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에 이어 전세계가 반도체 산업 유치 경쟁 사활 걸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미국에 이어 유럽도 방대한 지원 예산을 투입해 역내 반도체 산업(생산) 기반 확충에 팔을 걷고 나섰다. 반도체 칩 없이는 디지털 전환도, 녹색 전환도, 기술 리더십도 없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된 움직임으로, 마치 전세계가 반도체 패권 전쟁에 돌입한 분위기이다. 

지난 8일(현지시간) AFP,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유럽연합(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EC)는 유럽에서 반도체 공급(생산능력)을 대폭 늘리기 위한 방안으로 ‘EU 반도체법(EU Chips Act)’을 제안했다. 세계적인 반도체 공급 부족에 대응하고 미국과 아시아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제시한 결과물이다. EU 집행위는 이 법을 통해 현재 9% 수준인 유럽 반도체 생산 점유율을 오는 2030년까지 20%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EU는 430억 유로(약 59조원) 이상의 지원 예산을 투입해 공공·민간 투자를 동원할 계획이다. 기존 EU 예산에 추가로 150억 유로(약 20조5000억원)의 투자를 추가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법은 EU 회원국과 유럽의회의 승인을 거쳐 적용된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공급망의 취약성을 고통스럽게 드러냈다”며 “수요가 늘었지만 반도체 부족으로 시장이 원하는 만큼 제품을 공급할 수 없었다. 생산라인이 멈추면서 공장 일부는 일시적으로 문을 닫아야 했고, 노동자들은 실직 상태로 남겨졌다”고 이번 제안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반도체 칩은 국제 기술 경쟁의 중심”이라며 “법안에 담긴 목표는 국제적 수요 급증을 고려했을 때 우리가 기존에 해오던 것보다 4배 더 노력하겠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이번 법안이 EU 역내 세계적 수준의 연구‧설계‧시험 능력을 연결하고 EU와 개별 회원국의 투자를 조율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펜데믹 이후 반도체 공급난이 지속되면서 EU 내부에서는 지역내 기술 주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위기감이 강해졌다. 현재 반도체 생산은 주로 아시아와 미국 등에서 이뤄지고 있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반도체는 글로벌 기술 경쟁의 핵심이자 현대 경제의 기반”이라며 “지금 조처하지 않으면 반도체 시설은 유럽에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티에리 브르통 내부 시장 담당 EU 집행위원도 “이제 반도체 칩 없이는 디지털 전환도, 녹색 전환도, 기술 리더십도 없다”면서 “최신 반도체 칩 공급 확보는 경제적, 지정학적 우선순위가 됐다”라고 강조했다.

실제 EU에는 NXP, 인피니언, ST마이크로 등 세계적인 차량용·전력 반도체 업체들이 포진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생산 시설은 부족하다. 이로 인해 지난해부터 이어진 반도체 공급망 차질의 직격탄을 맞았고, 그 여파는 전자와 자동차 등 제조업 전반에 고스란히 미쳤다.

이번에 EU가 반도체법을 통해 내놓은 430억 유로의 예산은 최근 미국이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추진 중인 ‘미국 경쟁법(America COMPETES Act)’에 포함된 반도체 지원금액 520억 달러(약 62조원)와 유사한 수준이라는 설명이다. 미국과 대등한 규모의 자금 투입을 선언함으로써 사실상 세계적인 반도체 유치 경쟁전에 본격 가세한 셈이다.

앞서 미 상원은 지난해 6월 중국 견제 등의 목적으로 반도체 산업 육성에 520억달러를 투입하는 내용의 ‘미국혁신경쟁법안(USICA·U.S. Innovation and Competition Act)’을 통과시켰다. 이어 이달초 미 하원을 통과한 미국경쟁법안은 상원으로 송부돼 미국혁신경쟁법안과의 협의 조정 과정을 거쳐 이르면 조만간 최종 통과될 전망이다.

전미반도체협회(SIA)는 520억달러 규모의 반도체 지원 프로그램이 가동되면 향후 10년 동안 미국 내 19개의 생산시설이 세워지고, 신규 글로벌 생산역량의 24%를 미국이 포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렇게 되면 국제 반도체 생산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10%에서 13∼14%로 늘어나게 된다.

이에 따라 주요 반도체 기업들은 이같은 각국 정부의 투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미 인텔은 지난해 9월 110조원을 투자해 유럽에 반도체 공장을 2개 세우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인텔의 신공장은 유럽 자동차 기업들에 공급하려는 차량용 반도체를 주로 생산할 전망이다. 이탈리아와도 최대 80억유로(약 10조7652억원) 규모의 첨단 반도체 패키징 공장 건설을 위한 투자를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는 반도체 분야 지원을 위해 올해 7700억엔(약 8조원)대 추경예산을 편성했으며,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TSMC가 정부 지원금을 받아 구마모토현에 파운드리 공장을 설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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