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말… 아르고-에스엔에스티 인수로 DSP 자격 확보해 SAFE 입성
삼성 "DSP 3개사로 줄여라" 특명… 규모는 키웠어도 질적 성장은 의문

삼성전자 파운드리 생태계(SAFE) 내 디자인하우스 체질 개선이 올해도 이어진다. 

에이디테크놀로지(대표 김준석)가 이달 말 아르고(대표 황재성)를 인수합병(M&A)해 삼성 SAFE 내로 들어온다. 알파홀딩스는 상반기 디자인하우스 업계에서 대거 인력을 흡수하기로 했다. 코아시아도 삼성전자 디자인 솔루션 파트너(DSP) 자격을 얻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렇듯 양적 성장은 진행 중이나, 문제는 질적 성장이다. 
 

“‘삼성’의 급에 맞게, 디자인하우스도 바뀌어야 한다”

파운드리 생태계 강화를 위해 열린 'SAFE 포럼'에서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박재홍 부사장이 기조 연설을 하고 있다./삼성전자
파운드리 생태계 강화를 위해 열린 'SAFE 포럼'에서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박재홍 부사장이 기조 연설을 하고 있다./삼성전자

SAFE는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가 설계자산(IP) 업체, 반도체 설계자동화(EDA) 업체, 디자인하우스 업체 등을 모아 생태계를 꾸리기 위해 만든 프로그램이다.

IP 업체, EDA 업체는 주로 글로벌 업체들이 이름을 올려 ‘삼성’의 급에 맞았지만, 디자인하우스는 상대적으로 영세했다. 국내 디자인하우스 업체들을 모두 합쳐봐야 TSMC의 디자인하우스 업체인 GUC(600여명 규모)보다 작다.

이에 삼성은 지난해 국내 디자인하우스 업체들에게 SAFE 내 DSP 업체를 3곳으로 축소하라는 ‘명’을 내렸다. 인수합병(M&A)이 됐건, 인력을 흡수하는 방향이 됐건 회사 규모를 키워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라는 요구였다.

이에 알파홀딩스가 플러스칩, 하나텍이 실리콘하모니를 합병했고 세미파이브는 새솔반도체를 인수, 베트남 에스엔에스티는 아르고에 인수돼 SAFE 안으로 들어왔다.

현재 DSP 소속 국내 디자인하우스는 알파홀딩스(플러스칩), 아르고(에스엔에스티), 가온칩스, 하나텍(실리콘하모니), 새솔반도체(세미파이브) 등 5개사다. 

업계 관계자는 “꼭 3개사로 줄이라는 건 아니지만, DSP 내에 있는 글로벌 업체들과 어깨를 견줄 정도로 규모를 키우라는 요구가 있었다”며 “올해까지 국내 디자인하우스 업계의 인수합병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에이디테크놀로지, 아르고 인수로 SAFE 진입

올해 가장 먼저 인수합병에 뛰어든 건 에이디테크놀로지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에이디테크놀로지는 아르고를 인수합병하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이달 말 공식 발표를 할 계획으로, 황재성 아르고 대표는 에이디테크놀로지의 전무로 가게 된다. 

이번 인수로 에이디테크놀로지는 힘 들이지 않고 SAFE 내로 입성하게 됐다. 아르고의 DSP 자격을 에이디테크놀로지가 승계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에이디테크놀로지는 TSMC의 디자인하우스 파트너인 ‘가치사슬협력자(VCA)’였지만, 지난 2018년 김준석 대표가 에스엔에스티의 설립을 물적으로 도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VCA 자격을 박탈당했다. 김 대표는 아르고가 에스엔에스티를 합병할 때도 자본 투자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TSMC와 에이디테크놀로지 간 VCA 계약은 오는 3월 16일까지다. 이미 지난해 중순부터 에이디테크놀로지는 삼성전자 파운드리의 디자인하우스로 영업을 시작했다. 공을 들여왔던 북미 업체의 7나노 프로젝트도 수주 막바지 단계다. 

 

TSMC의 VCA 명단. 파란색 원 안이 국내 VCA 업체들로, 오는 3월 ADT는 여기서 제외된다./TSMC

당초 에이디테크놀로지는 VCA 계약 만료 후 아르고를 합병하기로 했었다. 삼성 SAFE 내로 들어오려면 삼성 파운드리를 통해 충분한 레퍼런스를 쌓아야하기 때문에 그때까지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겠다는 요량이었다.

하지만 TSMC가 지난해 VCA로 또다른 국내 디자인하우스 업체인 에이직랜드(대표 김종민)를 선정하면서 고객사가 대거 이탈하기 시작했다. 최대 고객사 SK하이닉스도 이미 지난해 11월경 낸드 컨트롤러 디자인하우스 업체를 이원화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 내 SAFE 생태계 조성을 담당하던 디자인플랫폼개발실의 입지도 위축됐다. 에이디테크놀로지는 에스엔에스티 설립과 에스엔에스티와 아르고 합병을 도우면서 삼성 디자인플랫폼개발실과 연을 맺었다.

