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상무부, 제재 수준 최고 수준으로 높여
SMIC도 미국 기술 상당부분 사용
"SMIC 통한 수급도 길게 가지 못할 것"

미국 상무부가 중국 화웨이에 대해 최고 수준의 제재를 추가하면서 반도체 수급길이 사실상 절멸됐다. 대만 TSMC를 통한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위탁생산은 물론, 미디어텍을 통한 기성품 구매까지 완전히 차단된 탓이다. 

이제 화웨이가 AP를 수급할 수 있는 길은 자국 내 파운드리인 SMIC에 위탁생산을 맡기는 수 밖에 없으나 이마저도 여러 사정을 감안할 때 여의치 않다.

화웨이 자회사 하이실리콘이 설계한 기린 AP. /사진=화웨이
화웨이 자회사 하이실리콘이 설계한 기린 AP. /사진=화웨이

미, 화웨이 제재 최고 수준으로 높여

 

미국 상무부는 17일(현지시간) 화웨이에 대한 추가 제재 방침을 발표했다. 이날 조치는 전 세계 21개국 38개 화웨이 계열사를 거래제한 '블랙리스트'에 추가하는 게 골자다. 지난해 5월 화웨이 제재가 시작된 이후 블랙리스트에 오른 화웨이 계열사는 모두 152개로 늘었다.

제재 대상에는 중국⋅브라질⋅아르헨티나⋅프랑스⋅독일⋅싱가포르⋅태국⋅영국 등 21개국 계열사가 나열됐다. 상무부는 또 화웨이 장비 사용업체와 통신업체 등에 발급한 임시 면허를 연장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임시 면허는 이미 지난 14일자로 만료됐다. 

새 규정은 거래 제한 목록에 오른 회사가 구매자, 중간 수취인, 최종 수취인, 최종 사용자 등의 역할을 할 때 면허를 취득하도록 요구한다. 화웨이가 제 3국 업체를 거쳐 국적을 세탁한 뒤 반도체를 수급하는 길을 막겠다는 것이다. 

화웨이 스마트폰 P30을 분해한 모습. 미국산 부품 및 기술 없이는 스마트폰을 생산하지 못한다. /사진=iFixit
화웨이 스마트폰 P30을 분해한 모습. 미국산 부품 및 기술 없이는 스마트폰을 생산하지 못한다. /사진=iFixit

이에 따라 미국 업체들은 물론, 미국 기술이 포함된 반도체를 유통하는 회사들까지 화웨이와의 거래가 정지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은 "우리는 오늘 화웨이가 미국 기술을 획득하는 능력을 더욱 제한함으로써 화웨이와 억압적인 중국 공산당에 직접적인 타격(Direct Blow)을 날렸다"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설명했다. 

 

SMIC 통한 AP 수급도 오래 가긴 힘들어

 

따라서 화웨이가 스마트폰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가장 필수인 AP를 어디에선가 수급해야만 한다. 남은 선택지는 SMIC를 통한 위탁생산이 유일하다. 

SMIC는 아직 미세공정 기술 수준이 낮아 14나노미터(nm) 핀펫공정까지 제공하는데, 이는 TSMC⋅삼성전자가 지난 2016년 이전에 도달한 기술이다. 최소 4년 이상 기술 격차가 나는 셈이다. 14nm AP로는 중저가 이하 스마트폰 밖에 생산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조차도 언제까지 가능한지 가늠하기 어렵다. SMIC 역시 미국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회사기 때문이다. SMIC는 생산 장비는 물론, 매출도 미국 팹리스 의존도가 높다. 

SMIC 2분기 보고서 중 매출 분석표. /자료=SMIC
SMIC 2분기 보고서 중 매출 분석표. /자료=SMIC

SMIC가 지난 6월 말 발간한 2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 매출 중 미국 의존도는 21.6%에 달한다. 중국과 홍콩을 제외한 ‘유라시아(유럽 및 아시아)’ 지역 매출은 12.3%다. 만약 SMIC가 화웨이와 거래를 늘리다 미국 상무부 제재 대상에 오를 경우, 미국 향 매출은 물론 유라시아 매출 역시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매출의 3분의 1을 날릴 각오를 해야 한다.

제재 명분도 충분하다. SMIC가 사용하는 장비들 상당수가 미국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KLA 등 미국 회사로부터 구매했고, 불화아르곤(ArF) 노광장비는 네덜란드 ASML 제품이다. ASML의 노광장비도 따지고 들어가면 미국 기술이 다수 혼입돼 있다. 

지난 2001년 ASML은 미국 노광장비 회사인 실리콘밸리그룹(SGV)을 인수했다. ASML은 SGV 인수 이전까지 반도체용 노광장비 시장에서 일본 캐논⋅니콘과 경쟁체제를 유지했으나, 이후 시장점유율은 물론 기술 측면에서 경쟁사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당시 ASML의 노광장비 시장점유율은 35%에서 SGV 인수 후 43%로 크게 높아졌다. 

파운드리 업체별 미세공정 제공 스케쥴. SMIC는 현재 14nm 핀펫 공정까지 제공한다. /자료=SK증권
파운드리 업체별 미세공정 제공 스케쥴. SMIC는 현재 14nm 핀펫 공정까지 제공한다. /자료=SK증권

만약 미국이 당시 SGV 인수 사례를 들어 ASML이 미국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할 경우, SMIC 제재 근거로 인용될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ASML 노광장비의 핵심광원은 미국 내 자회사 사이머(Cymer)가 공급한다. 

이는 ASML에도 부담스런 지점이다. 향후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미국⋅대만⋅한국에 팔아야 하는 입장에서는 SMIC 하나를 포기하고 미국⋅대만⋅한국 내 반도체 회사들을 상대하는 게 훨씬 이득이다. 

따라서 화웨이가 SMIC 위탁생산으로 발길을 돌린다고 해도 14nm 칩, 잘해야 7nm 칩이 기껏이고 이마저도 거래를 지속할 수는 없다는 결론이다. 한 반도체 장비 업체 대표는 “SMIC마저 미국 상무부 제재 대상이 된다면 SMIC의 미세 공정 발전은 사실상 종료된다”며 “중국으로서는 화웨이를 살리기 위해 SMIC까지 버릴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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