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글로벌 기업을 만들지 못하면 도태되는 시대입니다. 특히 대한민국 주력 제조업은 전 세계적인 공급망과 수요처를 활용해 성장해 왔습니다. 과거에도 전 세계를 누비는 기업인들이 있었습니다. 해상, 육로를 통해 물품을 나르던 실크로드 무역상들입니다. 김정웅 서플러스글로벌 대표가 이들의 발자취를 찾아 떠났습니다. 전세계 반도체 중고장비 1위 업체 사장이 실크로드 상인들로부터 받은 영감을 통찰력 있게 풀어냈습니다.

‘실크로드’는 19세기 독일사람이 만든 지엽적인 개념이다. 현재는 이를 마땅히 대체할 만한 단어가 없는 것 같다. 굳이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중앙유라시아 네트워크’라고 해야 할까.

실크로드를 처음으로 접한 것은 초등학교 저학년때다. 서유기에 나오는 삼장법사 가 불경을 얻으러 서역으로 떠난다는 얘기가 나왔다. 삼장법사는 7세기에 실존했던 현장이라는 승려가 모델이다.

고대 중국인들도 서역에 판타지를 가졌다고 하는데, 세계사도 배우지 않았던 그 시절 나도 서역에 대해 막연한 환상을 품게 됐다. 중학교 2학년 즈음 ‘징기스칸’이라는 팝송이 큰 히트를 쳐 이 노래를 흥얼거리고 다녔는데,  갑자기 정부에서 고려를 침략한 몽골의 영웅을 우상화하는 노래는 부르면 안 된다고 금지시켰던 기억도 있다.  

막 직장생활을 시작한 무렵인 1991년 구(舊) 소련이 해체되면서 흔히들 ‘스탄들’이라고 부르는 중앙아시아 5개국이 독립했다. 이후 중국 신장 위구르족의 분리운동 소식을 간간이 듣는 정도다.

사회생활 26년간 무역일을 하면서 수십개 국가, 수백만 마일을 여행했지만 유독 실크로드 유라시아 국가와는 일거리가 별로 없었다. 한국과 유라시아 국가간 교역이 크지 않았던 게 그 이유였을 것이다.

지난 16세기까지 문명교류의 중심이었지만 대항해시대가 열리면서 해상무역이 활성화 되자 그 지위를 잃어갔다. 21세기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분쟁이 많은, 낙후된 곳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런데 왜 지구의 오지로 변해버린 실크로드를 다시 주목 하는가.

한국전쟁 이후 지난 60년간 우리는 압축적으로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를 이룩하며 큰 성취를 이뤘다. 하지만 엄청난 내재적 모순과 갈등도 같이 쌓았다.  재벌 중심 경제 구조에 대한 피로감 때문에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한국인이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이 ‘노마드(유목민) 정신’의 부활이라 생각한다.  

최근에는 디지털이 중요해지면서 ‘디지털노마드’라는 표현도 자주 쓰인다. 인터넷, 모바일 중심으로 사는 요즘의 생활방식을 수식하는 적절한 표현이다.

 

한국 묘목기업에서 근무하는 우즈베키스탄 직원.(일명 '밭 갈고 있는 김태희')

과거 유목민은 가축을 키우려고 물과 풀을 찾아 옮겨다녔지만 요즘 우리는 디지털 기기를 들고 시공의 제한을 넘어 소통하고 살아간다.

유목민의 삶은 푸르른 초원에서 여유롭게 말들에게 풀을 뜯게 하는 풍경처럼 낭만적이지는 않다. 가뭄과 혹한을 이겨내야 하고 끊임 없이 목초지를 찾아 가족과 가축을 데리고 이동해야 하는 치열한 생존의 과정이다. 두루두루 정보를 수집해 생사를 걸고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유연한 사고방식과 열린 의사소통 의지, 기마술 같은 개인기도 쌓아야 한다.

한번 목초지를 잘못 선택하면, 부족민과 가족이 아사할 수도 있고, 주위 부족과 싸워야 할지 협력해야 할지를 목숨을 걸고 결정해야 할 때도 있다.

그들로부터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를 배울 수 있다.

16년전 서플러스글로벌을 설립했을 때는 경영에 문외한이라 미국 경영학 도서나 성공심리학 등 자기계발서를 열심히 읽었다.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한국적 풍토와는 뭔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징기스칸, 유목민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는 회사의 철학과 경영에 도움이 될만한 것들을 찾을 수 있어 경영현장에 반영해왔다. 계속해서 유목정신을 우리 회사에 내재화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실크로드를 연구하면서 보다 균형잡힌, 보편적 세계관을 가질 수 있다.  조선 말기 조상들은 '소중화'라는 사대주의 사상에 물들어 이미 망해버린 명을 숭상하면서 거란, 여진, 몽고를 오랑캐라고 폄하했다. 일제시대에는 식민사관에 세뇌됐고 한국전쟁 이후에는 영미 제국주의가 만든 세계사의 틀을 비판없이 수용했다.

빗살무늬 토기나 비파형 청동검 분포를 보면 고대 한반도는 중국 같은 농경문화보다는 시베리아 스텝지대 몽골리아드 유목문화권에 가깝다고 한다. 사마르칸트에서 유골을 가져다 중앙대에서 분석을 해봤더니 고대 한반도인과 놀랍도록 유사한 DNA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요즘 바이칼호 주변에 주로 거주하는 브리야트족도 우리와 DNA 구조가 아주 비슷하다고 한다. 브리야트족은 징기스칸의 후예를 자처하는 민족이다.

 

빗살무늬토기 분포도.

 

빗살무늬토기 문화권 분포도는 지금의 시베리아 횡단철도 TSR 노선과 거의 일치하는데, 이는 우연이 아니라고 본다. 발해의 담비를 수출하던 담비길, 러시아의 동진을 만들어줬던 모피길도 궤적이 비슷하다. 유라시아를 하나로 잇는 초원실크로드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보여진다.

중앙유라시아국가는 경제적으로 부활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7·8년 전에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000달러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2000달러에 육박한다.  

러시아의 시베리아 횡단 철도. 빗살무늬토기 분포도와 유사하다.

중국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은 아시아·유럽·아프리카를 육상·해상 실크로드로 엮는다는 내용이다. 아직  시작 단계지만 파급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8월에는 칭다오에서 출발한 컨테이너 100개가 TCR과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거쳐 프랑스 노트르담에 도착했다는 외신이 나왔다. 오는 2018년에는 중국에서 출발해  중앙아시아를 거쳐 이스탄불까지 가는 철의 실크로드도 개통된다.

유목사회는 기록이 별로 남아있지 않아 실크로드를 알기 위해서는 중국 같은 정주사회의 기록에 의지해야 하는 등 한계가 있다. 한국에는 한때 ‘무함마드 깐수’라는 이름으로 간첩활동을 하다 전향한 정수일 선생이 역작을 많이 남겨 이번 여행에 큰 도움이 됐다.

여행은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에서 시작해 사마르칸트, 부하라, 히바, 우르겐치를 거쳐 다시 타슈켄트로 돌아오는 8일 여정이다. 총 1200Km를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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