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삼성전자에 美 생산라인 구축 압박... 인텔도 '파운드리 준비' 화답
궁극적 목표는 군용 칩 생산 내재화... 장기적으로는 파운드리 육성 가능성

미국 트럼프 정부가 첨단 반도체 공급망(SCM)을 내재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해외 파운드리 업체의 투자를 유치, 단순히 전공정 생산라인을 자국에 두겠다는 목적이다. 하지만 미국이 반도체 산업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감안하면, 최종 목표는 파운드리 산업이다.

 

트럼프 정부의 다음 목표, ‘첨단 반도체 내재화’

 

미국 위스콘신주 디스플레이 단지 기공식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궈타이밍 회장이 첫 삽을 뜨는 모습. /사진=백악관 트위터
미국 위스콘신주 디스플레이 단지 기공식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궈타이밍 회장이 첫 삽을 뜨는 모습. /사진=백악관 트위터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0일(현지시간) 미 트럼프 정부가 미국 기반 첨단 반도체 생산라인을 구축하기 위해 대만 TSMC, 인텔 등 주요 파운드리 업체와 협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아시아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는 파운드리 업계 1위인 대만 TSMC, 2위인 삼성과 미국 내 생산라인 구축에 대해 협의 중이고 인텔에게도 파운드리 사업을 확대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인텔은 이에 지난달 28일 트럼프 정부에 미 국방부 및 상업 고객을 위한 파운드리 생산라인을 건설할 준비가 됐다고 응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표면적 이유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공급망의 취약성이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각국의 이동이 막히고 생산이 지연되면서 공급망을 아시아에 둔 미국 IT 기업의 피해가 불가피한 상황이 됐다.

퀄컴 등 팹리스 기업을 비롯해 인텔, 애플 등까지 미국 IT 기업들의 반도체 공급망은 미국이 아닌 아시아 권역에 쏠려있다. 퀄컴만 하더라도 설계는 직접하지만 생산은 TSMC·삼성전자 등 파운드리 업체가 하고 있고, 후공정도 아시아권 외주반도체후공정테스트(OSAT) 업체들이 진행한다.

 

TSMC의 미국 자회사 웨이퍼텍(WaferTech)에서 직원들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WaferTech
TSMC의 미국 자회사 웨이퍼텍(WaferTech)에서 직원들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WaferTech

물론 이것만 이유는 아니다. 지난해 미-중 무역분쟁 당시 미국에서 주요 이슈가 됐던 것 중 하나는 TSMC의 주 고객이 미 국방부라는 점이었다.

당시 미 국방부 관리들은 국산 칩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며 대만 TSMC에 생산을 계속 맡기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내비쳤고, TSMC 측은 비용 격차를 해소할 수 없는 상황에서 미국에 생산라인을 구축하는 건 어렵다는 입장을 표했다.

업계 관계자는 “TSMC나 파운드리 업체들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압박은 사실상 그때부터 시작됐다”며 “가장 좋은 방법은 미국이 인텔 등 자국 기업이 파운드리 사업을 확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았다”고 말했다.

 

‘제조’ 없는 미국 반도체 산업

국내 반도체 산업에서 시스템반도체가 아픈 손가락이라면, 미국에게는 파운드리 산업이 아픈 손가락이다. 반도체 산업의 종주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2010년 이후 파운드리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미국 반도체 산업에서 제조는 아주 작은 영역만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 반도체 기업 시가총액 상위 10개사. 2020년 5월 12일 기준으로 단위는 10억달러./KIPOST
미국 반도체 기업 시가총액 상위 10개사. 2020년 5월 12일 기준으로 단위는 10억달러./KIPOST

실제 미국 반도체 기업 시가총액 상위 10개사 중 직접 제조를 하지 않는 팹리스 업체는 절반에 달한다. 종합반도체업체(IDM)인 나머지 5개사 중 메모리 업체 마이크론을 제외한 4개사도 일부 제품 생산을 외부 파운드리 업체에 맡기고 있다. 

애초에 미국은 파운드리 산업 발달 초기부터 이 산업에 관심이 크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파운드리보다는 IDM이 산업 주도권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파운드리 산업을 육성할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9·11 사태와 서브 모기지 사태 등 세계 경제가 여러 번 휘청이면서 산업의 중심축은 IDM에서 파운드리-팹리스 체제로 넘어갔다.

