 메모리는 머뭇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 3분기 LCD 패널 업체들의 가동률은 최고치 대비 70%선까지 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앞선 2분기보다 7.3% 포인트 재차 감소한 것이다. 그나마 TV용 주력 생산라인인 8세대 및 10세대급 라인 가동률은 75%선을 지킬 것으로 보이나, 모니터⋅노트북PC에 사용하는 5~7.5세대 패널 라인 가동률은 63%까지 빠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직전인 2020년 초 가동률 수준이 77% 정도였는데, 지금은 당시보다 상황이 더 좋지 않다. 

LCD 공장 가동률 현황. /자료=트렌드포스
LCD 공장 가동률 현황. /자료=트렌드포스

이처럼 디스플레이 업계가 2분기 들어 대대적인 감산에 돌입한 것과 달리, 메모리 반도체 업계는 최근 들어서야 감산 얘기가 조금씩 나오고 있다. 

D램 점유율 3위 마이크론은 지난달 말 공정전환에 따른 효율 개선 목표수준을 12~13%에서 5%로 낮추겠다고 발표했다. 신규 설비투자 없이 공정 전환만으로 생산량이 늘어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는데, 이를 스스로 지연시키겠다는 뜻이다. 비록 사전적 의미에서 공장 가동률을 떨어뜨리는 감산은 아니지만, 생산량 증대를 최대한 억제하는 것만으로 수요처에 주는 시그널은 크다. 

다만 업계 1⋅2위인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아직 감산을 공식화 하지 않고 있으며, 특히 삼성전자는 한진만 메모리 사업부 부사장이 직접 “감산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못박고 있다. 

이처럼 같은 장치산업 내에서 디스플레이와 메모리가 감산에 대해 상이하게 접근하는 건, 매출원가에서 고정비가 차지하는 비중 차 때문이다. 

SK하이닉스가 개발한 DDR5 D램 모듈.
SK하이닉스가 개발한 DDR5 D램 모듈.

지난 8월 제출된 LG디스플레이 반기보고서를 보면, 12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동안 매출원가는 10조9800억원에 달했다. 그런데 매출원가 중 감가상각 및 무형자산상각, 즉 고정비로 지출되는 부분은 2조3225억원 정도였다. 

같은 기간 SK하이닉스는 25조9666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동안 매출원가는 14조2145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원가 중 유무형자산 감가상각비는 6조8800억원 수준이었다. 

즉 두 회사의 매출원가에서 대표적 고정비인 감가상각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LG디스플레이가 21%인 반면, SK하이닉스는 48%에 달했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디스플레이가 공장 가동률을 낮출수록 변동비 부문에서 비용 지출을 줄일 여지가 큰 것과 달리, 메모리 산업은 감산한다고 해서 변동비를 축소하는데 한계가 있다. 감가상각비를 포함한 고정비는 가동률에 상관 없이 매분기 실적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매출 및 매출원가 중 감가상각비 비중. /자료=각 사
매출 및 매출원가 중 감가상각비 비중. /자료=각 사

한 반도체 산업 전문가는 “감산에 따라 비용을 아낄 수 있는 여지는 50% 정도에 불과한 반면, 그 기간에 생산하지 못한 매출은 100% 손실로 계산된다”며 “메모리 업계가 여간해서는 감산하지 않는 이유”라고 말했다.

 

속사정 다른 키옥시아

 

다만 같은 메모리 업계지만 D램 없이 낸드플래시만을 생산하는 일본 키옥시아의 속사정은 또 다르다. 키옥시아는 당장 이달부터 웨이퍼 투입량을 30% 정도 줄이기로 했다. 소극적 감산에 들어가는 마이크론과 달리, 키옥시아는 아예 공장 가동률 자체를 떨어뜨리는 극약 처방을 쓴다. 

키옥시아는 지난 2월 요카이치와 기타카미 생산시설 2곳에서 낸드플래시 원재료 오염 사고가 발생하면서 한동안 제품을 출하하지 못했다. 오염 사고를 겪은 라인의 제품들은 양품 테스트를 재차 받은 후에야 출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국내 제조사의 낸드플래시 재고 수준이 14주 정도인 반면, 키옥시아는 5개월치를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요카이치 낸드플래시 공장 내부. /사진=키옥시아
요카이치 낸드플래시 공장 내부. /사진=키옥시아

낸드플래시의 경우, 신규 투자 없이 공정 개선만으로 기대할 수 있는 전환효율이 D램의 두 배인 23~25%에 달한다. 심지어 공급사가 3개 밖에 없는 D램에 비해 낸드플래시 제조사는 7개(YMTC 포함)다. 재고 밀어내기를 위한 가격 경쟁이 일어날 여지가 크다. 이에 내년에 낸드플래시 가격은 캐시코스트 이하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낸드플래시 역시 매출 원가에서 고정비 비중이 크기는 하지만, 제품가가 캐시코스트 이하로 떨어지면 굳이 가동률을 유지할 이유는 없다. 5개월치 재고를 떠안고 있는 키옥시아 입장에서는 가동률을 줄여서라도 적정 재고 수준으로 내려와야 한다. 

황민성 삼성증권 팀장은 “문제가 없는 제품도 안 사가는 마당에 오염 이력이 있는 제품을 사갈리 만무하다”며 “키옥시아는 생산을 크게 줄일 수 밖에 없는 처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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