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년간 거부권 행사는 총 6번...사례 뜯어보니
결정적 변수인 '정치적 상황' 주시해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최종 결정에 대한 대통령의 리뷰(review)는 검토라기보다 재심에 가깝다. 국제 통상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이상 ITC 판결은 대통령의 허락을 통해 그 효력 여부가 결정나기 때문이다. 

47년 ITC 역사상 단 여섯차례 발동된 대통령 거부권 행사 전례를 살펴보면 거부권 행사는 상당 부분 ‘정치적 결정’에 기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결정을 앞두고 완성차 업체·의회·주정부 차원의 전방위적 압박이 이어지고 있다. 2013년 이후 8년 만에 다시 ITC 최종 판정에 대한 대통령의 ‘이례적인 결정’이 이뤄질 수 있을까.

 

ITC 설립 이래 대통령 거부권 행사는 총 6번 

역대 ITC 최종 판정 대통령 거부권 행사 내용. /자료=USITC
역대 ITC 최종 판정 대통령 거부권 행사 내용. /자료=USITC

ITC 최종 결정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1974년 ITC 설립 이후 지금껏 총 여섯 차례 이뤄졌다. 한해 평균 100건 이상의 불공정 행위를 조사하는 ITC 전체 업무량을 고려하면 극히 미미한 수치다. 

1978년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첫 거부권을 행사했고, 1989년까지 재임한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이후 네 차례 ITC 최종 판정을 무효화했다. 26년 간 행사되지 않았던 거부권은 2013년 삼성전자-애플 간 특허전을 도화선으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에 의해 다시 발동됐다. 

거부권이 행사된 사례와 그에 따른 대통령의 공식 거부권 서한 내용을 통해 향후 10년 간 SK이노베이션의 미국 내 배터리 생산 및 수입을 금지한 ITC의 결정이 무효화될 가능성을 예상해볼 수 있다. 

 

① 특정 스테인리스 철강 파이프 및 튜브 관련 결정(1978)
 
미 관세법 337조에 의해 대통령 거부권이 첫 번째로 행사된 사례다. 당시 스테인리스 철강 파이프 및 튜브를 제조하는 미국 현지 업체들이 31개 일본 제조·수입·유통 업체들을 ITC에 제소했다. 소송 근거는 일본 업체들이 미국 시장에서 지나치게 낮은 가격으로 상품을 공급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ITC는 이에 판매 금지 명령을 결정했고, 카터 전 대통령은 ‘정치적 이유(policy reasons)’를 근거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거부 서한에서 카터 전 대통령은 ▲국내 경제적 이익에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 ▲국제 통상 관계에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 ▲행정부 내 불공정 무역 행위에 관한 법률의 중복 해석 및 갈등 방지 등을 거부권 행사 근거로 들었다. 

특히 카터 전 대통령은 ITC의 결정이 "(미국의)무역 상대국들에게 선례로 비춰질 수 있고,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저가 판매에 관한 합의 사항에 벗어나는 행위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미국에 대한 수출 보복 가능성" 또한 주요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스테인리스스틸 코일. 사진은 기사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포스코
스테인리스스틸 코일. 사진은 기사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포스코

② 특정 복합 헤드박스 관련 결정(1981) 

두 번째 대통령 거부권 사례는 '특정 복합 헤드박스(Certain Multi-Ply Headboxes)' 수입 금지 결정에 관한 것이었다. 미국 제지용 기계 제조업체 벨로이트(Beloit)는 특정 수입 제지용 헤드박스가 자사의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하며 ITC에 제소했다. ITC는 조사 이후 해당 헤드박스에 대한 수입 배제 명령으로 미국 시장 판매 금지를 결정했다. 

당시 레이건 전 대통령은 ITC의 명령이 불필요하게 광범위한 까닭에 이번 케이스와 관계 없는 해외 제조업체들까지 책임을 질 소지가 있다며 ITC 결정을 거부했다. 거부 서신에서 레이건 전 대통령은 "수입 배제 명령은 피제소자 상품에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쳐야 한다"며 "효력 범위를 축소한 ITC 명령은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최종적으로 ITC는 대통령의 성명을 토대로 재조사를 진행해 제한적 배제 명령을 내렸다. 

 

③ 특정 몰디드 인(molded-in) 샌드위치 패널 부속품 관련 결정(1982) 

미국 현지 업체 한 곳이 미국에 수입되는 '특정 샌드위치 패널 부속품'이 자사의 현지 특허 2건을 위반했다고 ITC에 제소한 사례다. ITC는 해당 패널 부속품을 구매하는 미국 업체 3곳을 상대로 관련 수입 제품 사용 금지를 명령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역시나 이에 거부권을 행사했는데 "특정 업체 3곳을 지정해 제품 가공 과정에 특정 수입 부속품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국제적 의무 사항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1978년 스테인리스 철강 파이프 사례와 마찬가지로 국제 통상 관계를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거부 서한에서 ITC 명령에 대한 수정 사항을 제시했다. 향후 정치적 문제가 되지 않도록 "신청인의 정당한 특허권을 보호하면서도 불필요하게 수입 물품에 대한 차별을 두지 말아야 한다"고 적시했다. 이후 ITC는 대통령 제안 사항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구제 조치를 수정했다.   

