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사업팀 신설 5년, 성과 미미
협력 관계 통해 검증된 업체 선호
다품종 소량생산에 대한 이해도 낮아

자동차 전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체제가 주도한 첫 신사업이다. 지난 2014년 이건희 회장 입원 직후 경영 전면에 나선 이재용 부회장은 처음부터 전장사업에 힘을 실었다. 이듬해 경영지원실 직속으로 전장사업팀을 꾸리고, 2018년 10조원을 들여 하만을 인수했다. 

그러나 만 5년 이상이 흐른 지금도 글로벌 전장 산업에서 삼성전자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삼성전자가 전장사업 전열 재정비에 나선 이유다. 삼성전자는 전장사업팀 수장과 하만 전장 부문장을 교체한 데 이어, DS부문 직속 부품플랫폼사업팀을 해체했다. 

삼성전자 서초사옥./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 서초사옥./사진=삼성전자

전장사업 신설 5년, 성과 미미

삼성전자 전장사업팀은 경영지원실 직속 조직으로 2015년 12월 신설됐다. 

전장사업팀은 연구·개발을 담당하며, 제품 생산⋅판매는 자회사인 하만에서 담당한다. 주요 사업영역은 차량용 반도체, 차량 통신장비, 내비게이션 등 인포테인먼트, 기기 및 차량용 카메라, 전기차 구동부품, 커넥티비티 운영체제 등이다. 

올 초 삼성전자는 전장사업 전열 재정비에 나섰다. 우선 전장사업 수장을 교체했다. 박종환 부사장이 이끌던 전장사업팀장에 이승욱 사업지원TF 부사장을 선임했다. 자회사 하만 역시 전장 부문 부문장을 자동차부품업체 보쉬 CEO(최고경영자) 출신 크리스천 소봇카로 교체했다.

DS(디바이스 솔루션)부문 전장사업도 개편됐다. 가장 큰 변화는 부품플랫폼사업팀을 해체한 것이다. 전장사업팀이 하만 등 계열사와 솔루션을 개발한다면 부품플랫폼사업팀은 차량용 프로세서 개발에 주력해왔다. DS 부문 독립 사업팀으로, 전장용 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 및 메모리 기술 마케팅을 위해 2017년 신설됐다. 지난해에는 퀄컴 본사 부사장 출신 이태원 전무를 영입한 바 있다. 

시스템LSI내 A-프로젝트팀 역시 해체됐다. 2018년 연말 설립된 A-프로젝트팀은 차량용 프로세서 브랜드 ‘엑시노스 오토’와 이미지센서 브랜드 ‘아이소셀 오토’ 등 전장 담당 설계를 맡았다.

삼성의 엑시노스 오토 V9 제품군으로 구동되는 차량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삼성전자 홈페이지
삼성의 엑시노스 오토 V9 제품군으로 구동되는 차량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사진=삼성전자 홈페이지

삼성전자는 이들 사업부를 해체하는 대신 시스템LSI 내 커스텀SoC(시스템온칩) 사업부를 신설했다. 파운드리 사업부 산하 파운드리ASIC팀을 맡았던 박진표, 박봉일 상무와 팀원들도 시스템LSI 사업부로 자리를 옮겼다. 이태원 전무 역시 커스텀 SoC사업 수장으로 이동했다. 커스텀 SoC는 맞춤형 통합칩 전담 조직이다. 자율주행차용 반도체뿐 아니라 대형 IT기업들도 겨냥한다. 삼성전자가 직접 반도체 설계에 참여해 설계부터 생산까지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한 반도체 후공정 업체 임원은 "과거 부품플랫폼사업팀의 경우 AP만 공급했다면 이제는 솔루션을 공급하고자 하는 것"이라며 "테슬라의 자율주행 모듈을 통째로 만들어주기를 원하는 것이 티어1(Tier1)의 요구라면 그들이 원하는 기능을 시스템온칩으로 설계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왜 전장사업 전열을 재정비했을까.

전장사업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체제 첫 신사업이었다. 전장사업팀 신설 당시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직속으로 활동하게 한 것은 삼성전자가 전장사업에 힘을 쏟고자 한 의지를 보여줬다. 그러나 전장사업팀 신설 5년이 지나도록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독일 아우디에 엑시노스 오토 8890를 제외하면 글로벌 양산차에 차량용 반도체를 공급한 실적이 없다. 엑시노스 오토는 아우디 2019년형 A4 모델에 탑재를 시작으로 본격 양산 기대감을 높였지만 지난해 자사 ‘디지털 콕핏’ 탑재 이후 양산 소식이 없었다. 

