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만의 XPU 구상에 나선 3사
2025년, ASIC 시장 비중 40%
추격자에서 선도자 모델로 전환해야

"데이터 센터 하드웨어 아키텍처의 원스톱 상점으로 만들겠다”

지난해 젠슨 황 엔비디아 창립자 겸 CEO가 멜라녹스 인수 완료 후 밝힌 말이다. 멜라녹스는 고성능 네트워킹 기술을 보유한 이스라엘 반도체 회사다. 엔비디아는 멜라녹스 인수로 자사 HPC(고성능컴퓨팅) 전문성과 네트워킹 기술을 결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엔비디아의 행보 역시 형태만 다를 뿐 목적지는 같다. 자사 생태계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원스톱 솔루션 구축이다. 인텔⋅엔비디아⋅AMD 모두 적극적인 인수합병을 통해 제3시장 선점을 준비 중이다. 3사는 모든 프로세서를 하나의 솔루션으로 공급하기 위한 자사만의 XPU 전략을 구상하고 있다.

데이터 센터./사진=Big Market Research
데이터 센터./사진=Big Market Research

자사만의 XPU 구상에 나선 3사

엔비디아는 지난해 ARM을 400억 달러(약 46조5000억원)에 인수하기로 발표했다. AMD는 FPGA(프로그래머블반도체) 1위 업체인 자일링스를 350억 달러(약 39조4500억원)에 인수하기로 발표했고, 앞서 인텔은 FPGA 2위 알테라에 대한 인수 작업을 완료했다.

엔비디아의 의지는 단순 CPU(중앙처리장치) 경쟁력 강화를 넘어선다. 지난해 엔비디아는 멜라녹스 인수를 완료했고, 데이터 센터 네트워킹 최적화 업체인 큐물러스 네트웍스 인수를 발표했다. 데이터에 특화된 반도체인 DPU(Data Processing Unit) 로드맵을 향한 준비 작업이다. 엔비디아 측은 자사 블루필드-2 DPU가 네트워킹⋅스토리지 및 보안 작업을 CPU에서 오프로딩하기에 최적화됐다고 밝혔다. 오프로드는 CPU 메모리 부하를 줄이는 기능을 의미한다. 작업량이 많은 장치의 작업을 적게 할당된 장치에서 일부 받아서 처리하게 된다. 

젠슨 황 CEO는  계속해서  '서버 분리(server disaggregation)'를 강조해 왔다. 칩-시스템-소프트웨어-분석도구 등에 이르는 데이터센터 올인원 솔루션 확보는 그 연장선에 있다. 서버 분리란 연산⋅메모리를 분리해 특정 워크로드(업무)의 수요에 따라 리소스(자원)를 할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젠슨황 엔비디아 CEO가 ‘RTX 서버 팟’을 발표하고 있다./엔비디아 유튜브 캡처
젠슨황 CEO의 ‘RTX 서버 팟’ 발표 사진./사진=엔비디아 유튜브 

과거에는 단순히 CPU⋅GPU⋅메모리 등을 묶어서 1만개⋅10만개 모아 서버 데이터를 만들었다. 그러나 엑셀러레이터(Accelerator) 혹은 스토리지(storage) 수요가 순간적으로 폭증할 때가 있다.

빠른 네트워크 연결은 서버 분리를 용이하게 한다. 팹리스 업계 관계자는 "빠른 네트워크로 연결하면 네트워크 카드에 붙어있는 GPU만 늘리면 리소스 관리가 편하다"며 "엔비디아는 CPU를 넘어 DPU 로드맵을 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인텔⋅AMD역시 마찬가지다. 양사는 각각 알테라⋅자일링스 인수로 CPU⋅GPU⋅FPGA에 이르는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게 됐다. FPGA(프로그래머블반도체)는 사용자들이 구매한 뒤 재프로그램이 가능한 반도체다. 신속한 시제품화⋅소량 생산 등에 최적화됐다. 

AI(인공지능) 가속기에서 두각을 보여온 자일링스는 대용량 데이터 처리에 강점이 있다. AMD는 서버 시장 점유율 향상에 더해 5G 통신 장비용 반도체 시장 진입을 목표로 한다. 인텔의 목표 역시 FPGA 보유에 한정되지 않는다. 인텔은 알테라 인수에 더해 계속해서 AI 스타트업들을 인수하고 있다. 지난해 인텔은 미국 AI 최적화 플랫폼 업체인 시그옵트(SigOpt) 인수를 발표했다. 이스라엘 머신러닝 스타트업 씨엔브이알지.아이오(Cnvrg.io)인수 발표 일주일 만이었다. 앞서 인텔은 이스라엘 AI 전문업체 하바나랩스(Habana Labs)를 인수한 바 있다. 

인텔이 지난해 인수한 하바나랩스의 '하바나 가우디' 가속기. /인텔
인텔이 인수한 하바나랩스의 '하바나 가우디' 가속기./사진=인텔

최종 목적지는 미래 시장 선점이며, 전략은 원스톱 솔루션 구축이다.

