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삼성 ‘반도체 비전 2030’의 첫 번째 걸림돌은
[칼럼] 삼성 ‘반도체 비전 2030’의 첫 번째 걸림돌은
  • 김주연 기자
  • 승인 2020.01.05 12: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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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몸에 두 머리, '공명조(共命鳥)'된 삼성 시스템반도체
ASIC·IP 등으로 내부 경쟁… 머리끼리 싸우다 몸통 잃는다

지난해 가을,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의 집무실이 발칵 뒤집혔다.

페이스북의 증강현실(AR) 글래스에 들어가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프로젝트에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와 시스템LSI 사업부가 각각 입찰하면서다. 

가장 낮은 가격을 써낸 시스템LSI 사업부가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데 성공했지만, 김 부회장은 크게 역정을 냈다. 각자도생(各自圖生)하랬더니 공명지조(共命之鳥)하고 있는 꼴이었기 때문이다. 

 

정은승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사장이 '삼성 파운드리 포럼 2019 코리아'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삼성전자
정은승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사장이 '삼성 파운드리 포럼 2019 코리아'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삼성전자

김 부회장은 지난 2017년 두 사업부의 분리 당시 각 사업부에게 각자도생을 요구했다. 시스템LSI 사업부에는 자사에 기대는 비중을 줄이라는 특명이, 파운드리 사업부에는 시스템LSI 사업부 없어도 살 수 있을 정도로 외부 고객사를 확보하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애초에 한 몸이었던 두 사업부는 서로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페이스북 사례에서 보듯, 두 사업부는 각자 전용 반도체(ASIC)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시스템LSI 사업부는 자체적으로 ASIC 서비스를 하고 있고, 파운드리 사업부는 삼성 파운드리 생태계(SAFE) 내 업체들과 ASIC 서비스를 진행 중이다.

시스템LSI 사업부 내에서는 순수(pure) 파운드리가 설계까지 하느냐는 불만이 있지만, 대만 TSMC가 생태계 내 ASIC 업체들과 대내외적으로 협력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파운드리 사업부의 전략이 틀린 것도 아니다. 

설계·공정자산(IP)도 작년까지 공동 소유였다. 시스템LSI 사업부는 파운드리 사업부를 통해 핵심 IP가 유출된다고 우려했다. 파운드리 사업부는 개발 단계부터 삼성의 IP는 자사 공정에 최적화됐는데, 이를 제공하지 않으면 누가 우리를 찾겠느냐 반문했다. 모두 맞는 얘기다.

유예 기간이 끝난 올해부터는 시스템LSI 사업부가 IP를 가지고, 핵심 IP를 제외한 나머지를 파운드리 사업부의 고객사에게 라이선스해주는 방향으로 얘기가 정리됐다. 하지만 ‘핵심 IP’의 범주를 놓고 둘은 또 옥신각신하고 있다.

지난해 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시스템반도체 1위’를 천명하면서 두 사업부의 경쟁 구도가 완연해졌다. 바로 옆 자리에서 일하던 게 엊그제인데 지금은 마주쳐도 겨우 인사만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두 사업부의 협력에 금이 가면서 다른 글로벌 고객사의 프로젝트에서도 문제가 터져나왔다. 

 

지난해 4월 30일 삼성전자 화성캠퍼스에서 열린 '시스템 반도체 비전 선포식'에서 문재인 대통령(가운데)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 첫번째) 등이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청와대

각자 살아남아야 했던 두 사업부는 서로 경쟁하는 상황에 놓였다. 시스템LSI 사업부가 양질의 IP를 개발해 공급하면 파운드리 사업부가 이를 무기로 다른 고객사들을 끌어오고, 파운드리 사업부가 다른 고객사를 통해 확보한 IP와 레퍼런스로 시스템LSI 사업부가 한층 성장하는 선순환 시나리오는 여전히 ‘시나리오’에 불과하다.

삼성 ‘반도체 비전 2030’의 첫 번째 걸림돌은 삼성전자 스스로다. 공명지조 속 공명조의 두 머리는 좋은 열매를 독차지하려다 죽었다. 두 사업부는 ‘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라는 한 몸을 가진 두 머리다. 서로 양보 없이 대립만 한다면 결국 죽는 건 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 사업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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