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G 밀리미터파 RFIC 등 임베디드 코어부터 옴니익스텐드 같은 대형 보드에까지 확대 적용
리눅스 재단의 '칩스 얼라이언스'와 구글의 실리콘 RoT 프로젝트 '오픈 타이탄'도 RISC-V 채택

RISC-V 재단 로고./RISC-V재단

반도체 오픈소스 아키텍처 생태계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올해 선보이는 5세대 이동통신(5G) 무선통신 칩(RFIC)에 RISC-V 아키텍처를 도입한다. 웨스턴디지털도 RISC-V 아키텍처를 제품 전반에 확대 적용키로 했다.

이와 함께 리눅스 재단(Linux Foundation)도 RISC-V 생태계 조성에 나섰다. 리눅스 재단이 설립한 하드웨어 오픈소스 프로젝트 ‘칩스 얼라이언스(Chips Alliance)’가 RISC-V를 지원한다. 

 

Arm 진영에서 불어오는 오픈 소스 바람

RISC-V 재단에는 현재 150개 이상의 업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특히 제조사와 설계사 중 대부분은 Arm의 코어를 활용한다./웨스턴디지털

삼성전자는 지난달 개최된 ‘RISC-V 서밋(Summit) 2019’에서 올해 출시될 플래그십 스마트폰에 담기는 5G 밀리미터파(㎜WAVE) RFIC에 RISC-V 아키텍처를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RFIC는 안테나와 모뎀 사이 위치한 프론트엔드모듈(FEM)의 일부로, 위상 어레이(PA)에 RISC-V 코어가 들어가게 된다. 

인공지능(AI) 기능을 담은 상보성금속산화물(CMOS) 이미지센서(CIS)에도 RISC-V 아키텍처를 도입할 예정이다. 앞서 삼성전자는 사람이 잘 보지 못하는 어두운 밤에도 물체와 물체의 움직임을 빠르게 식별하는 AI 이미지 센서를 개발 목표 중 하나로 세웠다.

웨스턴디지털은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및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컨트롤러를 포함한 다양한 응용처에 RISC-V를 확대 적용한다. 지난해 이 회사는 RISC-V 기반 코어 ‘SweRV’와 캐시 일관성 메모리 구조인 ‘옴니익스텐드(OmniXtend)’를 선보인 바 있다.

알리바바 그룹의 반도체 회사 핑터우거가 지난해 선보인 '쉔톄910(XuanTie910)'에도 RISC-V 아키텍처가 채택됐다. 핑터우거는 쉔톄910에 쓰인 설계자산(IP)을 공개, 생태계를 넓힐 계획이다.

엔비디아는 지난해 10월 RISC-V 개발자를 추가 채용했다. 업계는 이를 두고 현재 회사가 개발 중인 멀티 다이 AI 가속기 칩에 RISC-V를 적용하려는 것이라고 관측한다. 앞서 엔비디아는 그래픽처리장치(GPU)의 메모리 컨트롤러와 테그라 시스템온칩(SoC)에 RISC-V 아키텍처를 도입한 바 있다.

비단 이들뿐 아니라 RISC-V 코어 개발 업체 사이파이브(SiFive)의 주요 투자자인 퀄컴·SK하이닉스 등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Arm의 코어텍스(Cortex) 아키텍처를 써왔던 업체들이라는 점이다.

 

왜 하필 RISC-V인가

일찍이 오픈 소스를 받아들인 소프트웨어와 달리 하드웨어 업계는 좀처럼 오픈 소스가 활성화되지 못했다. 반도체에서는 코어 명령어 세트 아키텍처(ISA), 다시 말해 아키텍처를 중심으로 수요가 있었는데 마찬가지로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지난 2000년, Arm과 같은 계열인 RISC 기반의 ISA를 오픈 소스로 제공하는 ‘오픈RISC 프로젝트’가 등장했지만 시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당시까지만 해도 스마트폰도 없고, 자동차에 들어가는 컨트롤러에도 관심이 없던 시절이었고 현재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Arm 외에도 MIPS 등 추가 선택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0년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모바일·자동차·사물인터넷(IoT)은 물론 칩에 내장되는 임베디드 마이크로컨트롤러까지 서버와 PC 시장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의 시장을 Arm의 RISC 기반 아키텍처가 쥐고 있다.

Arm의 아키텍처는 어쨌거나 Arm만 공급한다. Arm은 아키텍처를 포함한 코어 IP를 라이선스하는데, 독점 시장이 그렇듯 가격 협상력을 철저히 Arm이 쥐고 있다. 자체 아키텍처에 전혀 손을 대지 못하게 해 유연성이 떨어진다는 것도 문제다.

