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의 ‘굴기’에 제동을 걸었다. 



무역 제재에 이어 미국 기술력의 상징인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도 업계와 반도체 연구개발(R&D)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에 막대한 투자를 쏟아붓고 있는 중국과 첨단 기술 시대를 이끌어온 미국 중 미래 시대 승자는 누가 될까. 그리고 그 사이에서 한국은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까.



미 DARPA, 반도체 R&D 프로젝트 잇따라 가동



DARPA는 연간 수십억 달러의 예산이 투입되는 미 국방부 소속 R&D 기관이다. 기초 연구를 해온 학계와 산업계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한다. 인터넷, 라이다(RADAR)는 물론 구글의 자율주행차와 애플의 AI 비서 ‘시리(Siri)’도 DARPA에서 시작했다.


이 DARPA가 최근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분야는 반도체다. 


▲DARPA는 내부 마이크로시스템기술실(MTO)에서만 반도체 R&D를 하다 지난 2016년 산·학 컨소시엄 ‘JUMP(Joint University Microelectronics Programme)’와의 공동 R&D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올해만 총 2억달러 이상이 투자됐다./DARPA


DARPA는 지난해 산·학·연 차세대 반도체 R&D 프로그램 ‘ERI(Electronics Resurgence Initiative)’를 발표했다. 미국의 반도체 산업을 부활(Resurgence)하기 위해 마련된 프로그램이다.


ERI 프로그램은 반도체 설계자동화(EDA) 등 설계 도구, 신소재, 시스템 설계구조(architecture) 등 3개 분야의 총 6개 프로젝트로 구성됐다. 


▲ERI 프로그램은 총 6가지 프로젝트로 구성됐다. DARPA는 투자만 한다./DARPA


구공정 생산시설(Fab)에서 생산한 반도체를 3차원(3D)으로 집적해 최신 7나노 반도체 이상의 성능을 내는 제품을 만드는 과제(3DSoC)나 인공지능(AI) 반도체용  임베디드 비휘발성 메모리(FRANC) 등이 포함됐다.


투자액은 5년간 총 15억달러(약 1조6793억원), 프로그램 당 평균 5000만달러다.  대다수의 다른 프로그램의 1년 예산은 4000만 달러를 넘지 않는다. 미 국방부는 이 예산을 22억달러(약 2조4611억원)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다른 과제와 달리 상용화 목표 시기도 특정했다. 2025~2030년 사이로, R&D 기간이 끝나면 곧장 상용화 작업에 착수하겠다는 계획이다. 


수행 업체는 인텔,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 퀄컴, IBM, 시높시스 등 이름만 대면 알법한 대기업으로, 해당 과제를 실제 자체 로드맵에 포함시켰다. 기업들도 그만큼 상용화 의지가 강하다는 얘기다.



중국, 차세대 기술 확보 총력



미국이 이처럼 중국에 날을 세우는 이유는 중국의 기술력이 미국도 무시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높아졌기 때문이다. ‘무어의 법칙’이 더이상 통하지 않을 정도로 기술 발전 속도가 느려진 상황에서 중국의 추격은 위협적이다.


특히 중국은 AI 분야에서 미국을 바짝 따라오고 있다. 순차적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현재의 폰-노이만 컴퓨팅 구조와 달리, AI는 여러 연산을 한 번에 수행해야한다. 


급성장한 자국 반도체 설계 역량과 AI를 접목하면, 중앙처리장치(CPU)로 미국이 장악해온 시스템반도체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다. (참고 ▶인공지능(AI) 시대, 프로세서 시장 지형 바뀔까)


▲본사 위치에 따른 팹리스 업체 매출 점유율. 미국의 점유율은 16%p 하락했지만, 중국의 점유율은 6%p 상승했다. 세계 팹리스 업계 상위 50개사 안에 든 업체는 지난 2009년 하이실리콘 1개사에서 지난해 10개사로 증가했다./IC인사이츠


중국은 지난해 ‘차세대 인공지능 발전 규획’을 발표하고, 2030년까지 전 세계 AI 기술을 선도하겠다고 했다. 


기초 연구에 집중해 온 미국과 달리 상업·군사적 목적이다. AI 핵심 시장은 1500억 위안(약 24조원), 유관 시장은 1조 위안(약 163조원) 규모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등 현지 IT 대기업도 대거 동참했다.  이들은 미국 현지에 AI 연구실을 세우고, 핵심 인재를 영입하며 기술력을 높이고 있다. 중국도 AI 스타트업 설립이나 인재 영입에 적극적이다. 


연구 환경도 좋다. AI의 핵심은 빅데이터다. 빅데이터는 AI 알고리즘의 재료가 된다. 중국은 땅도 넓고 인구도 많아 그 자체로 빅데이터를 모으기 쉽고, 개인정보보호 등 관련 규제도 적다. 


2000년대 초부터 육성해온 IT 인재 풀(Pool)이 있어 인력 확보도 용이하다. AI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도 줄을 잇는다.


중국의 노력은 결실을 맺고 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에 따르면 지난 2012~2016년 주요 국제 학술지 실린 AI 논문 20만5000여편의 저자를 국적별로 나누면 중국이 1위(4만8000여편)로, 미국보다 1만 편 이상 많았다.


지난해 10월 말 중국 IT 제조사 중커수광(中科曙光)은 캠브리콘(Cambricon)과 함께 중국산 AI 서버를 최초 개발했다. 바이두, 알리바바 등 대기업들도 자체 AI 칩을 만들고 있다. 



G2 경쟁에서 한국은?



한국은 AI를 연구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다. 관련 인재도 드물고, 데이터의 양도 턱없이 작다. 


현실적으로는 강점이 있는 AI용 메모리와 반도체 제조 산업을 육성해야한다.


차세대 메모리가 개발되고 있지만 신뢰성 확보가 어렵고, 생산성이나 성능을 감안하면 기존 D램이나 낸드를 대체하기는 힘들다. 인텔의 상변화메모리(PRAM) ‘3D 크로스포인트(Xpoint)’도 별다른 실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고성능·저전력 반도체 제조 기술도 필요하다. 삼성전자는 핀펫(FinFET) 구조로 시스템 반도체 제조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새로운 트랜지스터 구조가 탄생하는 3나노 시대에도 승자가 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주문형반도체(ASIC) 산업도 키워야한다. AI 반도체는 각 사의 알고리즘에 따라 다르게 개발해야하는데, 설계자산(IP) 등의 역량이 부족해 반도체 외주생산(Foundry) 업계의 힘을 빌리는 경우가 많다. 현재 AI 반도체 ASIC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내 팹리스는 넥셀(대표 강태원)뿐이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이 이를 내재화하는 방향으로 R&D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된다. 장기적으로 이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중국이 반도체 R&D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현재의 반도체 기술이 벽에 부딪혔기 때문”이라며 “이를 뛰어넘을 수 있는 혁신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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