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EDA(반도체설계자동화) 자체 개발에 나섰다. 미국 EDA 기업 베테랑들을 영입해 EDA 자립에 나선 것이다. 지금까지 EDA시장은 케이던스디자인(Cadence Design Systems Inc)⋅멘토그래픽스(Mentor Graphics)⋅시놉시스(Synopsys Inc) 3사가 독점적 지배력을 가지고 있었다.

지난해 미국이 EDA 까지 규제에 나서면서 중국의 반도체 손발은 묶이게 됐다. EDA 툴은 반도체 설계부터 전·후공정까지 반도체 제조의 전 과정에 쓰인다. 중국 기업들이 반도체 생산라인에 투자를 강화해도 EDA업체를 지렛대로 규제를 강화하면 설계는 무용지물이다.

중국의 EDA 자체 개발은 성공할까. 아니면 EDA가 미국의 중국 '반도체 걷어차기' 핵심 사다리가 될까. 중국의 EDA 자립은 가능한지 짚어봤다.  

PCB용 EDA 툴./사진=일렉트로닉스랩

개발은 가능, 백엔드로 갈수록 어려워

EDA개발에 나서고 있는 중국 기업은 X-EPIC(엑스에픽)⋅프로폴리스 등이다. 모두 케이던스⋅시놉시스 출신 전문가들을 영입했다. (KIPOST 2020년 12월 10일자 <中 EDA 기업 300억 원 규모 시리즈A 투자 받아...국산화 가속>참조).

전문가들은 EDA 개발 자체는 가능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소프트웨어로 개발하는 EDA 특성상 장비나 공장이 필요 없어 전문 인력만 있으면 큰 투자없이 개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 외국계 반도체 업체 대표는 “툴 개발 자체의 걸림돌은 많지 않다. 기본 시뮬레이터부터 시작해서 시놉시스⋅케이던스의 결과값과 똑같은 툴을 만들어내기 위해 계속 시도하고 개발할 것”이라며 “시간이 필요한 것이지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EDA 디자인 플로우 관련 설명./자료 반도체설계교육센터

하지만 백엔드 단계로 갈수록 개발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EDA 툴은 크게 프론트엔드와 백엔드로 나뉜다. 설계 자체의 검증과 설계 결과를 검증하는 과정이 수반된다. 설계 자체는 프론트엔드와 백엔드가 유사하지만 백엔드에 위치한 배치 및 연결과정인 PnR(Placement&Routing) 단계로 갈수록 검증 과정은 복잡해진다. 

반도체설계교육센터 관계자는 "완성 단계로 갈수록 시뮬레이션도 해야 하고 세부적인 디테일을 더 세밀하게 봐야 한다"며 "PnR단계의 EDA툴 개발에 더 어려울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반도체 업체 대표도 "백엔드의 PnR 결과값을 보려면 거리⋅전력 소모 등을 다 판단해서 봐야 한다"며 "하나하나의 단계를 볼 때마다 다른 툴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툴 개발이 더 까다롭다"고 말했다. 

개발 성공해도 ‘시장 자립’은 어려울 것

툴을 개발하는 것과 툴이 시장에서 적용되는가는 별개다. EDA는 이미 미국 기업의 노하우가 오랫동안 장악해 온 분야다. 3사가 개발한 EDA 툴은 업계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업계 전문가들은 중국이 자구적 노력으로 개발에 성공해도 시장 적용까지는 쉽지 않을 것으로 분석한다. 김재하 서울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기본 툴은 손에 익은 것을 잘 바꾸지 않는다”며 “개발보다는 그런 점이 더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왜 기술력을 확보해 개발해도 시장 적용이 어려울까. EDA 업계에는 암묵적 합의가 있다. 설계 검증부터 설계 결과 검증까지 1단계부터 10단계까지 한 회사의 EDA툴로 진행되지 않는다. 단계별로 사용하는 각각의 회사의 툴이 다른데 어떤 단계에서 어느 회사의 툴을 사용하느냐가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다. 이미 업계에서는 그 단계별 과정이 표준화돼 있고 중국 회사의 툴이 개발돼도 적용이 어렵다. 

반도체 이미지. /TSMC 제공
반도체 이미지. /사진=TSMC 

한 EDA업체 대표는 “반도체 디자인 플로우에는 1번 시놉시스⋅2번 멘토 등 그 플로우들이 셋업 돼 있다. 1번 벤더가 2번 벤더에게 주는 포맷이 맞춰져 있다”며 “그 디자인 플로우에 갑자기 중국 회사 툴이 들어오면 협업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권용재 반도체 산업협회 연구원 역시 “개발만 한다고 EDA자립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며 “중국에서 만든 툴이 3사의 툴과 얼마나 협업이 가능한지가 중요한데 개발에 성공하더라도 시장에서 채택은 어려울 것이다”고 강조했다. 

특허 문제도 있다. 이미 EDA 3사는 특허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3사는 아이디어로 특허를 낸 뒤 그 특허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해 시장 지배력을 장악해왔다. 한 EDA 업체 대표는 “90%에 해당하는 기술들은 이미 3사가 다 특허를 내놓은 상황이고 지금 들어가는 EDA들은 틈새시장으로 봐야 할 것”이라며 “인력을 데려와 개발해도 그 벽을 뚫고 가는 것이 어려울 것이다”고 말했다. 

수출 타격은 더해질 것

그렇다면 중국 반도체 업체들은 생존할 수 있을까. 이미 불법 툴을 많이 사용했던 중국은 계속해서 불법 복제 툴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생존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4nm 이후 공정에서는 불법 소프트웨어의 사용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권용재 반도체산업협회 연구원은 “14nm 핀펫(FinFET) 공정에서는 업계에서 공식적인 라이선스를 많이 쓸 것”이라며 “최신 버전으로 메인 플로우가 셋업돼 있는데 옛날 버전을 가지고 와서 설계하면 제품을 찍을 수가 없다. 한글로 간주하면 폰트가 깨진다거나 하는 문제가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화웨이 자회사 하이실리콘이 개발한 칩/하이실리콘 제공
화웨이 자회사 하이실리콘이 개발한 칩./사진=하이실리콘 

더 큰 문제는 글로벌 시장에서의 어려움이다. 미 상무부 EAR(수출관리규정)은 미국산 제품이 아니더라도 완제품에 미국 기술⋅소프트웨어(SW)가 10% 이상 사용됐다면 미국산으로 간주한다. (KIPOST 2021년 1월 6일자 <美 대신 한국 장비 택한 JHICC, 실제 수출 가능할까>참조). 이석준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미국은 계속해서 중국이 기술 도용⋅복제를 통해 성장하는 것을 막고자 할 것”이라며 “미국 기술로 만든 중간재 수출을 금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고 말했다. 

미국의 불법 소프트웨어 사용에 대한 규제도 강화되고 있다. 2013년 1월 미국은 중국 의류회사를 불공정행위(Unfair Common Action)로 제소했다. 의류 제조에 불법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원가를 낮춘 것이 불공정 행위라는 이유에서다.

한 외국계 반도체 업체 대표는 “불법 버전 사용 시 수출에 문제가 될 것”이라며 “무엇을 이용해서 개발했는지 자료를 요구하면 소프트웨어 버전까지도 확인 가능하다. 그 부분을 따지고 규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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