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대통령, 중국産 수입 줄이기 위해 행정명령 서명...양국 갈등 완화되기 보다 새 국면 맞을 듯

 

미국이 동맹국들과 연대해 반도체·배터리·희토류·의료품 등 핵심 소재·부품의 중국 의존도 낮추기에 나섰다. 이들 주요 품목에 대해 중국을 배제한 채 공급망을 구축하는 방안이다. 특히 중국이 희토류를 무기 삼아 향후 각종 분쟁에서 압박해 올 경우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돼 서둘러 대비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최근 차량용 반도체의 공급 부족으로 자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일부 라인을 중단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공급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뜻도 있어 보인다. 

미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24일(현지시간) 반도체 칩, 전기차용 대용량 배터리, 희토류, 의약품 등 4대 핵심 품목의 공급 사슬에 대해 100일간 검토를 진행하도록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또 행정명령은 4대 품목 외에 ▲국방 ▲보건 ▲정보통신기술 ▲에너지 ▲운송 ▲농산품과 식품 등 6개 산업에 대해서는 1년간 공급망을 검토하도록 하는 내용도 들어가 있다. 동맹국들과의 구체적 협력 방안으로는 ▲동맹국 간 주요 제품의 공급망 정보 공유 ▲비상시 신속하게 서로 지원하는 방안 검토 ▲비축품·잉여생산력 구축에 대한 협의 ▲생산품목의 상호 보완 등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행정명령 서명 전에 상원과 하원의 여야 의원 10여 명을 백악관으로 불러 초당적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서명식에서 “반도체 칩 공급 부족으로 자동차 생산이 지연됐고 그로 인해 미국인 노동자의 근무 시간이 줄었다”면서 반도체 산업을 특히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서명에 앞서 연설하며 반도체 칩을 들어 보이며 반도체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우리의 이익과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나라에 공급망을 의존해서는 안 된다”면서 “반도체 공급망에 문제가 생긴 후 해결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며 60년대처럼 연구 개발에 집중해 제조업 기반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 자금 지원을 위한 법안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미국은 현재 자국 희토류 사용량의 약 80%를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이들 희토류 수입선을 중국 대신 호주 및 기타 아시아 국가들로부터 수입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8년 이후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중국이 자국의 소재·부품을 무기화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 중국은 지난 2010년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놓고 영토 분쟁을 벌인 일본에 희토류 수출을 제한한 적이 있다.

반도체 역시 중국이 무기화할 수 있는 대표적인 품목으로 꼽힌다. 주요 반도체 생산업체를 보유한 나라는 한국, 대만, 중국, 일본, 미국 등 5개국 정도인데 중국의 점유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반도체 생산 점유율은 대만과 한국이 각각 22%와 21%로 1~2위를 차지했다. 중국의 점유율은 15%로 3위이지만 오는 2030년엔 24%까지 늘어나 세계 1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에 대한 반도체 의존을 방치했다가 무역규제를 당하면 국가 안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게 미국의 우려다.

바이든 행정부가 이처럼 대중 견제에 나서면서 우리나라에 미칠 이해득실에도 관심이 쏠린다. 한국이 세계시장에서 기술적 우위를 보이는 반도체 칩과 차량용 배터리가 포함돼 검토 결과에 따라 국내 산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삼성전자의 미국 반도체 생산라인 증설 투자에는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국내 기업의 압도적인 수출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 시장에서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들 품목의 미국 내 생산 증대에 비중을 두고 자체 기업을 육성하거나 해외 기업을 유치하는 쪽으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또 미국이 반도체 공급망이라는 고삐로 동맹국 압박에 나선 상황에서 중국을 포위하겠다는 안보 전략에 한국이 소극적일 경우, 미국이 반도체 협력 파트너로 일본·대만 등을 선택할 수도 있다. 또한 이번 행정명령을 계기로 일본의 ‘반도체 공정 소재 수출 규제’에서 불붙은 한·일 간 갈등이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도 있다. 미국이 동맹국을 활용해 공급망을 안정화하려는 상황에서 양국간 갈등을 적극적으로 중재하려고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백악관 관리들은 이번 행정명령이 중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공급 다변화에 좀 더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서도 주요 품목에서 중국, 적대국에 과잉 의존하는 것은 해결돼야 할 핵심 위험이라고 말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이번 행정명령에 대해 중국은 비판적인 태도다.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25일 정례브리핑에서 “인위적으로 산업 이전과 디커플링(탈동조화)을 추진하고 정치력으로 경제 규칙을 억지로 바꾸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해당국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면서 “글로벌 산업망과 공급망에도 손해를 끼친다”고 밝혔다. 또 “미국이 시장 규칙과 자유무역 규칙을 존중하고 산업망과 공급망 안정을 수호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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