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상용화 의지 보이면서 장비부터 반도체까지 들썩
물량도, 부가가치도 모두 가진 DU에 업계 관심 집중

최근 이동통신 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키워드는 ‘O-RAN’이다. 

‘O-RAN(Open Radio Access Network)’은 개방형 하드웨어에 가상화된 무선 접속망(RAN)을 구축하기 위한 통신 표준이다. 제조사별로 제각각이었던 RAN 규격을 통일해 망 구축 비용을 줄이고 통신사들이 새로운 서비스와 기능을 선보일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지난해까지는 비교적 O-RAN에 대한 업계의 관심이 크지 않았지만, 미국이 5G 시장에서 화웨이를 배제하기 위해 O-RAN 상용화에 힘을 실으면서 최근 들어 O-RAN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장비 업체는 물론, 반도체 업체까지 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개방형 네트워크 표준, O-RAN은

RAN은 이동통신 망에서 무선 단말과 중앙 망(Core Network)을 연결하는 장치들을 뜻한다. RAN 아키텍처는 중앙 망에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빠르게 전송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3G에서의 RAN 아키텍처(D-RAN)와 C-RAN 아키텍처의 차이./넷매니아즈
3G에서의 RAN 아키텍처(D-RAN)와 C-RAN 아키텍처의 차이./넷매니아즈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RAN 장비는 일체형이었다. RAN 장비 내부는 라디오 네트워크 컨트롤러(RNC)와 베이스밴드 장치(BBU)로 구성됐다. BBU는 외부와 무선 신호를 주고받아 디지털로 해석하는 역할만 했고, RNC가 BBU 등을 제어하면서 안테나를 조종하는 ‘두뇌’ 기능을 했다.

그러다 기지국이 늘어나면서 투자 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3년 전 업계는 ‘C-RAN(Cloud RAN)’ 구조를 도입했다. C-RAN는 BBU 내에서 무선 신호를 주고 받는 원격 무선 장치(RRH)를 분리, 다수의 RRH에서 들어오는 데이터를 하나의 BBU가 처리하게 하는 구조다. RRH는 기존 RAN 장비에서 떨어져 나와 독립 시스템으로 만들어졌다.

5G에서 RAN 아키텍처는 또다시 바뀌게 된다. 기존 방식으로는 급증하는 데이터를 처리하기 어려웠고, 주파수 대역이 높아지면서 기지국 개수도 늘어나야했기 때문이다. 

 

5G RAN 아키텍처./TELCOMA
5G RAN 아키텍처./TELCOMA

이에 이동통신 표준화 기구인 3GPP는 5G 표준(Rel.15)에서 RAN 아키텍처를 중앙 장치(CU·Central Unit), 분배 장치(DU·Distributed Unit), 무선 장치(RU·Radio Unit)로 나누고 기존 BBU와 RNC의 기능도 세 장치에 분배했다.

CU는 기존 RNC의 역할을 하는데, OSI(open systems interconnection) 계층에서 데이터 링크(상위 L2) 및 네트워크(L3) 계층을 담당한다. 데이터 무결성을 점검하고 이를 압축해(L2), 중앙 망에 데이터를 전송(L3)하는 식이다. 안테나 제어 기능은 빠졌다.

DU는 전송을 위해 들어온 데이터 중 필요한 데이터를 가려내고(L1), 신호의 처리 순서를 결정(하위 L2)한다. BBU의 상당 기능을 수행하는 셈이다.

기존 RRH 역할은 RU가 한다. RU는 보통 안테나와 일체형 장비로 구성되며 AAU(active antenna units)라고도 부른다. 앞서 CU에서 빠진 안테나 제어 기능이 RU에 들어갔는데, 상황에 따라 안테나의 방향을 움직여 트래픽이 몰리는 곳을 향하게 하는 식이다. 여기에 L1 계층의 일부 기능(Low-PHY)까지 수행한다.

이렇게 RAN 아키텍처를 세분화하면서 통신사들의 투자 부담도, RAN에 가해지던 부하도 줄었지만 한 가지 단점이 있었다. 이전에는 통신 사업자가 장비 업체가 만들어놓은 RAN 시스템을 사다가 기지국에 구축하면 그만이었지만, 이제는 각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별도로 구매해야했다.

 

O-RAN 아키텍처의 모식도. O-RAN은 SW가 없는 화이트박스 하드웨어 및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요소에 대한 통합 상호 연결 표준을 포함, RAN 요소의 상호 운용성과 표준화를 기반으로 하는 개념이다./O-RAN Alliance

그래서 나온 개념이 O-RAN이다. 

O-RAN은 표준 서버 형태(Form Factor)와 개방형 인터페이스를 활용한다. 이전까지는 각 장비 업체들이 서로 다른 규격으로 RAN 솔루션을 내놨고 상호호환성도 없었기 때문에 통신사들은 1~2개 업체들이 내놓은 솔루션으로만 망을 구축할 수밖에 없었다.

O-RAN을 도입하면 통신사들은 각자 입맛에 맞는 소프트웨어, 하드웨어를 구비해 망을 구축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새로운 서비스와 기능을 넣기도 수월해진다. 중소 장비업체들처럼 기존 생태계에서 다소 배제돼있던 업체들도 시장에 진입할 수 있고, 반도체 업체들의 진입 장벽 또한 낮아진다. 

 

이 시장의 핵심은 DU

물량으로만 보면 CU·DU·RU 중에선 가장 아랫단인 RU가 압도적으로 많다. 하지만 부가가치까지 감안하면 RU보다는 DU 시장이 더 크다. 가장 상위인 CU는 이동통신사의 자체 데이터센터나 클라우드에 구축되기 때문에 물량이 많지 않고, 범용 서버를 사용하는 만큼 이 시장에서 누가 승리할지는 이미 정해진 상황이다. 