 

④ 특정 알칼리 배터리 관련 결정(1984) 

듀라셀 알칼리 배터리. /사진=듀라셀
듀라셀 알칼리 배터리. /사진=듀라셀

'특정 알칼리 배터리(Certain Alkaline Batteries)'와 관련해 듀라셀이 불법적으로 유통되는 배터리 수입을 금지해달라고 요청한 사례다. 듀라셀은 미국 시장에 유통되는 특정 배터리가 ▲자사 상표 도용 ▲트레이드 드레스(trade dress) 부정 사용 ▲원산지 표기 부정의 혐의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이에 랜햄법(Lanham Act, 미 연방상표법)을 근거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재무부(United States Department of Treasury)의 전통적인 규제 해석에 반하는 것"이라며 "(ITC 결정이)재무부 해석을 변경하는 것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이는 정부 부처 간 정치적 역학 관계를 고려한 결정이었다. 

듀라셀은 대통령 거부권 행사에 불복해 연방항소법원에 항소했다. 듀라셀은 관세법 337조에 적시된 대통령 거부권 행사 근거인 '정치적 이유' 구성 요건을 문제로 삼았다. 그러나 법원은 최종적으로 ITC 결정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경우 "그 이유에 대해 세부적으로 설명할 의무를 갖지 않는다"고 판단하며 거부권 행사 범위가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 

 

⑤ TI 디램 특허 관련 결정(1987)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가 삼성을 상대로 디램 특허 침해를 주장한 사례다. 결론적으로 삼성이 TI 디램 특허를 위반한 것으로 결론이 나 ITC는 삼성의 디램과 삼성 디램을 장착한 타 업체들의 컴퓨터, 복사기, 통신 변환 장치까지 수입을 금지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복합 헤드박스 사례와 비슷하게 규제 대상 범위가 광범위하다며 거부권을 행사했다. "컴퓨터, 복사기, 통신 변환 장치 무역에 불필요한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따라 대통령은 ITC에게 후속 조치를 요청했다. 

 

⑥ 삼성 표준특허 관련 결정(2013) 

삼성이 애플을 상대로 ITC에 제소한 사례다. 특허를 침해하지 않고서는 관련 제품을 생산·판매하기 어려운 표준특허(SEP)에 대해서도 ITC가 수입 배제 명령을 내릴 수 있는지가 핵심이 된 사안이었다. 당시 삼성전자는 애플의 아이폰4S와 아이패드 등이 자사의 통신기술 표준특허 2건과 상용특허 2건을 침해했다 주장했다. 

ITC는 애플이 삼성 특허 4건 중 1건을 침해했다 판단해 애플 제품에 대한 수입 배제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미 무역대표부(USTR)는 ITC 판결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근거는 애플이 침해한 삼성의 특허는 공정하고 비차별적인 라이선스를 제공할 의무(FRAND)가 있는 필수표준특허(SEPs)라는 이유에서였다. 미 법무부는 표준특허의 경우 극히 예외적으로 금지 명령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당시 오바마 전 대통령은 애플이 삼성 측에 소를 제기한 ITC 결정에 대해서는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며 보호무역주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해당 사안과 관련해 공화당·민주당 상원의원 4명이 USTR 대표에게 서한을 보내는 등 대통령 거부권 행사에 대한 정치적 압박도 있었다. 미국 통신업체 AT&T와 버라이즌 등 또한 오바마 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 주장했다. 

조 바이든(Joe Biden) 미국 대통령. /사진=백악관 홈페이지
조 바이든(Joe Biden) 미국 대통령. /사진=백악관 홈페이지

ITC 최종 판결에 대한 미 대통령의 거부권은 국제 통상 관계, 정부 조직 역학 관계, 행정부 정책 기조, 산업 상황 등 다양한 변수가 맞물려 그 행사 여부가 결정된다. 이에 따라 영업 비밀 사실 관계 검증에 집중한 ITC 조사와 달리 바이든 행정부로 넘어온 공은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수입 금지 조치가 미칠 정치적 영향력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다. 친환경 정책 기조, 일자리 문제 등 바이든 신임 대통령을 둘러싼 정치 지형이 ITC 최종 판결에 대한 대통령 재심(review) 결과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KIPOST(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