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업계의 애플’로 꼽히는 미국 테슬라모터스(이하 테슬라)는 가장 중요한 배터리 전략에서 다른 완성차 업체와 크게 차이 난다. 기존 완성차 업체들이 주로 사용하는 각형 혹은 파우치형 배터리 대신, 유일하게 원통형 ‘18650’ 배터리를 차에 적용했다. 


자동차 업계서 보면 신생 회사에 불과한 테슬라가 18650 배터리 전략을 홀로 고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안전한 차를 위한 ‘밸런스’


18650 배터리는 지름 18mm, 길이 65mm의 원통형으로 생긴 규격이다. 가정용 탁상시계에 들어가는 기존 ‘AA’형 배터리와 유사하지만, 길이가 약간 더 길다. 원래 6~8개 정도의 18650 배터리를 하나로 묶어 노트북용 배터리팩으로 만든다.


테슬라는 왜 노트북에 쓰이던 18650 배터리를 자동차에 적용키로 했을까. 그 해답은 자동차의 밸런스(균형)에서 찾을 수 있다. 


테슬라 주력 모델인 ‘모델S’에는 약 7000개의 18650 배터리가 장착된다. 중요한 점은 배터리가 놓인 위치다. 7000개의 배터리를 지면과 수직으로 세워 빼곡하게 연결한 뒤, 차 바닥에 1개층으로 쌓아 놓았다. 이 때문에 모델S의 차 바닥은 그 자체가 배터리 시스템이다.


▲ 모델S 차 바닥에 있는 배터리 시스템을 분해한 모습. 벌집처럼 생긴 구멍 하나하나가 각각 18650 배터리를 세워 놓은 것이다. /자료:테슬라모터스클럽



이는 자동차의 전복사고 방지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차량 아래쪽에 자동차에서 가장 무거운 부품(배터리팩)이 고르게 깔린 덕분에 급격한 방향 전환에도 롤링(차가 좌우로 흔들리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무거운 추를 매달고 있는 오뚝이가 넘어지지 않고 재빨리 균형을 잡는 것과 비슷하다.  


배터리 구조는 최근 출시된 스포츠유틸리티차(SUV) ‘모델X’와 모델S에 앞서 선보인 ‘로드스터’ 역시 마찬가지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29일 모델X 출시 행사에서 “모델X는 역대 가장 안전한 SUV”라고 강조했는데, 이는 차 바닥에 깔린 배터리 덕분에 차량 전복 가능성이 크게 낮아졌기 때문이다.


이 같은 구조는 차의 코너링 성능 향상에도 유리하다. 차 앞뒤 특정 부위에 무게가 쏠려 있지 않기 때문에 오버⋅언더스티어 현상을 방지할 수 있다. 오버⋅언더스티어는 코너를 돌 때 차량 앞쪽 혹은 뒤쪽으로 원심력이 집중되면서 핸들 각도보다 차량이 더 크거나 작게 선회하는 현상이다. 


이 때문에 벤츠⋅BMW⋅아우디 등 독일 고급차 3사는 휠베이스(앞뒤 바퀴 사이의 거리) 정중앙을 기준으로 앞뒤 무게 배분을 정확히 50대 50으로 나눌 정도다. 


버려지던 공간인 차 바닥에 배터리를 깔면서 다른 공간 활용도는 높아진다. 모델X는 7인승 SUV다. 종전에도 7인승 SUV는 있었지만, 마지막 3열에 사람이 앉기 위해서는 짐을 실을 트렁크 공간을 포기해야 한다. 모델X는 차량 앞쪽에 엔진이나 배터리가 없기 때문에 이 공간을 트렁크로 쓴다. 7명이 타고 짐도 실을 수 있는 유일한 SUV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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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파나소닉이 테슬라에 공급 중인 18650 배터리. /자료: 파나소닉

 

각형⋅파우치형 배터리의 경우 에너지 밀도 측면에서는 원통형보다 유리하지만, 부피와 구조상 차 바닥에 깔 수는 없다. 대부분 차량 뒤쪽 트렁크 공간을 할애해 배터리 시스템을 쌓아 올린다. 원통형과 비교하면 무게 중심이 높고 뒤쪽으로 쏠려 있어 주행시 안정감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18650 배터리 확산될까⋯아우디⋅벤츠도 검토


이 같은 장점 덕분에 각형⋅파우치형 배터리 사이에서 고민하던 다른 자동차 회사들도 18650 배터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테슬라 이외에 18650 배터리 탑재가 가장 유력시 되는 자동차 브랜드가 독일 아우디다. 아우디는 최고급 스포츠카 모델인 ‘R8’ 전기차 모델에 18650 배터리 적용을 검토 중이다. 


Audi R8 e-tron

▲아우디는 이르면 내년쯤 R8 전기차 모델을 선보인다. R8 전기차에는 테슬라가 모델S에 적용한 원통형 전지가 장착될 전망이다. /자료:아우디


R8은 가솔린 모델 가격이 약 2억3000만원에 달하는 수퍼카다. 차의 고른 무게 배분을 위한 특이하게도 가솔린 엔진을 운전석 뒤에 얹어 놓았는데, 이 같은 균형감을 전기차 모델에도 구현하기 위해서는 18650 배터리가 제격이라고 판단했다. 


이외에도 독일 메르세데스-벤츠 역시 최고급 세단 ‘S클래스’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모델에 원통형 배터리를 적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차에 원통형 배터리 적용이 늘어나는 추세는 삼성SDI나 LG화학으로서도 환영할만한 일이다. 원통형을 포함한 소형 배터리 분야서 삼성SDI⋅LG화학이 사실상 독주 체제를 굳히면서 일본⋅중국의 추격을 확실하게 따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B3에 따르면 지난해 소형 배터리 분야서 한국 업체 점유율은 44.4%로, 일본(25.7%), 중국(24.3%)를 뿌리친 상태다.


2011년을 정점으로 수요가 줄고 있는 원통형 전지 생산능력을 전기차 분야에 재활용할 수 있는 점도 장점이다. 


Over Supply

▲원통형 배터리 수요-공급 추이. /자료: batteryuniversity.com


삼성SDI의 원통형 배터리 생산능력은 지난해 연말 기준으로 월 5600만개, 올들어 증설을 통해 월 6900만개 수준까지 늘릴 예정이다.


원통형 전지가 주로 쓰이는 노트북 시장에 그동안 큰 수요 증가가 없었다는 점에서 이는 테슬라 전기차용 배터리 공급을 위한 증설로 추정된다.


LG화학 역시 지난해 연말 기준 4100만개 수준이었던 원통형 배터리 생산 능력을 올 연말까지 4700개로 늘릴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테슬라가 원통형 배터리를 이용해 성공적으로 전기차를 생산하면서 각형⋅파우치형으로 양분된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 3파전이 형성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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