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배터리 업황은 언제 반전하느냐는 물음에 대해

배터리 산업에 태양광 그림자가 드리운다

2024-04-11     KIPOST
전남 고흥에 위치한 남정 수상 태양광 발전소 모습. /사진=LS전선

미리넷솔라를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2010년 전후 혜성처럼 등장한 이 회사는 한때 솔라셀 제조산업의 스타였다. 

“매일 아침 출근하면 회사 정문에 전국서 온 트럭들이 족히 수십미터 줄을 서고 대기했어요.” 전직 미리넷솔라 직원의 회고다. 일분일초라도 빨리 솔라셀을 가져가려는 고객사들이 자비를 들여 미리넷솔라 앞에 배송 트럭을 줄세웠다. 

미리넷솔라 뿐이랴. 당시 ‘환경경영' 바람을 타고 전 세계가 친환경 전력생산에 올인했다. 덕분에 폴리실리콘⋅솔라셀⋅모듈⋅인버터, 심지어 전극용 실버페이스트 회사까지 초호황을 만끽했다. 그러나 짜릿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솔라셀 산업 전반에 공급과잉이 초래되고 각국 정부 보조금도 축소되면서 이후 10년 이상 산업이 침체 일로다. 산이 높은 만큼 골도 깊었다. 2011년 8조원에 육박했던 OCI(당시 동양제철화학) 시가총액은 현재 2조원 아래로 추락했다. 매일 아침 배송트럭이 줄서던 미리넷솔라는 2013년 한 자동차 부품회사에 매각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최근 배터리 산업의 성쇄를 보면 솔라셀 산업이 꺾일때를 보는 것 같은 기시감이 든다. 배터리 산업의 급속한 성장 배경과 최근의 숨고르기 국면이 10여년 전 솔라셀 산업과 많이 닮았다. 

우선 두 산업 모두 ‘원자재 드리븐(원자재가 주도하는)’ 제조업이다. 태양광 산업이 폴리실리콘 확보 경쟁에 불을 지핀것처럼, 배터리 산업은 리튬 확보 경쟁을 촉발시켰다. 특정 산업이 원자재 의존도가 높다는 건, 바꿔말하면 생산 노하우를 통해 경쟁사와 차별화 할 여지는 그만큼 적다는 의미다. 

‘kWh/$(1$로 만들 수 있는 에너지 저장능력)’로 표현되는 배터리 스펙은 분자(kWh)를 키우는 것 못지 않게 분모($)를 줄이는 것도 효과적이다. 더 싸게 만들어야 유리하다. 분모를 줄이는 비결은 원자재 구매력이다. 전 세계 리튬 광산을 입도선매하고 정제 시설을 짓는데 우리나라 기업이 중국과 경쟁할 수 있나.

최종 고객에 보조금 유인이 필요하다는 점도 솔라셀 산업과 배터리 산업의 유사성이다. 솔라셀 산업이 잠깐이나마 폭발적으로 성장한 건 FIT(발전차액지원제도) 덕분이다. 원자력⋅화력 대비 발전단가가 비싼 태양광은 FIT를 더해야 수지타산이 맞았다. 동급 내연기관차 대비 1000만~2000만원 이상 비싼 전기차가 2년전 불티나게 팔렸던 것도 보조금 역할이 컸다. 보조금 측면에서도 우리가 중국과 상대가 되지 않는다.

안석현 콘텐츠 팀장(기자).

결정적으로 사업 초기부터 중국과의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는 점에서 태양광 산업과 배터리 산업은 거의 같은 궤도상에 있다. 우리나라가 주름잡은 첨단 제조업 중 중국과 경쟁해 버텨낸 건 반도체와 중소형 OLED 정도 뿐이다. 솔라셀⋅폴리실리콘⋅LED⋅LCD 등은 중국의 물량공세를 버텨내지 못했다. LCD처럼 ‘넘사벽' 격차를 갖고 있던 산업도 10여년만에 산업 전체를 중국에 빼앗겼다. 배터리는 경쟁을 해보기도 전에 CATL⋅BYD의 물량 공세에 역으로 압도당하고 있다. 

최근 만나는 사람마다 배터리 산업이 언제 다시 반등하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이는 핵심 질문이 아니다. 호황이 돌아왔을 때, 국내 기업들이 설 자리가 남아 있을 것이냐고 묻는 게 맞다. 이제는 태양광 산업에 볕이 든다고 해도 OCI 외에는 수혜 업체가 남지 않은 것처럼, 초장부터 중국과의 경쟁이 버거운 국내 배터리 업계는 진짜 위기를 맞고 있다. 

배터리는 장치 산업이고, 장치 산업은 속성상 승자독식이 익숙하다. 글로벌 단위 장치 산업에서 서너개 이상의 회사가 영업이익을 만들어내는 분야가 드물다. 3위 아래로는 다 적자다. D램⋅낸드플래시⋅OLED 등 우리나라 주력산업 대부분이 마찬가지다.

배터리 산업에 드리우는 태양광의 그림자가 기우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