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운드리 분사하는 인텔, 자금 조달 과정에서 영향력 약화 불가피

겔싱어 CEO, 파운드리 자회사 장악력 유지 천명 지분율 낮춰야 파운드리 독립성 높아지는 '역설'

2024-09-17     KIPOST

최악의 부진을 겪고 있는 미국 CPU 제조사 인텔이 결국 파운드리 사업을 분사한다. 올해 초 파운드리 사업부 회계를 분리해 별도 재무 실적을 발표해왔는데, 이제는 아예 법인을 분리해 자회사로 두기로 했다. 

팻 겔싱어 인텔 CEO는 파운드리 자회사를 이사회를 통해 관리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장기적으로는 AMD가 글로벌파운드리를 매각한 것처럼 파운드리 사업에 대한 영향력이 줄어들 수 밖에 없을 전망이다. 

 

인텔, 파운드리 사업 분사 후 자회사화

 

16일(현지시간) 겔싱어 CEO는 직원들에게 보낸 메모에서 파운드리 사업부를 인텔 내 독립 자회사로 설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인텔 파운드리 부분을 자회사로 두면 독립적으로 외부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데다 독립성에 대한 고객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다”며 “각 사업의 재무구조 최적화로 성장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고 주주가치도 창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인텔의 파운드리 사업 분사는 앞서 CPU 설계⋅제조를 모두 관장하다 제조 부문을 매각한 AMD를 연상시킨다. AMD는 계속된 적자에 파산 위기에 몰리자 지난 2009년 팹 부문을 분사, 글로벌파운드리를 설립했다. 이후 지분율을 낮추다 2012년 마지막으로 남은 지분 14%를 매각하며 반도체 제조에서 완전히 손을 털었다. 

이후 AMD는 대만 TSMC 공정을 이용하며 제조에 대한 부담을 덜자 오히려 인텔의 시장점유율을 조금씩 가져오기 시작했다. 올해 2분기 노트북PC 시장에서 AMD 점유율은 20% 가까이로 높아졌으며, 서버 시장에서는 24.1%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10년전만 해도 AMD는 인텔에 밀려 각 점유율 5% 미만을 기록한데 그쳤다. 

다만 겔싱어 CEO는 파운드리 사업의 매각 가능성에 대해서는 일축했다. 그는 “파운드리 자회사는 독립 이사들을 포함한 운영 이사회를 설립해 관리할 것"이라며 “리더십은 변화 없다, 계속해서 저에게 보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파운드리 자회사에 대한 영향력 약화 불가피

 

겔싱어 CEO의 이 같은 다짐에도 반도체 업계가 인텔의 파운드리 사업에 대한 영향력이 낮아질 것으로 예상하는 건 향후 자금조달 과정에서 지분율 희석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당장은 인텔이 파운드리 자회사 지분 100%를 보유하겠지만, 선단공정에 천문학적 투자를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을 끌어모아야 한다. 

최근까지 최악의 부진을 겪은 인텔 자력으로는 자회사 팹 투자 자금을 부담하는 건 불가능하다. 겔싱어 CEO 스스로도 파운드리 사업 분사를 통해 독립적인 외부 자금 조달이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미국 경제매체 CNBC는 인텔이 파운드리 자회사를 별도 상장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는데, 현실화된다면 인텔의 자회사에 대한 지분율은 현저하게 낮아질 수도 있다. 

사실 파운드리 사업에 대한 지분율 약화는 겔싱어 CEO가 설명한 파운드리 독립성에 대한 고객 우려를 불식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TSMC⋅UMC⋅글로벌파운드리 등 이른바 ‘퓨어 플레이 파운드리(Pure Play Foundry)’와 달리 삼성전자⋅인텔의 파운드리는 고객사 기술 유출 우려가 늘 상존한다. 파운드리에 일감을 맡기려면 팹리스 설계 정보를 오픈할 수 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인텔의 설계 부문에 기술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인텔이 파운드리 사업을 분사후 대규모 투자를 받는 방식으로 지분율을 낮추면 사실상 퓨어 플레이 파운드리 처럼 운영될 수 있다. 파운드리 자회사에 대한 장악력과 파운드리 사업의 독립성이 양립할 수 없는 가치다. 

팻 겔싱어 인텔 CEO. /사진=인텔

한편 인텔은 폴란드와 독일에서 이뤄지고 있는 공장 건설도 일시 중지한다고 이날 밝혔다. 독일 마그데부르크에서 진행 중이던 300억 유로 규모의 프로젝트를 중단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인텔은 1.5nm(나노미터)급 공정을 도입해 독일을 인텔의 유럽 첨단 반도체 생산 거점으로 삼겠다는 계획을 내놨는데 1년 만에 이 같은 계획이 무산되는 것이다.

이밖에 폴란드 브로츠와프에서 진행 중이던 공장 투자도 약 2년 간 중단한다. 말레이시아 공장에 대한 계획도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 다만 애리조나⋅오레곤⋅오하이오 등 미국 내에 건설 중인 신규 반도체 생산 시설은 계획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이들 시설 대부분이 반도체법에 따라 보조금을 받기 때문이다.

사무실도 연내 3분의 2로 줄일 예정이다. 겔싱어 CEO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자본 효율성이 높지 않은 소규모팀을 정리하고 중앙 집중화의 과정을 거칠 것”이라며 “이는 더 간단하고 효율적이며 운영 속도가 더 빠른 인텔을 구축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