가운데 DU는 새로운 시장이다. 상대적으로 CU보다 물량이 많은데다, 모바일엣지컴퓨팅(MEC) 기능까지 접목되면서 RU와 달리 컴퓨팅 성능도 중요하다. 업계가 인공지능(AI) 서버에 가속기를 넣듯이 DU에도 하드웨어 가속기를 추가해 실시간 컴퓨팅 능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이유다.

 

기존 BBU의 장치 구성./자일링스
기존 BBU의 장치 구성./자일링스

DU의 구성은 기존 BBU 장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 

BBU는 RU에서 신호를 받아들이는 프런트홀(Fronthaul) 프로그래머블반도체(FPGA), L2·L3 및 프로토콜을 처리하는 범용 프로세서(CPU), 그리고 L1을 처리하는 프로세서로 구성됐다. L1을 처리하는 프로세서는 FPGA와 전용 반도체(ASIC)가 모두 쓰였는데, 보통은 장비 업체가 자체 ASIC으로 성능 대비 전력소모량을 최적화했다.

DU에서 달라지는 점은 범용 CPU가 OSI L2~3 계층이 아닌 프로토콜만 처리하게 되고, L1~3 계층을 처리하는 프로세서들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각 제조사마다 다르지만, 보통 범용 CPU 한 개와 디지털신호처리장치(DSP), 그리고 프로세서로 구성된다. 

하지만 DU 하나가 초당 수천, 수만 GB의 데이터를 처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단순히 프로세서 하나로는 부족하다. 

 

SK텔레콤의 AIX는 5G 인프라의 모바일엣지컴퓨팅(MEC)에 들어가 AI 서비스를 하는 데 활용된다./SK텔레콤
SK텔레콤의 AIX는 5G 인프라의 모바일엣지컴퓨팅(MEC)에 들어가 AI 서비스를 하는 데 활용된다./SK텔레콤

DU용 가속기로는 ASIC, GPU, FPGA 모두가 쓰일 수 있다. ASIC의 경우 통신사들이 직접 설계해야한다는 부담이 있지만 원하는 기능을 넣어 전력소모량과 성능을 최적화할 수 있다. ASIC을 택한 대표적인 업체가 SK텔레콤이다. GPU는 성능이 좋지만 가격이 비싸 DU보다는 상대적으로 CU에 쓰이는 분위기다. 

마이크 위솔릭(Mike Wissolik) 자일링스 유무선 그룹 제품 기획 및 마케팅 매니저는 “GPU의 프로그래밍 언어가 통신 업계가 사용해온 C 언어와 많이 달라 접근성 측면에서도 GPU보다 FPGA가 더 좋다”고 설명했다.

 

vRAN과 O-RAN 솔루션 내놓는 업계

이에 장비 업계는 물론 반도체 업계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까진 기존 RAN 아키텍처에 기반한 수요가 많았지만, 올해부터는 O-RAN을 지원하는 솔루션에 대한 요구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릭슨(Ericsson) 네트워크 사업 부문장 겸 수석 부사장 프레드릭 제이들링이 엔비디아 젠슨 황 CEO와 함께 무대에 올라 양사의 5G 무선사업을 소개하고 있다.
에릭슨(Ericsson) 네트워크 사업 부문장 겸 수석 부사장 프레드릭 제이들링이 엔비디아 젠슨 황 CEO와 함께 무대에 올라 양사의 5G 무선사업을 소개하고 있다.

에릭슨은 GPU 업체 엔비디아와 협력, vRAN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엔비디아와 에릭슨의 vRAN 솔루션은 GPU를 단순히 컴퓨팅 가속화가 아닌 그래픽 구현에도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궁극적으로 두 회사는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 클라우드 게이밍 등 이동통신 기반 서비스를 빠르게 출시할 수 있는 솔루션을 내놓을 계획이다.

인텔 역시 O-RAN을 지원하는 CPU와 FPGA를 내놓고 있다. 자일링스의 T1이 DU용 FPGA 기반 가속기 카드라면, 이 회사의 FPGA는 RU용이다. 이와 함께 가상화 소프트웨어 업체 브이엠웨어(VMWare)와 협력, 통합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 

 

자일링스의 이동통신용 가속기 'T1'./자일링스
자일링스의 이동통신용 가속기 'T1'./자일링스

세계 FPGA 시장 점유율 1위 업체 자일링스는 16일 5G DU용 가속기 ‘T1’을 출시했다. T1는 프론트홀을 처리하는 FPGA ‘징크 울트라스케일 플러스’에 L1 일부 기능을 담당하는 ‘징크 RFSoC’로 구성됐다. PCIe 카드 형태로, DU 보드 자체에 내장되는 게 아니라 꽂아 쓰는 방식이기 때문에 보드를 유연하게 구성할 수 있다.

자일링스는 기존 O-RAN DU 서버에 T1 카드를 추가하면 L1의 인코더 처리량은 42배, 디코더 처리량은 24배 개선할 수 있고 5G 프론트홀의 경우 CPU 코어 사용량을 줄이면서도 최대 46.96Gbps(4섹터 기준)의 대역폭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CU용 가속기의 경우 거의 엣지 컴퓨팅 서버와 함께 구축되고, 이동통신 업계의 요구사양이 높아 GPU가 더 주목받고 있다”며 “ASIC 서비스를 제공하는 반도체 업체들이 늘어나면서 DU로는 ASIC과 FPGA가 맞붙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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