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를 설계하고 생산하는 종합반도체회사(IDM), 외주생산(파운드리), 외주후공정(OSAT)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누가 주도권을 잡고 살아남을 수 있는가가 업계의 큰 숙제가 됐다. 

 

지난달 30일 국내 손꼽히는 반도체 패키지 전문가인 김구성 강남대 교수와 만나 앞으로의 패키지 산업 전망을 들어봤다. 

 

 

김구성 강남대 교수.


김 교수는 패키지 산업이 두 갈래로 움직일 것으로 전망했다. 메모리ㆍ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같은 대량 생산 제품은 힘 있는 기업이 잠식하고, 다품종 또는 저가형 패키지 분야는 OSAT 기업 중 중국 등지의 가격 경쟁력 있는 업체들이 남을 것이라고 봤다. 

 

그는 "완제품 업계에서 시작된 헤게모니 싸움이 OSAT, 모듈, 부품 시장까지 순차적으로 여파를 미쳐 판도가 변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나 애플 등 완제품 업체들은 되도록 많은 기능을 칩 하나로 구현하고자 한다. 시스템온칩(Soc)과 시스템인패키지(SIP)를 접목하고, 수동소자 역시 패키지 내에 통합해 하나의 모듈로 만드는 게 궁극적인 목표다. 

 

이를 위해 반도체 업계는 칩 선폭과 다이 면적을 줄이다 이제는 패키지 영역까지 진출하고 있다. OSAT는 반도체 업계에 뺏긴 사업을 만회하고자 모듈까지 손을 대는 추세다. 모듈 업계는 이 난관을 타개할 또 다른 방법을 찾고 있다. 삼성전기가 별도 OSAT를 배제하고 삼성전자와 직거래 하는 게 한 예다. 

 

삼성전자는 고사양 칩 후공정을 직접 해왔지만, TSMC는 아예 이 시장에 새롭게 진출하면서 OSAT를 위협하고 있다. PCB용 장비가 대응하기 힘든 5마이크로미터(㎛) 이하 기판 패터닝을 위해 아예 후공정을 자사 웨이퍼 공정으로 편입시켰다.

 

문제는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의 후공정 외주 물량이 줄어들면 후방 산업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해 "차별화된 아이디어와 기술을 보여주는 기업, 각자의 기존 분야가 아니라 경계를 허물 수 있는 업체가 살아남지 않겠나"라며 "이를 위한 합종연횡이 활발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중국은 이미 패널 컨소시엄을 마련, 업계가 공동 대응하려고 한다"며 "한국도 후방 장비ㆍ재료 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단순히 가격 외에 고부가가치를 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웨이퍼레벨패키지(WLP), 패널레벨패키지(PLP) 등이 기존 패키지 시장을 얼마나 위협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30년 전에 개발된 플립칩 패키지가 여전히 대세를 이루고, 고전력 반도체는 여전히 두꺼운 리드를 패키지에 쓰고 있다. WLP, PLP가 생산성을 높여주긴 하지만 웨이퍼나 패널 한 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칩 개수가 너무 많아 공장 가동률은 떨어질 수 있다. 투자ㆍ공정 운영비용을 저울질 해봤을 때 AP, 모뎀(베이스밴드), 메모리 등 억단위 물량이 아니라면 오히려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새로운 패키지가 '그들만의 리그'가 될지 주력으로 떠오를지는 아직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힘들다. 예상보다 수요가 적다면 그야말로 '찻잔 속의 태풍'으로 남을 가능성도 있다.

 

김 교수는 "어쨌든 변화의 시기에 니치마켓 등에서 새로운 수익 창출 기회를 엿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구성 교수는 삼성전자에서 반도체 패키지 관련 현장 경험을 쌓은 뒤 학계로 옮겼다. 한국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가 운영하는 '반도체 패키징 기술교육' 위원장으로 10년째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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