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주문 물량은 5나노⋅7나노 12만장
반도체 반년치 채 남지 않은 듯
"내년 생산량 4분의 1토막" 전망도 나와

미국 상무부 초강경 제재 조치가 발동하면서 이제 화웨이가 언제까지 스마트폰을 생산할 수 있을지에 시선이 쏠린다. 화웨이는 올해 초 대만 TSMC에 대규모 반도체 물량을 발주한 덕에 최소 연말, 길게는 내년 1분기까지 버틸 수 있을 만큼 곳간을 채워 놓았다. 

그러나 제재가 현 상태를 유지하면 내년 이후에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비롯한 각종 부품을 구매할 길이 완전히 차단된다. 

반도체 웨이퍼. /사진=TSMC
반도체 웨이퍼. /사진=TSMC

반도체 업계 “화웨이 내년 초까지 버틸 것”

 

지난해 미국 정부의 화웨이 제재 방안이 나온 이후 화웨이는 TSMC에 스마트폰 및 네트워크 장비용 반도체 물량을 대규모 발주했다. 미국이 수출입관리규정(EAR)에 따라 미국산 부품은 물론, 미국 기술이 사용된 제 3국 부품 구매까지 막을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당시 화웨이 자회사 하이실리콘이 주문한 물량은 5나노⋅7나노 제품을 합쳐 약 12만장(300㎜ 웨이퍼 기준)정도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하이실리콘이 평소 가져가는 월간 웨이퍼양 대비 6배다. 6개월치를 선주문했다는 뜻이다. 

TSMC가 하이실리콘과 선을 긋고, 미국 애리조나주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기로 결정한 게 지난 5월 중순이었다. 이를 감안하면 당시 받아 놓은 반도체 재고는 이르면 연말, 길게 가도 내년 초면 바닥난다. 

이는 산술적으로 계산해봐도 추가 반도체 공급 없이 화웨이가 오래 버틸 수 있는 양은 아니다. 300㎜ 실리콘 웨이퍼 1장 면적은 7만650㎟다. 7나노 공정으로 생산되는 ‘기린980’ 다이 1개 사이즈가 74.13㎟라는 점을 감안하면, 웨이퍼 1장 당 최대 953개(수율 미고려)까지 절취할 수 있다. 모서리 부분은 온전한 다이로 절단할 수 없고, 쏘잉을 위해 확보해야 하는 공간까지 감안하면 900여개로 절단된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TSMC의 5나노⋅7나노 공정 수율이 80%라고 가정하면 웨이퍼 1장에 720개의 AP, 웨이퍼 12만장에서는 8640만개의 AP를 확보할 수 있는 셈이다. 화웨이는 한해 2억대의 스마트폰을 생산⋅판매하므로, 이는 반년치가 채 안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AP는 300㎜ 웨이퍼를 개별 다이로 잘라 만든다. 사진은 웨이퍼를 자르는 장면. /사진=디스코
AP는 300㎜ 웨이퍼를 개별 다이로 잘라 만든다. 사진은 웨이퍼를 자르는 장면. /사진=디스코

물론 화웨이가 AP를 수급하는 루트가 TSMC만 있는 것은 아니다. 5나노⋅7나노 등 선단공정을 제외한 제품은 미디어텍으로부터 구매할 수도 있고, SMIC에 위탁생산 맡기는 방안도 있다. 그러나 이들 회사도 미국 제재가 강화된 이후 화웨이와의 거래를 꺼리고 있다. 이들로부터 구매해놓은 AP도 곧 바닥날 수순이다.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선거가 중국에 대한 제재 기조에 변화를 일으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 당연히 현 제재를 유지하거나, 오히려 강화할 것이다.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당선된다고 해도 중국에 대한 제재를 걷어낼 가능성은 낮다. 

한 미국 반도체 업체 임원은 “중국에 대한 견제는 미국 정계에서 여야를 가리지 않고 공감대를 얻고 있는 정책”이라며 “국가 안보 차원에서 시작한 조치라서 민주당 정권으로 바뀐다고 해도 제재를 끝낼 명분은 없다”고 설명했다.

 

“화웨이 스마트폰 생산량 4분의 1로 줄 것”

 

이 때문에 지금처럼 제재가 유지되면 화웨이의 스마트폰 사업이 명맥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중국 GF증권의 제프 푸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내년 화웨이의 스마트폰 생산량이 5000만대 수준까지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난해 화웨이의 스마트폰 판매량은 2억3850만대, 올해는 1억9500만대를 기록할 전망이다. 내년 생산량 예상치가 5000만대라는 것은 판매량이 4분의 1토막 날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이미 확보된 AP를 모두 소진하면 더 이상 스마트폰을 생산할 방법이 없는 탓이다. 

기성품 성격이 강한 D램이나 낸드플래시에 비하면 AP는 맞춤형 생산이 기본이다. AP도 기성품이 없는 것은 아니나 물량이 많지 않고, 선단공정이 적용된 제품은 잘 나오지도 않는다. 미국 제재를 무릅쓰고 화웨이에 AP 물량을 대량 공급해줄 회사도 없다. 

2020년 2분기 스마트폰 업체별 출하량 및 순위. /자료=카날리스
2020년 2분기 스마트폰 업체별 출하량 및 순위. /자료=카날리스

내년에 화웨이가 잃어버릴 1억5000만대는 경쟁사 입장에서는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다. 지난해 화웨이 매출 148조원 중 중국 시장 비중은 59%, 지난 2분기 기준 중국 내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은 46%다. 이들은 중국 회사인 비보⋅오포⋅샤오미로 대부분 이전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화웨이의 중국 시장 점유율이 크게 올라간 것은 미국 제재에 따른 소위 ‘애국소비’ 때문이다. 화웨이가 아예 스마트폰을 생산하지 못하게 된다고 해서 삼성전자⋅애플 등 외산 스마트폰 수요가 늘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이유다.

따라서 같은 안드로이드 진영 내 최대 스마트폰 공급사인 삼성전자가 반사이익을 볼 수 있는 시장은 유럽⋅중동⋅아프리카(EMEA)다. 지난해 EMEA 시장에서 화웨이의 매출은 약 35조원, 매출 비중은 24%에 달한다. 

반도체 업계 큰 손인 화웨이가 타격을 입게 되면, 반도체 시장에 타격이 불가피하나 삼성전자로서는 스마트폰 판매 증대로 피해를 일정부분 만회할 수 있다. 한 스마트폰 부품 업체 임원은 “화웨이가 생산하지 못한 스마트폰 물량은 다른 안드로이드 진영으로 대부분 이전될 것”이라며 “중국 외 시장은 삼성전자⋅LG전자가 충분히 노려볼 만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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