삼성전자의 자동차 인포테인먼트용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엑시노스 오토 V9'./삼성전자
삼성전자의 자동차 인포테인먼트용 AP '엑시노스 오토 V9'./사진=삼성전자

업계는 전장사업의 높은 진입장벽을 원인으로 분석한다. 

안전과 직결되는 자동차 업계는 신뢰성을 중시한다. 기존 협력관계를 통해 오랜 기간 검증된 업체를 선호하며, 신생 업체에 배타적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보수적인 자동차 업계 특성상 다른 조직이 들어오게 되면 진입장벽이 높다"며 "시장 진입이 늦었던 삼성 전장사업은 그런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차 반도체는 영하⋅고온 등 날씨 변화, 악조건의 자연 환경 속에서도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통상 자동차 제조 때부터 탑재되는 빌트인 형태의 반도체는 영하 40도에서 영상 70도의 온도에 견뎌야 한다. 최소 7~8년간 유지되는 내구성도 필수다. 이에 전장사업은 자동차 회사와 차량용 반도체 업체 간 신뢰를 바탕으로 일종의 연합이 형성돼 있다. 전장 부품 업체 관계자는 “사람 목숨이 걸려있는 전장 부품은 쉽게 협력사를 바꾸지 않으려고 한다"며 "삼성전자라 해도 기존에 구축된 협력관계를 뚫고 진입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장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던 것 역시 원인으로 분석된다. 차 반도체는 기본적으로 다품종 소량생산이다. OEM(완성차 업체)의 요구를 반영해 칩을 일일이 맞춤형으로 공급해 줘야 한다. 반면 삼성전자는 소품종 대량생산에 익숙하다. 메모리나 AP 등은 개발 주기도 짧고 수천만개 단위로 생산된다. 한 팹리스 업체 대표는 “차량용 반도체는 종류도 많고 업체 차종마다 각각의 요구사항에 맞게 맞춤형으로 만들어줘야 한다는 특수성이 있다”며 “삼성은 소품종 다량 생산에 강점이 있는 기업이기에 전장사업 자체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인수합병 통해 시장진입 모색

삼성전자가 자동차용 반도체 업체를 인수할 것이라는 추측성 보도가 지속적으로 나오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장기간 검증을 통해 신뢰를 요구하는 자동차 업계 특성을 감안하면 기존 업체를 인수하는 게 시장 선점에 유리하다.

M&A 후보군으로는 네덜란드 NXP, 미국 TI(텍사스인스트루먼트), 스위스 ST마이크로(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이 거론된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차량용 반도체시장 1위 업체는 일본의 르네사스 일렉트로닉스로 10.2%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이어 독일의 인피니언 테크놀로지(10.1%), NXP (8.3%)로 3강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TI(6.9%), ST마이크로(6.9%), 보쉬(4.7%)가 그 뒤를 잇는다. 

NXP 'S32K' MCU 신제품군이 적용되는 자동차 기능 예시.
NXP 'S32K' MCU 신제품군이 적용되는 자동차 기능 예시./사진=NXP

후보군 중에서는 NXP 인수 시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점쳐진다. NXP는 차량용 AP, 인포테인먼트, MCU(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 등에서 기술역량이 뛰어나다. 업계는 차량용 AP 엑시노스 오토를 직접 만드는 삼성전자는 이미 경험이 풍부한한 NXP 인수 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요소가 많을 것으로 전망한다. 

NXP가 미국 텍사스와 애리조나주에 생산공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NXP의 인수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에 힘을 보탠다. 한 자동차 업체 관계자는 "NXP가 미국에 공장이 있는 만큼 NXP 인수시 국내 차 반도체 내재화 요구와 동시에 바이든의 요구도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삼성전자가 미국에 투자압박을 받고 있는 만큼 NXP 인수시 미국의 요구도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효율과 수익을 동시에 만족시키면서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전략을 모색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DS부문은 고성능 연산이 필요한 칩 개발에 집중하고, 동시에 인수합병을 통해 시장 선점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NXP 인수를 결정한다 해도 최종적으로 인수·합병이 성사되기까지는 쉽지 않다. 각국 규제당국의 반독점 심사를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참고 KIPOST 2021년 4월 3일자 (<또 미국 반도체 빅딜 막아선 중국...엔비디아-ARM 인수도 반대 관측>) 2016년 퀄컴은 NXP를 인수하기로 결정했지만 중국 정부 승인을 넘지 못해 인수가 무산된 바 있다. 퀄컴은 인수 계약 파기로 NXP에 20억달러를 물어주게 됐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과거 퀄컴 역시 반독점법 난관에 부딪혔던 것처럼 인수를 결정한다 해도 현 상황에서 난관을 넘기가 쉽지는 않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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