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부터 전속 디자인하우스 육성한 TSMC
국내 디자인하우스 인력 모두 합쳐도 GUC 한 곳에 열세
"삼성전자가 DSP 소속사 적극 육성해야"

‘4300억원 대 700억원.’

지난해 대만 글로벌유니칩(GUC)과 알파홀딩스가 각각 벌어들인 연간 매출 규모다. GUC는 대만 TSMC의 주력 디자인하우스이며, 알파홀딩스는 삼성전자 파운드리 생태계 중 비교적 큰 규모의 디자인하우스다.

흔히 팹리스의 반도체 설계를 파운드리가 위탁 제조한다고 생각하지만, 가운데서 디자인하우스가 둘을 매개해야 비로소 생태계가 완성된다. 

파운드리 공장 내부 전경. /사진=TSMC
파운드리 공장 내부 전경. /사진=TSMC

허약한 국내 디자인하우스 산업

 

선단공정 도입 시기만 놓고 보면 TSMC나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가 드라마틱한 차이가 나지 않는다. 두 회사가 올해 나란히 5나노미터(nm) 공정 양산에 들어갔거나, 양산을 추진하고 있다. 내년, 혹은 내후년에 3nm 공정 양산을 놓고 다시 한번 경쟁에 돌입한다. 

그러나 대학 3학년과 4학년 경쟁 같은 선단공정 경쟁과 달리, 두 회사의 시장점유율 격차는 대학생과 중학생 간 싸움처럼 아득하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 2분기 기준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TSMC가 52%로, 19%인 삼성전자를 압도했다. 

이 같은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걸까. 기본적인 파운드리 생산능력에서 TSMC가 월등하고, 선단공정부터 구(舊)세대 공정까지 다양한 노드를 제공하는 등 인프라 역시 TSMC가 삼성전자에 앞선다. 여기에 팹리스와 파운드리를 이어주는 디자인하우스 생태계의 허약함은 삼성전자와 TSMC 간 격차를 더 확대하는 요소다. 

시스템반도체 생태계. 디자인하우스(칩리스)는 팹리스와 파운드리를 매개한다. /자료=삼성전자
반도체 생태계. 디자인하우스는 팹리스와 파운드리를 매개한다. /자료=삼성전자

디자인하우스는 기본 역할은 팹리스가 설계한 반도체를 파운드리 공정에 맞게 디자인하는 것이다. 팹리스가 칩 설계 코드를 짜면 디자인하우스는 생산에 쓰일 마스크 제작과 테스트 등 백엔드 작업을 담당한다. 

그러나 사업 선순환이라는 큰 그림에서 보면 디자인하우스의 역할은 단순히 백엔드 공정 외주를 뛰어 넘는다. 파운드리 업체가 일일이 컨택할 수 없는 전 세계 중소 팹리스를 대상으로 디자인하우스들이 영업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마치 자동차회사가 일일이 만날 수 없는 고객들을 일선 영업점에서 대응하는 것과 유사하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의 가장 큰 고객사인 시스템LSI나 퀄컴 등은 직접 영업할 수 있지만, 국내외에 산개된 팹리스들을 일일이 컨택하기는 쉽지 않다. 이 빈공간을 채워주는 게 디자인하우스다. 

TSMC의 경우 대만은 물론 우리나라와 미국⋅중국⋅이스라엘⋅벨기에에 각각 디자인하우스를 거느린다. 이들을 VCA(Value Chain Aggregator)로 묶어 적극 육성하고 있다. 

앞서 예로 든 GUC가 TSMC의 대표적인 디자인하우스며, TSMC는 지난 2003년 GUC 지분 34.8%를 사들여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파운드리 사업에서 디자인하우스 중요성을 일찌감치 간파한 것이다. GUC 외에 대만 내 VCA인 알칩(Alchip)도 지난해 연매출 1700억원에 달할 만큼 건실한 디자인하우스다. 