물론 미국 파운드리 업체가 없는 건 아니다. 

소규모지만 인텔이 파운드리 서비스를 하고 있고 세계 3위 파운드리 업체 글로벌파운드리(GF) 또한 미국 업체다. 하지만 인텔은 중앙처리장치(CPU) 등 본업에 충실하기도 바쁘고 GF는 일찌감치 7나노 아래 공정 개발을 포기했다.

업계 관계자는 “설계는 물론 제조를 위한 장비들도 미국 업체들이 주로 공급하지만 제조는 인프라 지원이 풍부한 아시아에 구축하는 게 예전부터 업계 트렌드였다”며 “미국에서는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제조보다 팹리스가 더 고부가 산업이라는 인식이 강했고, 주 단위 투자를 제외하곤 정부 투자가 적은 편”이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투자 유치로, 그 다음엔 자국 기술로

모든 산업이 마찬가지지만, 파운드리 산업은 특히 늦게 진입할수록 불리하다. 반도체 기술 발전 속도가 워낙 빨라 기술력을 따라잡으려면 천문학적인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투자 대비 기술 지속 기간도 짧은 편이라 지속적인 지원을 해야한다는 부담도 있다.

미국이 인텔이나 글로벌파운드리를 육성하는 대신 TSMC와 삼성전자의 생산라인을 자국에 유치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TSMC와 삼성전자 모두 국외에 최첨단 생산라인을 구축한 적이 없다. 국외에 두는 생산시설은 보통 현지 고객사를 위해 구축되는데, 첨단 생산라인이라 해도 최첨단 공정에서 한두 세대 뒤쳐진 공정용으로 셋업(Set-up)된다.

 

삼성전자의 시안 2기 공장 전경. /시안뉴스 제공
삼성전자의 시안 2기 공장 전경. 시안 2기 공장 설립을 발표할 당시 국내에서는 3D 낸드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가 컸다./시안뉴스 제공

업계 관계자는 “기술 유출 우려로 업체들이 최첨단 공정의 국외 구축을 꺼릴 뿐더러, 각국 정부에서도 이를 달갑지 않게 여긴다”며 “연구개발(R&D)을 보통 자국에서 하는만큼 최첨단 생산라인도 자국에 짓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말했다.

TSMC는 공식적으로 미국에 최첨단 생산라인을 짓는 방안을 배제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관련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신중하게 평가해 투자를 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이 회사의 매출 중 60%가 미국 고객사들로부터 나온다.

다만 TSMC가 미국에 대만 생산라인처럼 대규모 공장을 건설할 가능성은 낮다. 

후공정을 위해서는 어차피 대만 등 아시아 권역으로 제품을 보내야하는데, 이 과정에서 드는 시간과 비용은 결국 팹리스 고객사나 파운드리 업체가 감당해야하기 때문이다. 후공정 산업은 상대적으로 자동화가 덜 돼있고 사람 손을 많이 타 대부분 인건비가 싼 아시아 권역에 집중돼있다.

 

작업자가 반도체 다이(die)가 새겨진 실리콘 웨이퍼를 들고 있다./SEMI
작업자가 반도체 다이(die)가 새겨진 실리콘 웨이퍼를 들고 있다./SEMI

그래서 업계는 장기적으로 미국이 자체 파운드리 산업을 키울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당장 공급망을 내재화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국방이고, 국방은 결국 자국 기술을 기반으로 해야 가장 안전하기 때문이다. 자국 파운드리 산업이 커지면 애플·퀄컴 등 미국 IT 기업들 입장에서도 나쁠 게 없다.

인텔이 이같은 정책의 수혜자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지만, IDM과 파운드리는 기본적으로 준비해야할 기술과 공정, IP 포트폴리오가 차원이 다른만큼 글로벌파운드리가 다시 첨단 공정에 뛰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정부가 파운드리 업체의 생산라인을 자국에 두려는 건 군용 등급 칩을 자국 땅에서 생산하기 위해서”라며 “미-중 대립이 지속되는 한 미국은 파운드리 산업에 계속해서 눈독을 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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