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테스트 인프라, 시간·비용 多
정부 소부장 산업 육성책 따라 테스트 기회 늘 것

기술은 연구개발(R&D)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복잡한 기술 연구만큼 중요한 게 실증화 작업이다. 테스트와 실증 작업을 통해 성능이 제대로 구현되는지 검증하고 그에 따른 최적화 작업까지 이루어져야 비로소 기술이 '완성'된다. 그러나 국내 소부장 업체들에게 테스트베드란 매번 기대보다는 고민에 가깝다. 

비용 때문에 테스트도 어려워...국내 소부장의 현실 

2018년 기준 국내 소부장 사업체 중 약 80%가 10인 이상 50인 미만의 소규모 기업들이다. 생산액 비중으로 따지면 전체 2% 가량을 차지하는 300인 이상 대기업이 전체 소재·부품 산업 생산액의 55%를 차지한다. /자료재가공=KIPOST
2018년 기준 국내 소부장 사업체 중 약 80%가 10인 이상 50인 미만의 소규모 기업들이다. 생산액 비중으로 따지면 전체 2% 가량을 차지하는 300인 이상 대기업이 전체 소재·부품 산업 생산액의 55%를 차지한다. /자료재가공=KIPOST

기술력과 오랜 노하우가 뒷받침돼야 하는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산업 특성상 중소업체들은 기술 격차와 신뢰성 문제로 시장 진입이 어렵다. 우리나라가 오랜 기간 일본과 미국의 주요 반도체 소부장 업체들에게 물품을 조달한 이유이기도 하다. 공고화된 시장에서 성장이 쉽지 않으니 기술개발에도 많은 투자를 하기 어렵다. 이는 결국 소부장 업체 기술 부진과 성장 한계로까지 이어진다. 

실증화 작업을 위한 테스트베드 문제는 업계의 오랜 고민이다. 한 소재업체 관계자는 공공기관인 “나노종합기술원에서조차 한 개의 샘플을 만드는 데 적어도 5000만원에서 1억원은 든다”고 설명했다. 국내 모 기업은 반도체 액침 불화아르곤(ArF Immersion) 공정용 포토레지스트 개발을 위해 해외 주요 검증기관 중 하나인 벨기에 IMEC(Interuniversity Microelectronics Centre)에 18억원의 사용료를 지불하기도 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팹에서는 별도 비용 없이 공급업체들을 대상으로 테스트라인을 운영하고 있지만 테스트를 위한 검증작업(Qualification) 후보로 들어가는 것만 해도 ‘낙타 바늘 구멍 통과하기’ 수준이라는 게 업계 공통된 의견이다. 업계에 따르면 “테스트용으로 10개를 제출하면 하나 정도 검증을 해줄까 말까 한 수준”이라는 게 통설이다. 

 

2021년부터 달라지는 변화 조짐 세 가지 

 

①정부, 내년부터 핵심 소부장 품목 R&D 집중 투자 

그러나 내년부터는 이런 상황이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R&D 분야 마중물이 넘친다. 정부가 스타트를 끊었다. 작년 7월 일본 수출규제 직후 정부는 ‘소부장 특별회계’를 신설해 올해 약 2조700억원을 소부장 산업 육성에 투입했다. 내년에는 예산이 23% 늘어 2조5000억원이 소부장 경쟁력 강화를 위해 쓰일 예정이다. 158개가 넘는 소부장 핵심 품목들이 연구개발 대상으로 올랐다.    

'소부장 2.0전략' 부처별 책정 예산. /자료=산업통상자원부
'소부장 2.0전략' 부처별 책정 예산. /자료=산업통상자원부

핵심 소관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반도체·디스플레이(32%), 전기전자(17%), 기계금속(17%), 기초화학(15%), 자동차(15%) 소부장 품목에 집중 투자할 계획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소벤처기업부, 금융위원회도 각각 4000억원, 3300억원, 2400억원 가량의 예산을 집행해 범부처 차원의 소부장 키우기가 본격화된다. 

 

②소부장 업체들 삼성전자 등 지원 업고 내년도 본격 공급망 진입할 듯 

업계에서도 변화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은 기존 테스트 기간을 절반 이상 단축하며 국산 제품들을 적극 검증하기 시작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1년에 약 10건에 머무르던 수요업체 성능 테스트가 작년과 올해 100건 수준으로 10배가량 늘었다.

그 결과 소부장 업체들이 실제 공급망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지난 7월 디스플레이·반도체용 특수 가스 공급업체 SK머티리얼즈는 기체 불화수소 테스트를 마치고 연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소재를 공급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소재업체 솔브레인은 올해 액체 불화수소 공장을 조기 완공했고, 동진쎄미캠 또한 올해 초 불화아르곤(ArF) 포토레지스트 공장 증설을 확정했다.

 

③서플러스글로벌, 2021년 소부장용 검증 클러스터 완공

클러스터 조감도. /자료=서플러스글로벌
클러스터 조감도. /자료=서플러스글로벌

R&D뿐만 아니라 기술 검증용 파이프라인 역시 하나씩 구축되고 있다. 전세계 반도체 중고장비 1위 업체 서플러스글로벌은 내년도 완공을 목표로 경기도 용인에 2만평 규모 반도체 클러스터를 짓고 있다. 김정웅 서플러스글로벌 대표는 “새 장비 대비 2~3배 이상 비용이 저렴한 중고장비를 활용해 소부장 업체들이 기술 투자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 설명했다.

서플러스글로벌 측은 10년 간 축적한 수요-공급업체 세부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성장 가능성 있는 소부장 업체들을 육성한다는 목표다. 클러스터는 국내 소부장 업체들뿐만 아니라 디바이스메이커, 해외 OEM 업체들이 협업할 수 있는 ‘공유 협업 공간’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정부 또한 대전 나노종합기술원에 내후년까지 12인치 테스트베드 구축을 위해 450억원의 자금을 투입한다.

한편 업계 일각에서는 기대와 동시에 검증용 테스트베드 실효성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한 소재업체 관계자는 “(클러스터가) 실제 효과적으로 운용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IMEC과 같이 큰 효과를 창출하는 검증 시스템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업계 전망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작년과 올해에 이어 내년까지 소부장 육성을 위한 기본 파이프라인이 본격적으로 구축되고 있다는 것에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분위기다. 이신두 서울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앞으로 최소 5년간은 이러한 기조가 유지될 것 같다”며 국내 소부장 산업 성장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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