TSMC 자회사인 GUC의 매출 및 순이익 추이. /자료=GUC 홈페이지
TSMC 자회사인 GUC의 매출 및 순이익 추이. /자료=GUC 홈페이지

그러나 TSMC의 디자인하우스 풀(Pool)에 비하면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의 디자인하우스 생태계는 빈약하다. 삼성전자 역시 DSP(Design Solution Partner) 프로그램을 통해 디자인하우스들을 육성하고 있으나, 각 업체 규모면에서 TSMC 협력사에 비하면 왜소하다. 

알파홀딩스가 지난해 매출 700억원 정도를 기록해 비교적 큰 규모다. 또 다른 DSP 소속인 가온칩스의 지난해 매출이 277억원, 이번에 실리콘하모니와 합병한 하나텍이 합병후 매출 규모가 약 140억원 안팎으로 올라설 전망이다. 작년에 2258억원의 매출을 올린 에이디테크놀로지는 원래 TSMC의 VCA 소속이었다가 올해 초 VCA 계약을 종료하고 현재는 DSP로 활동 중이다. 지난해는 물론, 최소 내년까지의 매출은 VCA 소속 디자인하우스 자격으로 벌어들인 게 대부분이다. 

세솔반도체는 지난해 매출이 공개되지 않았는데 2018년 기준으로는 22억원 정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4월 DSP로 신규 진입한 코아시아 역시 디자인하우스를 신규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어 관련 매출이 크지 않다.

 

삼성전자, DSP에 지원은 없고 바라는 건 많다

 

통상 디자인하우스의 역량을 전문 인력 보유수로 추정하는데, 국내 디자인하우스 인력 모두를 합쳐도 GUC 한 곳(600여명)에 못미친다.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돈 되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맡을 역량이 안 되고, 그러다 보니 더 영세해지는 악순환에 빠진 것이다. 

사실 그동안은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무게중심이 D램⋅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로 쏠려 있었기 때문에 구태여 디자인하우스 생태계를 육성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다. 파운드리 생산능력이 TSMC의 6분의 1에 불과하고, 제공할 수 있는 노드도 다양하지 않았다. 떨어지는 일감이 부족할 수 밖에 없다 보니 자생력을 기르는 데 한계가 뚜렷했다. 

2분기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현황. 삼성전자와 TSMC의 시장점유율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디자인하우스 역량 강화가 절실하다. /자료=신한금융투자
2분기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현황. 삼성전자와 TSMC의 시장점유율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디자인하우스 역량 강화가 절실하다. /자료=신한금융투자

디자인하우스 생태계의 중요성을 자각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 삼성전자가 전략적으로 시스템반도체 분야를 육성하기 시작하면서다. 이에 삼성전자는 DSP들로 하여금 서로간 인수합병을 독려해 몸집을 키우고, 설계 역량을 강화할 것을 주문했다. 우선 외형을 키워 놓아야 향후 턴키 프로젝트 등 돈되는 일감을 수주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DSP 소속 업체들은 TSMC가 GUC를 전략적으로 육성했듯, 삼성전자가 디자인하우스 성장을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TSMC는 처음부터 ‘퓨어 파운드리' 전략을 고수하면서 전용반도체(ASIC) 프로젝트 등은 GUC로 일감이 넘어갈 여지가 컸다. 또 TSMC는 GUC 역량 강화를 위해 반도체 설계자산(IP) 개발을 지원하기도 했다. IP 개발에는 대규모 인력과 비용이 투입돼야 하는 탓에 국내 디자인하우스들은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이에 비해 삼성전자가 운영하는 DSP에 입성한다고 해도 실질적인 혜택은 거의 없다. 애초에 ‘전속'이라는 끈도 약해서 상호간 계약이 존재하지도 않는다. 특히 삼성전자 주도로 베트남에 전속 디자인하우스(에스엔에스티)를 설립하는가 하면, 지난 2016년 인수한 하만커넥티드서비스(HCS)를 통해 ASIC 설계를 수직계열화 하는 등 국내 DSP 진영에는 악재만 즐비하다.

한 반도체 업체 관계자는 “사실 삼성전자가 DSP 업체들 간에 따로 계약서 등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파운드리 업체 일감을 수주하면 눈치만 받는 등 오히려 운신의 폭은 좁아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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