업계 관계자는 “PC나 서버를 제외한 다른 기기에 들어가는 반도체는 대부분 Arm의 코어가 필수적으로 활용되기 때문에 철저히 ‘부르는 게 값’이 될 수밖에 없다”며 “일부 코어는 라이선스 비용이 생산 비용과 맞먹을 정도”라고 말했다.

 

엔비디아는 차세대 GPU를 위한 마이크로컨트롤러 ISA를 검토한 결과 RISC-V만이 대부분의 요건을 충족했다고 설명했다. 위 자료는 엔비디아의 비교 결과다./엔비디아
엔비디아는 차세대 GPU를 위한 마이크로컨트롤러 ISA를 검토한 결과 RISC-V만이 대부분의 요건을 충족했다고 설명했다. 위 자료는 엔비디아의 비교 결과다./엔비디아

RISC-V는 Arm에 대한 업계의 위기감이 커지고 난 다음 등장했다. 

RISC-V는 ‘RISC’를 처음 만든 데이비드 패터슨(David patterson) UC 버클리대 교수와 그의 연구원들이 만든 다섯 번째 RISC 아키텍처다. 태생부터 어느 정도 신뢰성을 갖고 있었다는 얘기다. 여기에 미국 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Arm을 대체할 오픈소스 ISA 지원 사업을 만들고, 주인공으로 RISC-V가 낙점되면서 이 아키텍처는 명실상부한 ‘Arm의 대체재’가 됐다. 

RISC-V는 아직 소프트웨어 툴, 검증 등이 다른 ISA보다 부족하다. 레퍼런스도 적다. 하지만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RISC-V를 시작으로 유료 ISA였던 MIPS(웨이브컴퓨팅), 파워(IBM)가 오픈소스로 공개됐고 Arm 또한 일부 ISA의 빗장을 열었다. 수십년간 레퍼런스를 쌓아왔다는 점에선 이들 아키텍처가 RISC-V에 밀릴 이유가 없지만, 100% 공개된 게 아니라 대세는 여전히 RISC-V다.

리차드 뉴(Richard New) 웨스턴디지털 수석 부사장은 세계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의 ‘산업 전략 심포지움(ISS 2020)’에서 “리눅스가 소프트웨어와 운영체제(OS) 세계를 바꾼 것처럼, RISC-V 등 오픈소스 하드웨어도 반도체 산업을 뒤흔들 것”이라고 말했다.

 

생태계 육성에 힘보태는 리눅스 재단과 구글

칩스 얼라이언스 로고./칩스 얼라이언스

소프트웨어 및 운영체제(OS) 업계에서 오픈 소스 붐을 일으켰던 리눅스 재단도 RISC-V의 편에 섰다. 

지난해 5월 리눅스 재단은 오픈소스 반도체 IP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칩스 얼라이언스(Chips alliance)’를 발족했다. 칩스 얼라이언스는 IP 코어, 상호 연결 IP, 설계, 검증을 위한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개발 도구(SDK)를 개발, 호스팅한다.

초기 멤버는 알리바바·구글·사이파이브·웨스턴디지털로, 삼성전자와 퓨처웨이, 에스페란토 테크놀로지 등이 참여하고 있다. 최근 인텔이 칩렛(Chiplet) 아키텍처에 사용되는 물리 IP ‘AIB(Advanced Interface Bus)’를 오픈소스로 공유하기 위해 칩스 얼라이언스에 합류했다.

수 개의 오픈소스 ISA 중 칩스얼라이언스가 택한 건 RISC-V다. 칩스 얼라이언스 산하에는 RISC-V의 하드웨어 기술 언어인 치즐(Chisel)과 소스 코드 로켓(Rocket)에 대한 워킹 그룹이 만들어졌다. 이윤섭 사이파이브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비롯, RISC-V 생태계 구성원들이 각 워킹 그룹에 참여하고 있다.

구글이 지난 11월 출범시킨 오픈소스 실리콘 RoT(Root of Trust) 개발 비영리 조직인 ‘오픈타이탄(OpenTitan)’ 역시 밑바탕으로 RISC-V를 택했다. 오픈타이탄은 RISC-V 외 다른 ISA에서 제공하지 않는 설계 및 구현 투명성을 제공, 신뢰성과 보안을 강화하겠다는 목표로 출범한 조직이다.

업계 관계자는 “구글은 자체 컴파일러 및 툴 체인 인프라 프로젝트인 ‘LLVM’에서 RISC-V를 지원하는 등 오픈소스 하드웨어 인프라와 커뮤니티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며 “오픈소스 하드웨어가 광범위하게 채택되는 것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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