업계 관계자는 “고객사 이탈에 이어 믿고 있던 삼성전자도 에이디테크놀로지를 도울만한 상황이 안되니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라며 “TSMC의 VCA 이익률은 프로젝트당 20% 남짓이지만 삼성전자 DSP 마진은 5% 고정이라 하루 빨리 DSP 자격을 받고 프로젝트들을 수주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몸집 키우는 알파홀딩스, DSP 입성 준비하는 세미파이브·코아시아

알파홀딩스도 국내 디자인하우스 업체들의 인력을 대거 흡수하고 있다. 이달부터 임원급 인력들을 팀 단위로 영입, 상반기 내 20~30여명을 충원할 계획이다. 

충원 후 알파홀딩스의 인력은 120여명으로 늘어난다. 한국 인력만 따지자면 에이디테크놀로지보다 크다.

추가 인수합병도 검토 중이다. 

알파홀딩스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인수합병을 포함해 설계 인력을 지속 충원하고 있다”며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기 위해 올해 1곳 정도의 디자인하우스를 추가로 인수하는 것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코아시아홀딩스는 지난해 전용 반도체(ASIC) 서비스를 시작했다./코아시아

ASIC 서비스를 하는 세미파이브와 코아시아도 DSP 입성 절차를 밟고 있다. 

세미파이브는 새솔반도체를 인수, 자회사로 둬 SAFE 내로 들어왔지만 DSP가 되기엔 아직 프로젝트 레퍼런스가 부족하다. 장기적으로는 새솔반도체를 합병해 DSP 승계를 하는 방법도 있으나 삼성과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코아시아는 지난해 디자인하우스를 하는 홍콩 법인 코아시아세미를 설립하고 넥셀 및 세미하우에 전략적 투자를 단행, ASIC 사업에 뛰어들었다. 

코아시아는 현재 대만 본사를 통해 DSP의 전 단계인 VDP(Virtual Design Partner)로 삼성전자 SAFE 내에 들어와있는데, 넥셀과 세미하우의 역량을 통해 연내 DSP 자격을 받겠다는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코아시아는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와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며 “넥셀이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의 저가형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외주 개발업체로 제로 밴더 자격을 가졌었던 것을 감안하면 코아시아의 DSP 입성은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규모의 경제는 됐지만, 그 다음은

규모를 키우는 건 어쨌거나 양적 성장에 해당한다. 양적 성장보다 더 중요한 게 질적 성장이다. 아무리 수백명 규모의 디자인하우스라도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할 실력이 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팹리스 업체 관계자는 “삼성 SAFE 내 디자인하우스 업체와 일을 했었는데, 최근 TSMC와 GUC 조합으로 바꿀지의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며 “규모를 키웠다지만 외부 프로젝트들을 모두 수주할 만큼 규모가 큰 것도 아니고, IP 등 관련 지원도 GUC-TSMC 조합이 낫다”고 말했다.

디자인하우스는 반도체 설계 뒷단(Back-end) 작업을 하는 외주 업체다. 팹리스 업체가 반도체 설계의 전단(Front-end) 작업으로 설계도를 만들면 이를 파운드리 업체가 생산할 수 있도록 일종의 도면으로 바꿔주는 역할을 한다.

여기까지가 전통적 디자인하우스 사업 모델이라면 현재의 디자인하우스는 비메모리 반도체 업계의 솔루션 업체로 발돋움했다.

일찍이 대만 디자인하우스 업체들은 자체 개발한 IP로 캐시카우를 확보했다. 여기에 최근 들어서는 백엔드 서비스에 패키지 및 테스트(OSAT), 소프트웨어(SW)까지 공급하는 솔루션 업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대만 패러데이가 제공하는 IP 포트폴리오. GUC의 IP 포트폴리오는 이보다 넓다./패러데이

반면 국내 디자인하우스 업계는 소프트웨어는커녕 IP 개발 여력도 부족하다. 인력은 몽땅 합쳐봐야 500여명 남짓이라, 소프트웨어와 IP 개발은 따로 인력을 뽑아야해 비용이 만만치 않다. 개발 기간도 오래 걸리는 만큼 쉽사리 투자할 수 없다고 업계는 입을 모은다.

하지만 이 상태로는 전적으로 삼성전자 파운드리에 기댈 수밖에 없다. 지금처럼 프로젝트가 밀려들 때야 외부로 나오는 건수가 많지만, 이 특수가 언제까지 이어질 지는 모를 일이다. 삼성도 IP와 소프트웨어 역량이 부족한터라 최악의 경우에는 국내 업체들 대신 이를 채워줄 글로벌 디자인하우스 업체들과 전략적으로 협력하는 방식을 택할 수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디자인하우스, ASIC, IP, 소프트웨어 등 비메모리 생태계 주요 주자의 경계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며 “이 모든 역량을 갖춘 디자인하우스 업체가 국내에도 하나쯤은 있어야하는데 여력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뒤쳐지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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