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부터 늦어... 퀄컴도 1년 개발하는데 3월에서야 사양 정해
파운드리 사업부도 퀄컴 물량 늘려서 5나노 생산 계획 수립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 SOC 개발팀에 올해는 마지막 기회다. 

올해 처음으로 ‘갤럭시S’ 시리즈 내수용 모델에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엑시노스’를 납품하는 데 실패하면서 SOC 개발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내수용 모델의 상징적 의미를 감안하면 ‘경고’를 받은 셈이다.

하지만 내년 초 출시될 갤럭시S 시리즈에도 엑시노스의 채용량은 획기적으로 늘어나지 않을 전망이다. 한 지붕 아래 있는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조차 퀄컴 물량 증가를 전제로 5나노 생산 계획을 짰다.

 

개발 일정부터 삐거덕

삼성전자 갤럭시S20. 시스템LSI 사업부는 올해 내수용 갤럭시S20에 '엑시노스'를 공급하는데 실패했다.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 갤럭시S20. 시스템LSI 사업부는 올해 내수용 갤럭시S20에 '엑시노스'를 공급하는데 실패했다. /사진=삼성전자

이같은 조짐은 연초부터 보였다. 내년 1월에 출시되는 스마트폰에 들어갈 AP는 늦어도 1년 전부터 개발을 시작해야한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동시에 설계해야하기 때문에 개발에만 보통 9개월이 걸리고, 공정이 고도화되면서 생산 기간도 석달이나 되는 탓이다.

하지만 SOC 개발팀은 지난 3월에 들어서야 차기 엑시노스 사양을 정하고 개발에 돌입했다. 10월에 생산에 들어간다고 치면 남은 기간은 불과 7개월인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좀처럼 개발 진도를 빼지 못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SOC개발팀이 이처럼 늑장 결정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며 “올해는 좀 다를 줄 알았는데 올해 역시 사양을 늦게 결정하는 바람에 SOC개발팀 협력사들의 개발 일정 또한 밀렸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도 마찬가지였다. 내부에서 차기작의 사양에 대한 논의가 길어지면서 뒤늦게 개발이 시작됐다. 

가장 큰 문제는 소프트웨어(SW)였다. AP는 중앙처리장치(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 등이 모두 합쳐진 시스템온칩(SoC)이다. 때문에 하드웨어를 구성하는 각 코어가 서로 신호를 잘 주고받을 수 있도록 SW를 최적화해줘야한다. 부하가 많은 작업을 할 때는 고성능 코어를, 적은 작업을 할 때는 저성능 코어를 동작하게 하는 멀티코어 작업도 SW의 역할 중 하나다.

SW 최적화 작업이 덜 됐을 때 나오는 대표적인 문제가 끊김 현상과 배터리 소진이다. 

한 팹리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AP의 가장 큰 단점은 SW 최적화가 덜 돼있다는 것”이라며 “개발 일정에 쫓기다보니 제일 마지막에 하는 SW 최적화 작업에 신경을 덜 쓸 수밖에 없다지만, SW 최적화가 되지 않으면 사용자들이 불편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AP만 문제? ‘한 지붕’ 파운드리마저 외면

AP만 문제는 아니다. 5세대 이동통신(5G) 모뎀 역시 퀄컴은 물론 미디어텍보다도 개발이 늦었다.(KIPOST 2019년 9월 4일자 <삼성, 반쪽짜리 5G 모뎀 통합 프로세서 공개> 참고)

 

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의 브랜드 '엑시노스'./삼성전자
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의 브랜드 '엑시노스'./삼성전자

아직 밀리미터파(mmWAVE)를 지원하는 모뎀도 내놓지 못한 상황이다. 5G 이동통신은 6㎓ 이하 주파수 대역과 24㎓ 이상 밀리미터파 대역을 모두 활용하는데, 밀리미터파까지 활용해야 속도와 지연시간 성능을 극대화할 수 있다.

엑시노스가 주로 내수 혹은 유럽향 스마트폰 모델에 탑재돼왔고, 국내와 유럽은 6㎓ 이하 주파수 대역이 5G 메인으로 쓰이고 있다지만 두 지역 통신사 모두 2~3년 내 밀리미터파를 상용화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밀리미터파까지 지원하는 모뎀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최근 들어서는 강인엽 시스템LSI 사업부장(사장)이 매일같이 두 개발팀을 닥달하고 있지만, 이미 개발 일정부터 늦은 상황이라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AMD의 GPU 설계자산(IP)을 새롭게 라이선스 했지만 모바일 기기에서의 성능이 증명된 게 아닌데다 Arm의 ‘코어텍스X’로 CPU 성능을 올려봤자 SW 최적화가 부족하면 최종 시스템 성능이 제대로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AP 생산을 담당할 파운드리 사업부는 아예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 물량을 줄이고 퀄컴의 물량을 늘리는 식으로 5나노 생산 계획을 짰다. 양산이 오는 10월께 시작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내년 엑시노스의 성적을 탐탁치 않을 것이라 내다본 셈이다.

그렇잖아도 코로나19로 모바일 수요가 급감한 상황에서 차세대 ‘갤럭시’ 시리즈에도 AP 및 모뎀을 공급하지 못하게 된다면 내부 비판을 피해갈 수 없다. 이미 내부에서는 올해 시스템LSI 사업부 실적이 손익분기점(BEP)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삼성전자 DS 사업부에서 가장 눈길이 가는 게 SOC 개발팀”이라며 “10년간 그 어떤 비판에도 엑시노스를 써왔던 무선사업부가 등을 돌렸고 매출도 안 좋은만큼  내년 초 플래그십 스마트폰에도 채용되지 못하면 누군가 책임을 져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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