팹리스 업계 관계자는 “모두 일련의 원스톱 솔루션을 구축하기 위한 흐름으로 보인다”며 “데이터 센터⋅자율주행 등 고성능 반도체가 중요해지면서 자사 포트폴리오 군에 맞게 최적화된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한 흐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3사는 원스톱 솔루션 구축을 중요한 과제로 설정했다. 일련의 자사만의 XPU 전략 구상이다. 고성능 반도체 중요성이 높아질수록, 응용에 특화된 아키텍처들이 속속 등장한다. 3사 인수 합병은 더는 반도체 시장 포트폴리오가 CPU에 한정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각각 이종(Heterogeneous) 특성에 맞는 소프트웨어 스택이 중요하고, 역으로 개발자가 이에 맞춘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은 어렵다. 동시에 한 IT 기기에 들어간 CPU⋅GPU는 같은 회사 제품이어야 성능 최적화에 유리하다. AMD가 자사 GPU와 가장 잘 어울리는 CPU를 내세우고 인텔은 자사 CPU 강점을 내세우며, 동시에 GPU 최강자 엔비디아가 CPU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AMD에 긴장하는 이유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고성능 반도체가 증가할수록 최적화⋅호환성은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며 "각 회사 프토플리오에 맞는 원칩화 경향은 뚜렷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커지는 시장, 국내 업계 대응은

시장 조사 전문 업체 가트너는 미래에는  AI 추론(Inference) 분야 GPU 영향력이 절대적일 것으로 전망한다. 

2020 AI 하이프 사이클 전망./자료=Gartner

따라서 GPU⋅NPU등 국산 솔루션 확보의 필요성은 높아지고 있다. 자율주행 단계가 3~5단계까지 접어들면 GPU 등 고성능 반도체의 중요성은 높아질 것이다. 비대면 문화 확산 이후 하이퍼스케일(Hyperscale) 데이터 센터 수요 역시 폭증했다. AI 연산 능력을 갖추지 못한 대다수 스마트폰⋅PC는 데이터센터를 거쳐야 연산이 가능하다. 

엔비디아 'RTX30시리즈'는 그래픽 카드 수급 문제로 전 세계 품절 현상을 겪기도 했다. 6개월 사이 2배 이상 몸값이 올랐지만 늘어난 PC 수요는 몸값 상승을 떠받쳤다. 글로벌 공급망 단절⋅수요 급증 등 변수에 대비해야 하는 이유다. 

ASIC(주문형반도체) 시대로의 전환도 빨라지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McKinsey)는 데이터센터의 추론(inference) 단계 AI 애플리케이션에서 ASIC이 차지하는 비중이 2025년이면 40%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더는 기업들은 엔비디아 GPU에 의존하지 않고, 자사 제품 서비스에 맞는 칩 생산에 나설 공산이 크다. 

2025년 데이터센터⋅엣지 아키텍처 시장 전망./자료=McKinsey & Company

이종환 교수는 "다품종 소량 생산의 뚜렷한 경향성을 보일 것이며, 결국 특정 회로 설계를 하는 ASIC이 증가할 것"이라며 "데이터센터⋅자율주행에 필수적인 NPU⋅GPU 등 고성능 반도체에 대한 인력 확보⋅투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업계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SK텔레콤은 지난해 자체 개발한 데이터센터용 AI 반도체를 공개했다. SK텔레콤은 자사 AI 반도체 '사피온(SAPEON) X220'이 기존 GPU 대비 딥러닝 연산 속도가 1.5배 빠르고, 데이터 처리 용량이 1.5배 증가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역시 메모리 반도체와 AI 프로세서를 하나로 결합한 'HBM-PIM' 개발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전히 미래 시장 선점을 위한 준비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시스템 반도체가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은 3% 남짓이다. 미국 시스템 반도체가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 70%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한국은 미국과 달리 팹리스 수가 적고 경쟁력이 약하다.

김휘원 반도체산업협회 연구지원본부 본부장은 이에 대해 "시스템을 리드하는 칩을 만들어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엔비디아⋅인텔이 시장을 리드한 것은 미래 시장을 예측하고, 시장을 주도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의 브랜드 '엑시노스'./삼성전자
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의 브랜드 '엑시노스'./사진=삼성전자

김 본부장은 "연산도 잘돼야 하지만 GPU⋅NPU가 가진 성격⋅특성⋅시스템을 빨리 이해하고 그 시스템을 리드하는 칩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엔비디아는 미래는 이렇게 될 것이다고 명명하고 시장을 주도했다. 이제 발전 모델을 따라가는 추격자 전략이 아닌 선도자 모델로 전환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국내에서도 시장 선점을 위한 환경이 구축되고 있다. 정부는 2020년 'AI 반도체 산업 발전 전략'을 수립하고 AI 반도체 설계 분야에 10년간 총 2475억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더 적극적이고 장기적인 지원⋅전략⋅시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팹리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AI 넥스트 캠페인⋅중국 차세대 AI 발전 계획은 단순한 자금 지원을 넘는다"며 "이종 칩 간 호환⋅정부 주도의 연구 개발을 장기적 시각으로 지원한다. 단기적 시각을 벗어나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종환 교수 역시 "메모리 위주 시각에서 벗어나 고급 인력⋅자금⋅환경 등을 잘 맞물려 지원하고 구축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며 "정부에서 시스템 반도체를 주도적으로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분위기는 형성됐다. 꼭 필요한 기술들에 대해서는 장기적이고, 구체적인 전략을 세워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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