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신약 분야에서 IT 소재 개발 분야로 확산
글로벌 양강 체제...국내 스타트업도 시뮬레이션 공급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거나 기존 재료의 성능을 개선할 때, 가장 큰 비용을 차지는 건 직접 샘플을 만들어 평가하는 과정이다. 산업이 원하는 특성을 갖춘 소재가 도출될 때까지 무수한 샘플을 만들고 폐기하면서 점차 정답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최근에는 AI(인공지능)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직접 샘플을 제작해 보지 않고도 성능을 가늠할 수 있는 기술이 도입되면서 신소재 개발에 따르는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여주고 있다.

다쏘시스템의 바이오비아 플랫폼을 통해 물질의 분자 구조를 시각화 한 모습. /자료=다쏘시스템
다쏘시스템의 바이오비아 플랫폼을 통해 물질의 분자 구조를 시각화 한 모습. /자료=다쏘시스템

 

“소재 연구기간 6개월에서 이틀로 단축”

 

올해 초 삼성디스플레이는 KISTI(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와 공동으로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소재 특성 평가 시뮬레이션 플랫폼 ‘싱크-OLED’를 개발했다. 싱크-OLED를 활용하면 소재의 기본 특성과 전하이동도 등을 간편하게 평가해 볼 수 있다. 실제 소재 샘플을 만든 뒤, 셀을 제작하고 평가하는 과정과 비교하면 시간과 비용이 획기적으로 절감된다.

앞서 바이오⋅신약 개발에 적극적으로 도입되어 온 신소재 개발 시뮬레이션 플랫폼이 IT용 재료 분야로 확산하고 있다. 바이오⋅신약 개발은 워낙 후보물질의 양이 방대하고, 적기에 제품을 출시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1990년대 이전부터 이 같은 시뮬레이션 툴이 활용됐다. 이에 비해 반도체⋅디스플레이⋅배터리 등 IT 제조업 분야에서는 최근들어 이러한 기법이 활용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소재 개발용 시뮬레이션 플랫폼을 공급하는 회사로는 다쏘시스템(바이오비아)과 슈뢰딩거가 대표적이다. 두 회사가 관련 시장을 양분한다. 둘 다 미국회사로, 미국이 바이오⋅신약 개발 업체들이 많고 시장도 크다 보니 진작부터 시뮬레이션 플랫폼을 폭 넓게 활용해왔다. 

전통 신약산업에서의 신약 개발 과정(위)과 시뮬레이션을 사용했을 때의 과정(아래) 비교. /자료=슈뢰딩거
전통 신약산업에서의 신약 개발 과정(위)과 시뮬레이션을 사용했을 때의 과정(아래) 비교. /자료=슈뢰딩거

배경빈 슈뢰딩거 한국지사장은 “바이오⋅신약 산업이 발달한 미국⋅유럽 시장이 매출의 90%를 차지한다”며 “IT 제조업이 발달한 한국 및 아시아 시장은 이제 막 성장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슈뢰딩거는 올해 한국지사를 설립하고, IT 제조업 분야 고객사 확보에 매진하고 있다.

다쏘시스템⋅슈뢰딩거의 강점은 오랜 기간 축적해 온 데이터베이스다. 다양한 소재와 물성에 대한 데이터, AI 기술을 기반으로 정확한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다. 슈뢰딩거측은 전통적인 제약 회사가 매년 1000개 정도의 화합물을 합성할 수 있는데, 시뮬레이션 플랫폼은 매주 수십억개의 분자를 평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평가 속도 측면에서 시뮬레이션이 압도적이다. 

다쏘시스템⋅슈뢰딩거 만큼 역사가 길지 않지만 국내에도 소재 개발 시뮬레이션 플랫폼을 공급하는 회사가 있다. 2016년 설립한 버추얼랩은 자체 개발한 플랫폼  ‘머티리얼스 스퀘어(Materials Square)’를 국내외 소재 업계에 공급한다. 

머티리얼스 스퀘어의 강점은 다양한 데이터베이스 외에 클라우드 기반의 서비스라는 점이다. 기존 다쏘시스템⋅슈뢰딩거의 플랫폼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고, 공급사와 기간 단위의 계약을 맺어야 한다. 

실제 실험으로만 소재 개발을 하는 경우와 시뮬레이션을 활용할 경우 시간·인력·공간·비용 상의 차이. /자료=버추얼랩
실제 실험으로만 소재 개발을 하는 경우와 시뮬레이션을 활용할 경우 시간·인력·공간·비용 상의 차이. /자료=버추얼랩

머티리얼스 스퀘어는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이다 보니 별도의 소프트웨어 설치나 장기 계약이 필요치 않다. 원하는 시점에 시뮬레이션을 사용하는 만큼만 과금된다. 덕분에 스타트업 등 이제 막 소재 개발에 뛰어든 회사들도 비교적 손쉽게 시뮬레이션을 활용해 볼 수 있다.

버추얼랩측은 “P램(상전이메모리)용 저전력 스위칭을 위한 소재를 개발하던 국내 한 연구진은 머티리얼스 스퀘어를 통해 29개의 후보 물질을 단 4개로 압축했다”며 “6개월 정도로 예상되면 연구 기간이 시뮬레이션을 활용해 단 이틀만에 검증됐다”고 말했다. 

버추얼랩은 지난해 글로벌 벤처 투자사인 플러그앤플레이(Plug and Play, PnP)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에 선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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